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만타 슈웨블린의 <리틀 아이즈>를 읽고
눈에 카메라가 달린 켄투키라는 움직이는 인형이 있다.
켄투키를 사는 사람과 켄투키의 연결 회선을 사는 사람이 있다.
이 둘은 지정할 수 없어 전 세계 어느 곳, 누군 지든 간에 연결될 수 있다.
회선을 산 사람은 켄투키가 되어 누군가를 관찰하고,
켄투키를 산 사람은 인형의 주인이 되어 누군가에게 관찰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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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면, 켄투키를 사겠는가?
아니면, 회선을 사겠는가?⠀
아주 흥미로운 소재지 않은가? 나라면 소름 끼쳐서 켄투키를 사지 않겠지만 켄투키가 되거나 켄투키의 주인이 되거나 둘 중 하나를 꼭 선택해야 한다면 아마 회선을 사 관찰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누구에게나 관음의 욕구가 있겠지만 난 관찰당하는 것보다는 관음적 욕구가 더 큰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 책이 재밌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내가 켄투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더니 너무 재밌었다. 특히 켄투키, 또는 켄투키 주인이 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식으로 진행되어 상당히 몰입도가 좋았다.
설정이 이렇다 보니 켄투키와 주인의 관계는 내밀해질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와, 이런 설정은 규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엄청난 문제가 생기겠는데?라는 다소 전형적인 생각을 하면서 읽기 시작했고 역시 큰일 났군. 하면서 읽었다. 완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도 아니지 않나? 일부 인터넷 방송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방송을 하는 사람이 원할 때만 방송을 한다는 게 켄투키와 다르지만 음성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과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책 소개는 마치 켄투키가 처키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읽다 보니 그런 공포물은 아니고 되게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켄투키가 무서운 만큼 켄투키를 소유하는 사람도 못지않게 무서운 존재라는 걸 느끼게 된다. 인형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뒤에는 익명의 사람이 나를 관찰하고 있는 것이니까 얼마나 소름 돋냐고. 소유할 때의 마음과는 달리 인형을 폭력적으로 대하거나 유기하거나 경멸하는 주인의 모습 또한 소름 돋기는 마찬가지. 책 속에서 이들의 관계는 다양한 모습으로 형성되는데 품을 떠난 다 큰 자식의 대체물이 되어 과한 애착을 형성하게 되는 경우, 외로움이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또는 유행처럼 소유하는 경우도 보여준다. 애착관계가 형성되면 선을 넘어 현실의 관계로 발전하려는 욕구가 생기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어디의 누군가와 연결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장사꾼도 생긴다. 중반이 넘어가면서 어쩌면 작가는 인간과 반려동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을 못 견뎌 반려동물을 데려오고 상황이 변하면 유기하기도 하고 학대하기도 하고, 또 동물권은 무시한 채 이익만을 추구하는 애견 공장이나 무분별한 애니멀 호더 같은 문제들...... 당연하게도 책 속에서 이들의 관계는 모두 어긋난다.⠀
정말 재밌고 생각할 거리도 많았던 책이었다. 작가의 전작인 <피버 드림> 보다는 모호한 느낌이 덜 해서 좀 더 추천하기 쉬운 책인 것 같다. 피버 드림도 인상적이었지만 이번 <리틀 아이즈>도 인상적이었고 이 작가는 그 어떤 작가보다도, 어떤 생각으로 이 책을 썼을까? 어떤 의미일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읽게 되는 작가다. 그래서 다음 책은 언제 나온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