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다. 팔을 다쳐서 6개월정도 병원치료를 한 후 운동이 절실해져 큰맘 먹고 p.t를 받았다. 트레이너 선생님은 자비가 없었고, 나도 본전을 뽑아야 한다며 열심이었다. 합이 잘 맞는 한쌍이었다.
그날도 예약시간에 맞춰 운동하러 갔다.
트레이너쌤께서 3킬로그램짜리 덤벨을 쥐어주시곤 팔 운동을 하자고 하셨다. 묵직하다. 버거울 것 같은데... 하지만 쌤은 12회 3세트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첫 세트라 그런지 12회는 그럭저럭 할 만했다. 두 번째 세트엔 4킬로짜리 덤벨을 쥐어주시곤 10회를 시키셨다. 아, 힘들다. 첫 세트 때 이미 힘의 70프로는 쓴 것 같다. 팔이 후달거린다. 악을 쓰며 두 번째 세트를 겨우겨우 해냈다. 무게를 더 올려도 되느냐 물으셨다. '절대 no'를 외쳤다. 트레이너쌤은 웃으시면서 일단 해보자고 하셨다. 5킬로짜리 덤벨을 쥐어주시며 마지막 세트이니 가볍게 8회만 하고 끝내자고 말씀하셨다. 어느 부분이 가벼운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무겁게 덤벨을 들었다. 앞의 두 세트 팔운동을 하면서 나의 모든 힘을 다 쓴 것 같았다. 아놔~5킬로짜리는 진짜 못 들것 같다. 무리무리~~~~라고 속으론 외쳤는데 진짜 웃긴 게 어찌어찌 팔이 올라갔다. 1회, 2회, 3회, 아.... 진짜 이젠 한계다.
"자~호흡하고! 할 수 있어요!" 트레이너쌤이 용기를 준다. 좋아, 그 용기 받아보겠어! 4회에에에....5회ㅣㅣㅣ;엥[에에에에........이제 더는 못한다! 진짜 무리다! 팔에 감각이 없다.
"할 수 있다니까요. 들어 올려봐요!"
6회에엑으으그그그윽~완전 엉망진창 폼이지만 겨우겨우 올렸다.
"완전 엉망인데... 이게 운동이 되는 건가요? 선생님?" 외쳐본다.
"말씀하실 기운이 있으신 거 보니 7회도 가능합니다! 자~도전!!"
망했다.
치이이이일이익익이이히잇~~~익!!!! 안 올라간다. 이제 도저히 못 하겠어요! 아놔~팔이 안 올라가! "그럼 이것까지만 올리시고 끝냅시다~" 그래요? 마지막이라니 온 몸을 비틀어대며, 얼굴 근육까지 심하게 비틀어대며 꾸역꾸역 올려본다. 성공이다.
"자~마지막 8회!"
꽤에엑!!! 아니, 못한다니깐 진짜 저에게 왜 이러시는 거예요? 아까 7회가 마지막이라매!! 8회는 진짜 못한다니깐, 농담 아니고 팔에 감각이 없어요~~ 진짜라니깐요!!! 트레이너쌤이 도와주겠다고 하신다. 그래? 도와주신다니깐 한번 더 해볼까?
파아아으으으아악악ㄱㄱ악~~~70% 정도만 올라가다가 멈췄다. 말할 기운도 없다. 아니 팔이 무감각하다. 덤벨도 놓칠 것 같다. 이러다 덤벨 떨어뜨리고 발등을 찍어서 필히 부상당할 각이다! 이젠 끝이다.
그때 트레이너쌤이 내 팔을 슬쩍 밀어 올려주신다. 진짜 슬쩍 밀어 올려주시는데 가볍게 팔이 올라간다. "이렇게 슬쩍 도와주면 근육이 속아요. '아! 내가 이 무게를 해냈구나, 다음번에도 이 무게를 들 수 있겠구나'하면서요." 트레이너쌤이 웃으신다. 나도 웃었다. 근육이 속아서 우스웠고, 3세트가 드디어 끝나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진짜 웃은 이유는 내가 해내서였다. 트레이너쌤이 마지막에 도와주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해낸 것이다.
나는 가끔 '신'은 '헬스 트레이너'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받았을 때, 그 무게를 뛰어넘기 위해 피똥 쌀 때까지 어떻게든 해 봤는데도 더 이상 안될 때 '타고난 팔자를 속일 수 있도록, 현실을 속일 수 있도록, 나 자신도 속을 만큼' 살짝 도와주시는 존재 말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 내는 간절함을 보일 때 하느님도 부처님도 달님도 당산나무님도 길가의 돌탑님도 도와주시지않을까.
적고 보니 나는 '무신론자'가 아니구나. 현존하는 종교에 가입하지 않았다 뿐이지 신의 존재를 믿는 '유신론자'였다. 내가 믿는 종교는 '하는데까지해보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