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서 서무아작가님의 '여러 얼굴을 가진 층간소음'을 읽다가 문득 두 달 전 경험이 떠올랐다.
우리 집 위층엔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사셨다. 얼마나 조용히 지내셨는지 우리가 이 아파트로 이사 오고 5년이 지나도록 '층간소음'은커녕 위층의 존재도 인지 못 할 정도였다. 하지만 설날 며칠 전부터 북 치는 듯 쿵쿵~콩콩~천정이 울리기 시작하더니 설 연휴기간에 소음이 절정에 다다랐다.
"위층에 새로 이사 들어왔나 봐." 남편이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며칠 전 사다리차를 본 기억이 났다.
"그러게. 이사 와서 이것저것 가구 위치 바꾸느라 쿵쾅거리나 보다." 남편과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한 거 같긴 해. 평생 마당 있는 개인 주택에서 맘 편하게 사셨나? 아파트 생활 처음인 거야? 저렇게까지 계속 시끄러울 수 있는 건가?" 불편한 마음이 비아냥이 되어 입 밖으로 나왔다.
"위층에 한번 가볼까?"
"요즘 위층에 층간소음 어쩌고 바로 말하는 것도 불법일걸? 그냥 관리실에 연락하면 돼."
"그래. 아마 이사온지 얼마 안 돼서 그럴지도. 좀 지나면 조용해지겠지."
남편이 아닌 나 자신에게 한 대답이었다. 처음 듣는 소음에 예민해진 스스로를 안심시키려 한 말이었지만 이 '소음'이 지속적일 거라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층간소음이 더 심해지면 정말로 어쩌지...
다음날 등산을 다녀오니 '비타 500' 20개들이 상자가 반듯하게 식탁 위에 있었다.
"이게 뭐야? 샀어?"
"아니, 위층 남자분이 주셨어. 애가 있어서 좀 시끄러울 거라고. 미안하다면서."
"아~그랬어."
"꼬꼬마 여자애가 같이 왔는데 배꼽인사인지 뭔지 똥을 싸는 자세로 앉아서 인사를 하더라고~흐흐 흐흐흐"
"그래? 귀여웠겠다. 히히히"
층간소음을 이분들도 신경 쓰고 계셨나 보다. 먼저 양해를 구해주시는 마음이 고마웠다. 그 마음에 보답하고 싶어서 다음날 쿠키를 사들고 위층에 갔다. 벨을 누르고 누구냐는 질문에 "아래층이에요"라고 짧게 대답한 후 초인종 위 카메라를 향해 '당신과 싸우러 온 것 아니에요'라는 느낌의 미소를 지었다. 문 안쪽에서 약간의 '후다닥'이 느껴진 뒤 긴장한 표정의 남자분이 문을 여셨다. (미소가 먹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 네..무슨 일..."
무례하지만 말꼬리를 잘랐다. "저희가 날름 받아먹기만 한 게 미안해서요. 음료수 잘 마셨어요. 이거 제가 좋아하는 쿠킨데 커피랑 홍차랑 같이 먹으면 맛있더라고요." 작은 쿠키 상자를 내밀었다.
남자분은 그제야 긴장의 얼굴을 푸시고 웃으셨다. 그 뒤에 실내복에 헝클어진 머리라 전면에 나서진 못하지만 예의상 몸의 절반만 보여주신 아내분도 웃으셨다. 남자분 뒤로 손으로 배를 감싸고 똥 싸는 포즈로 쭈그려 앉아 있는 서너 살로 보이는 아이 두 명은 근엄한 표정으로 자세를 유지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느라 웃지 않았다.
"그냥 드셔도 되는데... 아, 애들이 이렇게 쭈그려 앉아있지만 이게 배꼽인사예요. 자~다시 인사해야지. 인사 인사~"
"아~아네요. 애들이 너무 귀엽네요. 쿠키 드리려고 왔어요. 그럼 전 이만..."
아파트에서 이런 식으로 이웃을 만난 적이 없어서 뭔가 뻘쭘했다. 서둘러 문을 닫으려는 내게 남자분은 다급하게 외치셨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거실에 매트 다 깔았고요, 최대한 조심한다고 조심시키는데 그게 저..."
그날 이후로 똑같은 소리가 들려도 예전 같은 소음으로 들리지 않았다. '소음'은 '모습'이 되었다. 위층에서 드럼 치는 소리가 날 때마다 인사랍시고 똥 싸는 포즈로 앉아있던 근엄한(?) 표정의 그 아이들이 콩콩거리며 뛰는 모습을 상상하였다. 윗집 아이들은 건강하다. 저렇게 잘 뛰는데 건강하지 않을 리가 없다. 건강한 건 좋은 일이다. 다행이다.
내 이웃엔 활동적인 사람이 산다. 조그만 아이들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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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면 몇 년뒤에 이사가시겠지라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아놔~훈훈한 마무리는 양심상 못하겠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