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부. 길 끝에서 다시, 나에게로

부제 : 나다움을 향한 길 위에서 마지막 사유

by 글다뮤

“길 끝에서 다시, 나에게로”


베시사하르(760m)에서 시작해 토롱라패스 5416m)까지, 그리고 다시 묵티나트로 하산하여 좀솜에서 포카라까지 이 긴 여행의 끝은 언제나 조용했다.


누구의 환호도 없고, 완주 메달도 없고,

그저 내 숨소리만 묵직하게 귓가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고요한 순간만큼

나를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시간도 없었다.

안나푸르나의 거대한 산자락 앞에서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였던가.


한 걸음을 내딛기조차 힘들던 고도에서

나는 얼마나 연약한 인간이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존재가, 그 연약한 인간이

그토록 울컥할 만큼 살아있음을 느꼈다는 사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나 고마웠다.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걸음만으로 하루를 채우던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낯선 풍경이 아닌

낯선 ‘나’를 계속 만나고 있었다.


조금은 참아내는 법을 아는 나,

조금은 내려놓을 줄 아는 나,

누군가의 도움도 기꺼이 받을 줄 아는 나.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할 줄 아는 나.

토롱라패스


길 위에서 마주한 작은 순간들

숨이 차올라 멈춰 선 오르막길,

손끝까지 스며들던 찬 공기,

양 떼의 느긋한 발걸음,

달밧의 따뜻함,

내 걸음에 맞춰 함께 걷던 작은 안내견의 묵묵한 동행

야크와의 따뜻한 눈 맞춤과 잠깐의 동행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나의 길동무들 그리고 잠깐 스쳐 지나간 길 위에서의 작은 만남들


그 모든 장면이 나를 가만히 안아주고 있었다.

‘조금 천천히 가도 돼.’

‘지금 이 순간만 잘 살아도 돼.’

자연은 그렇게 단 하나의 진리를 계속 들려주었다.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걸음은

때때로 너무 빠르고,

때때로 너무 무겁다.


그러나 나에게 맞는 속도는

항상 내 안에 있었다.

그 속도를 찾는 것이

나다움을 찾아가는 첫걸음이 아닐까.


긴 여정의 끝. 마지막 저녁,

세수를 하며 흘러내리던 물줄기 하나조차

나는 새롭게 느껴졌다.

얼굴 위를 스치는 그 차가운 감촉이

마치 나의 오래된 껍질을 흘려보내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나다움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잘 씻겨진 얼굴처럼 담백하고 단순한 무엇이라는 걸.


걷는 동안 나는 수많은 질문과 마주했다.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나의 속도는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나는 누구인지.

이 질문들 앞에서 나는 완벽한 대답을 가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답이 없다고 해서

길이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답을 찾기 위해 걷는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충분한 의미였다는 것을


나는 이 여정을 통해 배웠다.

길 끝에 서서 나는 다시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로, 어떤 리듬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조용히 대답해 본다.


그래도 괜찮아. 지금의 나는, 지금의 걸음으로 충분하니까.


돌아보면, 이 길은 안나푸르나로 향한 길이 아니라

온전히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멀리 떠났기에 비로소 선명해진 나,

고요 속에서 다시 들리기 시작한 나의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를 믿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어디든, 무엇을 향하든,

그 길의 중심엔 늘 ‘나’가 있을 테니.


이 여정이 끝난 후에도

삶은 다시 바빠질 것이다.

해야 할 일도, 감당해야 할 관계도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언제든 숨이 가빠질 때,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이 있다는 것을.


그 길의 이름은

나다움이다.



[나다움을 향한 길 위에서 — 생각 한 줌]

1. 지금의 나를 가장 단단하게 만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그리고 그 순간을 떠올릴 때 나는 무엇을 느끼는가?


2. 목적지가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어떤 마음으로 걸어가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미래 앞에서 내 선택은 불안인가, 신뢰인가?


3. 오늘 내가 넘어야 할 산은 얼마나 거대하게 보이는가?

하지만 그 산은 한 걸음씩만 내딛으면 충분히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잊지 않고 있는가?


4. 나는 지금 어떤 리듬으로 살아가고 싶은가?

누구의 리듬도 아닌

오직 내 삶의 숨, 내 걸음, 내 속도로 살아가기 위해

지금 무엇을 덜어내야 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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