부제 :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고 싶은 이들에게
이 길을 떠나기 전,
나는 이미 충분히 지쳐 있었다.
해야 할 일은 늘어났고
버텨야 할 관계는 많아졌으며
잘 해내고 있다는 말보다
괜찮냐는 질문이 더 어색해진 시기였다.
겉으로 보기엔
나는 여전히 잘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내가 어떤 속도로 살아가고 있는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워진 채
하루하루를 지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길을 떠났다.
도망치듯이, 그러나 조심스럽게.
안나푸르나 서킷이라는
길고 느린 산길 위로.
이 여행이
무언가를 증명해줄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숨을 고를 수 있기를 바랐다.
조금 덜 애쓰는 나를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랐다.
걷다 보니
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계속 묻고 있었다.
“지금 이 속도가, 정말 너의 속도냐고.”
“지금 이 걸음이, 너를 살리고 있느냐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몸은 정직해졌고
마음은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었다.
버텨온 감정들은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고
나는 그제야
나 자신과 제대로 마주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써온 글은
그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의 기록이 아니다.
그 풍경 앞에서
내 안에서 일어난 변화의 기록이다.
숨이 차올라 멈춰 서야 했던 순간,
누군가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순간,
아무도 없는 설원에서
오롯이 나의 호흡만을 들었던 순간들.
그 모든 순간들이
나에게 하나의 방향을 가리켰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것.
지금의 나로도 충분하다는 것.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꼭 산을 오르지 않아도 좋다.
다만,
지금 자신의 삶의 속도를
잠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멀리 가는 용기가 아니라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글은
그 용기를 조심스럽게 건네는 이야기다.
길 위에서,
그리고 삶 속에서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고 싶은 이들에게
그동안 안나푸르나 서킷 트레킹과 함께 한 사유의 글을 읽어주시고 힘을 실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함을 전하며 이번 여정의 글을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감사합니다. 평온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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