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친구가 ‘뽀닥은 뭔가 얼굴이 부자연스러워~왜 그럴까... 아! 너 이마가 안 이쁘구나!’라고 말했다. 절친되시겠다. 흠~ 듣고 보니 그렇구나 싶더라. 좁은 것 같기도 하고, 봉긋하지도 않고. 그렇구나~못생겼구나! 순순히 인정하고 바로 미용실에 가서 앞머리를 냈다. 이마가 못생겼다는 것은 콤플렉스가 되었지만 쪽진 머리를 해야 하는 조선시대도 아니고 말이지. 앞머리를 내려서 이마를 가리면 되니깐 큰 상처가 되는 콤플렉스는 아니었다. 이후 중년이 된 지금까지 나는 늘 같은 머리스타일을 고수한다. 앞머리를 내서 좋은 점도 있었다. 화장을 할 때 눈썹을 그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어차피 앞머리 때문에 눈썹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바쁜 출근길 뭐라도 하나 안 해도 되니 편하고 좋았다. 그런 내가 최근에 눈썹 펜슬을 샀다. 그것도 두 개씩이나! 관상 때문이었다.
얼마 전 텔레비전을 보는데 ‘관상’에 관한 방송을 하더라. 내가 진짜 중년인 거 티 안 내고 싶지만 이런 데서 안 낼 수가 없다니깐. 이상하게 나이가 들면 들수록 관상, 풍수지리, 먹으면 위장에 좋거나 피부에 좋다는 음식을 알려주는 이런 프로들이 왜 이렇게 재밌는지 모르겠다. 엄마랑 아빠가 그런 방송을 열심히 보시면서 '돼지감자를 사야 해~당뇨에 좋대, 양파를 많이 먹어야 해~피를 맑게 해 준대' 하실 때마다 ‘오늘 또 뭘 봤길래 그래? 그런 걸 왜 봐? 그냥 아무거나 먹어’라고 했던 과거의 나 자신을 반성한다. 관상, 집안에 재물이 들어오는 풍수 인테리어, 무병장수 할 수 있는 먹거리를 소개해주는 방송이 얼마나 재밌는지 그땐 몰랐다. 예전엔 무한도전이 제일 재밌었는데... 어찌 됐든 내 얼굴이 어떤 관상인지 궁금했다. 젊을 때보다 하루하루 주름지고 늙어가서 기분이 쭈글탱하지만 어쩌면 관상으로는 좋은 얼굴일지도 모른다. 예로부터 ‘귀 잘생긴 거지는 있어도 코 잘생긴 거지는 없다’라고 하지 않던가. 어디 어디~나는 어디가 잘생겨서 잘 먹고 잘 사는지 집중해서 보기로 했다.
관상가가 눈썹에 관해 얘기했다. 눈썹은 눈 위에 지붕 같은 역할을 해서 눈보다 길어야 한단다. 눈보다 짧으면 길게 그려주면 된다 그랬다. 내 눈썹을 봤다. 눈보다 짧았다. 이런이런~그럼 안되지! 관상가가 길게 그려주면 좋다고 했으니까 지금부턴 매일 그려야겠다 싶었다. 평생 눈썹 펜슬을 사본적이 없으니 집에 있을 리 없다. 관상이 좋아져서 팔자가 펴진다는데 그깟 펜슬 값이 대수냐. 두 개나 사 가지고 왔다.
그리고 거울을 보고 눈썹을 이쁘게 그리기 시작했다. 내 자랑은 아니지만 처음 그리는 거 치고 정말 잘 그렸다. ‘그린다’는 행위여서 그럴까? 요모조모 얼굴 상태를 보며 조화롭게 눈썹을 그려놓고 보니 뭔가 이상하던 얼굴이 더 이상 뭔가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이마가 못생긴 게 아니었다. 아니다! 이마도 조금 못생겼다! 하지만 내 얼굴이 부자연스러워 보였던 것은 이마가 아니라 눈썹이 월등히 못생겨서였다!
가끔 이렇게 나의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나 스스로 파악 못 할 때가 있다. 남들이 말해준 것을 진실이라 믿고 그걸 콤플렉스 삼고 위축될 때도 많았다. 그리고 남들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 했다. 진짜 문제가 뭔지도 모르고 말이다. 내 얼굴의 문제를 파악하는데 20년이 걸렸다. 나의 됨됨이를 파악하는 데는 또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남들이 말하는 것에 너무 신경 쓰지 않고 나를 찬찬히 들여다볼 생각이다.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의 못난 점이 파악될 것이다.
눈썹 펜슬은 화장품 가방에 하나, 욕실에 하나. 이렇게 두 개를 두고 지워진 것 같으면 수시로 그린다.
화장은 안 하지만 눈썹만은 그린다. 얼굴이 훨씬 안정되어 보인다.
나의 못난 점을 하나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