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를 달리는 이야기
연보라 얇은 패딩에 하얀 레이스 장갑을 낀 할머니가 느린 걸음으로 버스에 올라선다. 성격 급한 사람들은 출구를 통해 올라타고, 여자 둘은 천천히 할머니가 올라서게 기다린다. 할머니가 발을 잘못 디디자 한 여성이 도와준다. 노약자 좌석이 오늘은 고맙게 느껴진다.
벚꽃이 지난 식목일에 내린 비로 모두 사라지고 난 이후여서인지 사람들의 수도 적고 분위기도 다소 엄숙하다. 어젯밤 기온이 5도까지 내려간 탓에 사람들의 마음이 다시 움츠러든 것 같다. 배경음악은 007 시리즈 영화음악 리믹스. 전자기타 소리가 버스 안 분위기를 애써 띄운다. 창문 밖 햇살은 따스하고, <미션 임파서블>로 음악이 옮겨간다.
원래 4월에 버스요금 인상 계획이 있었지만 물가 상승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계획이 소리 소문없이 사라졌었다. 마을버스 앞에는 ‘더 이상 환승 무료 서비스는 안 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가을이 되면 우리 집에서 문래역까지 있는 감나무에 주황빛의 감이 대롱대롱 열린다. 오늘 그 감나무에 잎사귀가 돋았다.
차가 막히는지, 배차간격이 걱정인 건지, 버스 기사는 문래초등학교 앞에서 하차 문을 열더니, ‘문래역, 여기서 하차합니다’하고는 바삐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연보라 할머니는 여전히 승차 중이시고, 어디서 내리시려나 하고 생각했다. 나에게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노랑이고 친할머니는 핑크다.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When I dream, I dream of you. Maybe someday you will come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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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마을이야기 '영등포에 귀 기울이다' 중 '마을버스를 달리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