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나다움을 향한 길 위에서 마지막 사유
“길 끝에서 다시, 나에게로”
베시사하르(760m)에서 시작해 토롱라패스 5416m)까지, 그리고 다시 묵티나트로 하산하여 좀솜에서 포카라까지 이 긴 여행의 끝은 언제나 조용했다.
누구의 환호도 없고, 완주 메달도 없고,
그저 내 숨소리만 묵직하게 귓가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고요한 순간만큼
나를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시간도 없었다.
안나푸르나의 거대한 산자락 앞에서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였던가.
한 걸음을 내딛기조차 힘들던 고도에서
나는 얼마나 연약한 인간이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존재가, 그 연약한 인간이
그토록 울컥할 만큼 살아있음을 느꼈다는 사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나 고마웠다.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걸음만으로 하루를 채우던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낯선 풍경이 아닌
낯선 ‘나’를 계속 만나고 있었다.
조금은 참아내는 법을 아는 나,
조금은 내려놓을 줄 아는 나,
누군가의 도움도 기꺼이 받을 줄 아는 나.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할 줄 아는 나.
길 위에서 마주한 작은 순간들
숨이 차올라 멈춰 선 오르막길,
손끝까지 스며들던 찬 공기,
양 떼의 느긋한 발걸음,
달밧의 따뜻함,
내 걸음에 맞춰 함께 걷던 작은 안내견의 묵묵한 동행
야크와의 따뜻한 눈 맞춤과 잠깐의 동행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나의 길동무들 그리고 잠깐 스쳐 지나간 길 위에서의 작은 만남들
그 모든 장면이 나를 가만히 안아주고 있었다.
‘조금 천천히 가도 돼.’
‘지금 이 순간만 잘 살아도 돼.’
자연은 그렇게 단 하나의 진리를 계속 들려주었다.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걸음은
때때로 너무 빠르고,
때때로 너무 무겁다.
그러나 나에게 맞는 속도는
항상 내 안에 있었다.
그 속도를 찾는 것이
나다움을 찾아가는 첫걸음이 아닐까.
긴 여정의 끝. 마지막 저녁,
세수를 하며 흘러내리던 물줄기 하나조차
나는 새롭게 느껴졌다.
얼굴 위를 스치는 그 차가운 감촉이
마치 나의 오래된 껍질을 흘려보내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나다움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잘 씻겨진 얼굴처럼 담백하고 단순한 무엇이라는 걸.
걷는 동안 나는 수많은 질문과 마주했다.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나의 속도는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나는 누구인지.
이 질문들 앞에서 나는 완벽한 대답을 가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답이 없다고 해서
길이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답을 찾기 위해 걷는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충분한 의미였다는 것을
나는 이 여정을 통해 배웠다.
길 끝에 서서 나는 다시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로, 어떤 리듬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조용히 대답해 본다.
그래도 괜찮아. 지금의 나는, 지금의 걸음으로 충분하니까.
돌아보면, 이 길은 안나푸르나로 향한 길이 아니라
온전히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멀리 떠났기에 비로소 선명해진 나,
고요 속에서 다시 들리기 시작한 나의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를 믿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어디든, 무엇을 향하든,
그 길의 중심엔 늘 ‘나’가 있을 테니.
이 여정이 끝난 후에도
삶은 다시 바빠질 것이다.
해야 할 일도, 감당해야 할 관계도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언제든 숨이 가빠질 때,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이 있다는 것을.
그 길의 이름은
나다움이다.
[나다움을 향한 길 위에서 — 생각 한 줌]
1. 지금의 나를 가장 단단하게 만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그리고 그 순간을 떠올릴 때 나는 무엇을 느끼는가?
2. 목적지가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어떤 마음으로 걸어가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미래 앞에서 내 선택은 불안인가, 신뢰인가?
3. 오늘 내가 넘어야 할 산은 얼마나 거대하게 보이는가?
하지만 그 산은 한 걸음씩만 내딛으면 충분히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잊지 않고 있는가?
4. 나는 지금 어떤 리듬으로 살아가고 싶은가?
누구의 리듬도 아닌
오직 내 삶의 숨, 내 걸음, 내 속도로 살아가기 위해
지금 무엇을 덜어내야 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