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야. 여름은 나에게 재밌는 일이 일어나는 계절이거든. 이번 여름도 그런 것 같아. 정말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거든. 늘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두둥실 떠다니는 생각을 하면서 지낸다고 느껴. 보통 그런 생각들은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말하지 않아. 간혹 참지를 못하고 그런 생각들을 입 밖으로 꺼낼 때면 누군가에게 가닿지 못하고 흩어져버리는 말들이 때로는 외롭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오랜만에 내가 하는 말들이 누군가에게 가닿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내가 너무 신나 버렸어. 사는 게 재미없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내가 하는 이야기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사는 게 조금은 재밌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사는 건 백만 가지 재앙이고, 가끔 역겨운 사람들과 의미 없는 싸움도 해야 하고, 또 자주 외롭고 지치잖아. 그래서 이번 여름도 나의 여름답게 잘 보내고 있는 것 같아. 매해 여름은 나에게 특별해. 이번 여름도 아마 그럴 것 같아.
여름은 비가 많이 오는 계절이잖아.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이번 여름을 보내며 너는 자주 툴툴거렸지. 하지만, 나는 비를 싫어하지 않아. 물론 비가 오면 나도 성가시다고 느껴. 하지만 나는 내가 거스를 수 없는 것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해. 그래서 나는 지금 이대로도 좋아. 더 바라는 건 없어. 사회에서 정한 형태나 모습으로 규정하지 않아도 좋아. 우리는 우리의 것을 하자. 어차피 영원한 건 없고, 얄팍한 단어로 정의 내리려고 해도 그건 다 허상이잖아. 늘 그렇듯 지금 여기서 존재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잖아. 이 순간을 판단하거나, 그 끝을 가늠한다거나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잖아. 물론 욕심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지금 네가 꿈꾸고 있는 것들이 훨씬 더 빛이 나는 것이라는 걸 내가 알아버렸으니까. 나는 진심으로 그 빛이 계속되길 바라거든.
이건 일종의 고백이기도 하지만 나의 글이기도 해. 어쩌면 소설일지도 모르고. 언젠가 이 글도 내가 쓸 소설의 일부가 될지도 몰라. 나보고 글 써오라고 했잖아. 어쨌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알다시피 내가 과하게 성실하고 약속을 잘 지키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네가 내리고 간 소나기 덕분에 늘 그렇듯 나는 적당히 축축한 여름을 보냈어.
너는 지금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