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로드 무비: 유럽에서 문래하다> w/ 제주 귤 와인 시음회
포토 에세이 <로드 무비: 유럽에서 문래하다> 중
떠나며
문래를 처음 걸은 건 2020년 3월이었다. 내가 서울로 10년 만에 이사를 왔다고 하니 경기도 사는 친구는 나에게 서울의 문래창작촌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집 앞 문래중학교를 지나 아담한 문래소공원, 분주한 시립문래청소년센터를 지나 문래역 7번 출구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답답한 마스크를 벗고 고개를 들어 차가운 초봄의 공기를 내 안으로 받아들였다. 평평하고 드넓은 대로를 따라 자란 앙상한 플라타너스 가로수, 대형 아파트 단지와 마트가 있는 이 곳에 창-작-촌이라니, 친구를 기다리며 나는 의아했다. 잠시 후 도착한 친구와 나는 문래창작촌 안에 있다는 햄버거 가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문래근린공원의 끝자락, 당산로와 도림로가 만나는 그곳에서 나는 어떤 달라짐, 낯섦을 느끼고 있었다. 갑자기 서울의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고, 저 멀리 신도림이 보였다. 문래 하늘 아래 나지막한 정체불명의 건물들 사이로 철공소, 공장, 공방, 식당, 카페, 공인중개소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문래창작촌에서 숨은 그림찾기를 하다보면 정말 작업실 바닥에 놓인 누군가의 그림에 발이 치일 것도 같았다. 마스크를 벗고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음식을 먹어도 되는 것인지 걱정하던 그때, 우리는 햄버거를 얼른 먹고 나와 도림로를 거쳐 안양천으로 향했다.
그렇게 2020년 나의 첫 문래하기는 시작되었다. 이제 문래와 인연을 맺은지도 4년. 어느덧 나의 일상의 공간이 되어버린 문래를 낯설게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내 안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연애의 권태기를 가장 잘 극복하는 방법은 암묵적 쌍방 동의하의 거리 두기. 길게 고무줄을 당겨보기로 했다. 멀리 멀리 저 멀리, 유럽까지. 고무줄이 끊어지기 직전 당긴 손을 놓듯, 문래로 찰싹하고 돌아오면, 맘껏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혀 문래답지 않은 방식으로 나는 문래를 다시 느껴보기로 했다.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문래를 알아가기
문래가 아닌 곳에서 문래를 찾아보기
아웃사이더 산책자가 되어 나와 문래를 발견하기
낯섦과 익숙함 사이를 오가며 나는 무작정 걸어보기로 했다. 유럽의 길과 이름 없는 골목에서 방랑하는 유목민이 되어, 나만의 ‘문래 순간’을 만나보기로 했다. 나의 이야기와 문래의 어떤 모습이 마주 닿기를 바라며, 이제 문래하려 한다.
2023년 8월
최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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