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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토마토 Dec 18. 2023

001. 대감집 노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왜 회사를 열심히 다녀야 할까?

현대의 노예는 스스로가 노예라는 자각이 없다.


나는 취준생이라면 꿈에 그리는 대기업의 2년 차 사원이다.

리로이 존스의 문장으로 말하자면, 2년 차 대기업 노예이다.


이곳을 들어오기 위해 모든 사원이 빠짐없이 면접을 거치며

겉치레든 진심이든 당찬 포부를 선언하며 자신의 능력과 쓸모를 어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1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

우리는 ‘적응’이라는 단어로

자신의 수동적 행태를 포장하고 있다.




사실 어쩔 수 없긴 하다.

부푼 꿈을 가지고 들어왔든, 실상을 알고 들어왔든,

대기업의 환경은 필연적으로 열의와 책임감을 감소시킨다.


스타트업에선 내가 의견을 내야 하고, 각자 일당 백의 책임을 지고, 동아줄이 될 프로젝트에 힘을 쏟는 동안

대기업에선 내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책임 소재가 분산되고, 많은 프로젝트가 생성되는 동시에 사라진다.

아무리 칠전팔기 달려라 하니여도 2인3각 중인 동료 모두가 걸을 때 혼자서 죽을 만큼 달릴 순 없다.

다른 톱니바퀴들의 속도와 맞춰야 시스템이 돌아간다.




근데, 이렇게

말해도 안 들어주고, 동료도 대충 넘겨줬고, 이것도 하다 말 프로젝트고...

라는 수동적 마인드로 일하면

정말 노예가 되어버린다.


내실 있는 경험이 쌓이지 않고,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경력이 쌓이지 않고,

경력으로 쌓이는 게 없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한다.


입사 전 1년 동안의 성취와 에너지를

입사 후 10년을 모아도 따라가지 못한다.

거품 같은 타이틀, 모래성 같은 경력만이 남는다.


시키는 대로 제자리 뛰기만 한다. 근데 그것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대감집 담을 넘을 수 있을까?

대감집에서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먼저 나서서

‘저에게 맡기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노예가 몇이나 될까?

굳게 입을 다문 동류의 노예들 사이에 묻혀 침묵을 유지하고 내게 시키지 않기만을 기다린다.

워라밸을 챙긴다며 애써 외면하지만 인정해야 한다.

사실은 안 하는 게 아니라,

이젠 못하는 것이다.

 

냄비 속 안온함에 다리가 익어버린 개구리는 기동력을 잃는다.




나는 월급루팡하면서 편하게 다닐래!


면접에서의 보여주기식으로 어떻게든 회사와 자신을 엮던 당찬 포부는 다 잊어버린 채

이제는 회사와 자신을 철저히 분리한다.

대기업의 타이틀(내 소유는 아니지만 내게 의미 있다고 여긴다)과 돈만 남기고 의미를 해체한다.

동시에 역시 대기업이라 워라밸이 좋다며 쇠고랑의 견고함과 착용기간을 자랑한다. 그러면서 자만한다.

"이렇게 좋은 대감집 노예로 뽑힌 것도 능력이야."


극단적으로 바라보자면, 먹고살기 힘들어 안정적인 의식주를 위해 자유를 반납하고

제 발로 군대나 감방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삶과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를까?


수능이 10대의 목표였던 것처럼 대기업 취업이 20대의 목표였던 것일까?

벌써 인생을 완주해 버린 것 마냥 자아마저 반납하고, 대기업의 잉여 톱니바퀴가 되려고 한다.



일생동안 직장에서 소비하는 시간은 인생의 1/3을 차지한다.

최소 하루 아홉 시간,  일주일에 다섯 번.

재직 기간 동안 삶의 1/3을 차지하는 시간을

의미 있게 활용하는 대신,

그저 흘려보낸다.


지금 나는 최소한만 일해도 안 잘리고 돈 잘 주고 심지어 대단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왜 굳이 열심히 일해야 하지? 그냥 다니면 안 되나?


난 지금이 만족스러운데 왜 굳이 성장해야 할까?

현대의 노예와 옛날의 노예와 다르다.

현대의 노예는 죽을 때까지 그 대감집에서 일할 수 없다.

노예는 현재에 안주한 나머지 언젠가 자신이 나이가 들고 더 쓸모가 없어지면

대감이 자신을 내쫓을 것이라는 것을 망각한다.

50줄에 들어서면 그제야 이 사실이 피부로 와닿을 것이다.


결국 은퇴 직후부터 죽을 때까지 몇십 년,

준비되지 않은 노예는

갑작스러운 독립을 맞이한다.




그렇지만 다시,

현대의 노예와 옛날의 노예와 다르다.

현대의 노예는 언제든 자유를 선택할 수 있다.


등 떠밀리듯 100세 시대 중반에 퇴직당하는 노예와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춘 상태에서

언제든 머물지 혹은 나갈지를 선택할 수 있는 노예는 다르다.


깨닫지 못한 노예는 결국 아무리 담이 낮고 문이 열려있어도

대감이 내쫓기 전까진 대감집을 나가지 않는다.

아니, 실현할 자아가 없고 실현할 능력이 없으니 나갈 수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노예가 되어 주체적인 삶과 멀어진다.


입사 이후로 제대로 된 성장과 성취를 경험한 적이 없으니

막상 대감집에서 쫓겨나면 방황한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이미 늦었다.

늙고 능력 없는 노예는

긴 대기업 재직 기간 동안

의존하고, 대충 하고, 숨어있다 많은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대기업에 다니면서도

노예처럼 살지 않는 방법이 있다.

최선을 다해 주체적으로 일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노예처럼 살지 않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소위 말하는 노예답게 열심히 회사를 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노예와 현대의 노예는 달라야 한다.

현대의 노예는 주체적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미 게으른 노예처럼 일하는데 무슨 밸런스가 더 필요할까? 그냥 놀고 싶은 게 아닐까?

내 성장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생겼고 재정적, 시간적 여유가 동시에 필요하다면

그때 계약관계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도리만 하면 된다.

그게 대기업의 근무환경이 제공하는 워라밸의 진정한 쓸모다.




내 소유의 회사도 아닌데 열심히 일하면 뭐 해?


회사에 과몰입하지 않는 태도는 나쁘지 않지만,

내 회사도 아니고 내 프로젝트도 아니고.

내 것이 아니니 열심히 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은 정말 근시안적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회사에서 최선을 다하면 회사보다 내가 더 성장한다.

회사는 집단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변수가 많아 내가 하는 만큼 성장하지 않지만,

나는 온전히 내가 컨트롤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만큼' 성장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일수록,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땐

회사가 제공하는 자본, 시스템, 인맥을 모두  사비 한 푼 안 들이고 사용할 수 있다.

책임지지 않아도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win-win이 되니 회사도 나를 신뢰한다. 더 큰 책임이 따르지만 그만큼 더 큰 권리를 준다.

여전히 노예지만, 언젠가 마주칠 독립을 위한 더 많은 인프라가 생기는 것이다.


환경이 잘 갖춰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성장하고 성취해 볼 수 있는 경험은 정말 귀하다.

대감집에 취업하고 싶은 이유는 타이틀이나 워라밸이나 월급이 아닌, 인프라 때문이어야 한다.


기업에서도 뭐든 성취해 본 경험이 있는 지원자를 뽑듯,

회사 밖 인생을 위해선, 회사에서 성장해 보는 경험이 먼저 필요하다.

지금 당장 대기업의 매너리즘과 수동적 환경에서 빠져나와 능동적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 다니는 그곳에 입사하기 위해 한 때 최선을 다해봤다면, 할 수 있다.

특히 이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 같은 저 연차 사원이라면 더더욱 할 수 있다.

항상 최선을 다할 순 없지만 잊지 않아야 한다.


이 회사는 내 것이 아니고, 나는 반드시 늙고 쫓겨난다.




양육이 궁극적 목적이 ‘독립’이라면,

직장의 궁극적 목적 또한 ‘독립’이 아닐까.


전자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독립이라면,

후자는 자아실현체로서의 독립을 완성시킨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대감집에 다니는 동안의 신분은 어쩔 수 없이 노예지만

노예처럼 수동적 마인드로 일하는 것과

주인이 되려는 능동적 마인드로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은

시간의 복리를 거쳐 전혀 다른 미래를 만들 것이다.



저 연차의 대감집 노예가 어떻게 최선을 다해서 뭘 해야 하는지는 다음 편에서 알아보도록 하자.

다음 편 :
002 어떻게 최선을 다해야 할까? (신입 편)
003 어떻게 최선을 다해야 할까? (n년 차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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