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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빛 Jul 02. 2021

가족, 꿈처럼 이어지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 리뷰


<남매의 여름밤>은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옥주와 동주의 어머니는 남매에게 쇼핑백만 남길뿐 현실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지만 옥주에게 현실의 어머니는 완강히 있음을 거부해야 하는 존재이다. 낡았지만 포근한 2층 집처럼 말없이 옥주와 동주를 보듬어주던 할아버지는 여름이 끝날 무렵 돌아가신다. 어느 여름 새벽, 소파에 앉아있던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낡은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옛 가요를 들었던 옥주는 할아버지가 남긴 소파의 빈자리를 보고 흐느낀다. 옥주와 동주의 할머니는 빛바랜 결혼사진 속에만 존재한다. 이제 할아버지도 그렇게 사진 속에만 남게 되었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항상 곁에 있기를 원한다. 하지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것처럼 모든 관계는 사라져 간다.


그 해 여름, 풍성했던 할아버지의 정원



<남매의 여름밤>은 존재하는 꿈을 이야기한다. 


옥주는 장례식장에서 꿈을 꾼다. 돌아온 엄마를 포함한 가족들은 둘러앉아 같이 식사를 하고 환히 웃으며 동주의 춤을 본다. 죽은 할아버지가 산 엄마를 부르고 가족이 다시 있게 된다. 그리고 어느 여름밤, 옥주는 고모에게 할머니가 보고 싶지 않냐고 묻는다. 고모는 희미해진 기억 속의 할머니를 꿈을 통해 다시 본다. 어느 여름 낮, 아빠는 꿈을 통해 어릴 적 할아버지의 장난을 보고 동주를 깨워 그 장난을 다시 친다. 아마 동주도 먼 훗날 어느 여름 낮, 꿈을 꾸며 아빠의 그 장난을 보게 될 것이다.


두 남매(옥주-동주, 아빠-고모)는 현실에서 없어진 존재들을 꿈을 통해 다시 보고 기억으로 간직한다.


동주의 춤은 할아버지의 생일(현실)과 장례식장(옥주의 꿈)에서 반복된다. 옥주의 꿈속에서 죽은 할아버지는 살아있는 어머니로 등장한다.


가족이 이어진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남매의 여름밤>의 영어 제목은 ‘이주하다, 나아가다’를 의미하는 ‘moving on’이다그리고 영화의 오프닝은 옥주와 동주, 아빠가 할아버지 집으로 이사하는 장면을 트래킹 숏으로 길고 끊이지 않게 포착한다. 오프닝의 이사는 단지 물리적 장소의 이전만이 아니라 카메라의 움직임처럼 한 가족 내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세대의 여정처럼 보인다.


<남매의 여름밤>은 그렇게 두 남매가 한 가족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언젠가 옥주와 동주 남매도 아빠와 고모 남매의 나이가 될 것이고 다음 세대의 남매에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할아버지의 2층 집은 현실에서는 사라지겠지만 남매의 꿈을 통해 남아 있고 기억되고 전달되지 않을까. 한여름 밤의 꿈을 통해 그들은 가족이 된다.


공간이 품고 있는 가족. 그들은 한여름 밤을 통하여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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