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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늘 Mar 04. 2022

<타이페이 스토리>(1985) 에드워드 양

도시의 반짝이는 네온사인 아래 등 돌린 두 남녀

4차선 도로에 오토바이와 자동차 그리고 버스까지. 타이페이의 낮은 소음으로 가득하다.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하루는 오토바이 경적으로 시작된다. 밤으로 시간이 탈바꿈되면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고독한 도시로 바뀌는 타이페이. 현대화를 겪는 젊은이들은 그 도시 안에서 방향을 잃은 채 항해하는 배에 올랐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운 영화의 미장센. 에드워드 양 감독의 초기작 <타이페이 스토리>(1985)는 대만 뉴웨이브의 정점에 서 있는 작품이다. 장편 데뷔작인 <해탄적일천>(1983)을 시작으로 대만 영화계에 새로운 시작을 알린 에드워드 양은 기존의 대만 영화의 형식에서 벗어나 영화를 제작하였다. 최근 <해탄적일천>이 극장을 통해서 개봉되었으니 감회가 새롭다. 이 영화의 원제인 That Day, On The Beach라는 제목처럼 해변에서 일어난 일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극은 진행된다. 그날 그 해변에서 일어났던 일은 여성의 사회적인 위치와 삶의 흔적들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큼의 사건으로 영화의 중심 장소로 그려진다. 에드워드 양 감독 작품은 공간이 주요하게 그려진다. <타이페이 스토리> 역시 공간의 아름다움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타인의 공간과 나의 공간 

커다란 창틀 앞에 나란히 서 있는 두 남녀. 방 안에는 오후의 햇볕의 따스한 열기로 가득하다. <타이페이 스토리>의 오프닝 시퀀스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수려하다. 곧 미국으로 떠날 아룽과 타이페이에 남아 이사 갈 집을 찾는 수첸. 커다란 집안을 가득 메운 적막감은 이내 수첸이 자신의 집을 채워가는 공간의 편집으로 이어진다. 에드워드 양의 고유한 인장이 새겨지듯 공간을  가득 채운 물건들의 인서트 컷을 연속적으로 배치함으로 수첸의 심리를 묘사한다. 수첸의 집 안에는 미국의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집안에는 마릴린 먼로 포스터, 그와 관련된 비디오테이프, 잡지들까지. 1980년대 격변의 아메리칸 드림이 심벌처럼 등장했을 때 그 중심에 수첸도 함께 했다. 대만의 여성의 삶은 미국처럼 동등한 모습이 아니었고 수첸은 그 삶을 동경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아룽에게 이민을 가자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아룽의 생각은 수첸과 다르다. 그것이 도피처가 될 수 있다면서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한다. 두 캐릭터는 이제 천천히 서로에게서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두 캐릭터를 상징할 수 있는 요소들은 영화의 곳곳에 등장한다. 아룽으로 상징되는 것은 야구. 미국에서 돌아온 아룽이 지속 보는 것은 소년들이 야구를 하는 장면이다. 투수가 공을 받고 타자가 그라운드에서 뛰는 복잡한 듯 보이지만 단순한 이 운동경기는 아룽이 선망하지만 이루지 못하는 인생의 룰이다. “인생은 야구 플레이처럼 간단한 게 아니야.” 인생의 난제들은 9회 말이 되면 끝나는 것이 아닌 변수가 존재하는 예측 불가의 것이다. 



수첸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유독 건물들과 연관이 깊다. 수첸이 보는 도시의 네온사인은 아름답게 빛을 내지만 그 안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 도시의 삭막한 공기 속에서 수첸은 눈을 감는다. 아룽이 아닌 여동생의 친구인 낯선 이에게 위로를 구할 수밖에 없기에. 네온사인 전광판 아래에서 그저 빛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아룽과 수첸의 대화는 단절되어 있다. 투 샷으로 존재하기보다는 단독 샷으로 서로를 바라보지 않은 채 등을 돌릴 뿐이다. 왕가위 감독의 <타락 천사>(1994)처럼 도시 안에 가득한 불빛과 그것에 융화될 수 없는 이들의 쓸쓸한 이야기와 같다. 대도시 안 인물들의 관계 안 작은 공백들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쇼트 안에 여백을 남긴다. 아룽과 수첸이 텔레비전 속 야구 경기를 보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비춘다. 시끄러운 야구 경기가 진행되는 사이로 무미건조하게 오가는 대화는 영화 속 유일하게 나란히 앉아 대화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다. 이마저도 카메라는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을 비출 뿐이다. 이후에 식탁에 앉아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거실 벽에 비친 그림자를 통해 그 간극을 더 크게 할 뿐이다. 영화는 시각적인 미장센 안에서 공허함을 만들어내고, 두 사람의 대사에 음악은 최대한 배제한다. 커플인 두 사람이 유일하게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던 것은 오프닝의 장면들이다. 


공간의 여백과 프레임의 미학 

에드워드 양 감독은 프레임 안에 공간의 여백을 만들어 냄으로써 미학을 창조했다. 마치 오래된 필름 사진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영화의 컷들. 수첸과 아룽이 지향하는 바는 서로 다르다. 허상과 현실의 미묘한 경계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거울을 닮았다. 같은 면을 비추는 듯 전혀 다른 상이 맺힌 거울. 아룽은 수첸의 집에 걸려있는 액자 속 그림에 손을 댄다. 액자 안의 그림은 손바닥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다. 실재하는 손바닥이 아닌 허상의 손바닥. 그것은 액자의 유리면이 맞잡을 수는 없지만, 손을 대보고자 하는 마음이다. 미국을 다녀온 아룽에게 이민은 허상으로 가득한 이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에 반해 타이페이에 남아있던 수첸은 액자 너머의 손바닥을 실제라고 믿고 공간을 채운다. 액자들이 걸려있음에도 수첸의 집 안에는 의미모를 공허함만이 가득하다. 1980년대 대만에서 여성의 지위는 마치 수첸의 아버지가 식탁에서 떨어뜨린 수저처럼 한없이 추락한 상태였다. 이 장면에서 수첸의 아버지는 자신의 수저를 떨어뜨리고 자연스럽게 수첸의 수저를 가져간다. 여성으로서 누릴 수 없는 것들에 동경하던 미국의 것들은 어느새 수첸의 방 안을 가득 메웠고 그 안에는 희망의 빛이 들어앉았다. 


아룽은 프레임 안에서 결정을 하지 못하고 정처 없이 헤매는 방랑자다. 택시를 잡으려고 도로를 달리지만, 그 컷에서 카메라는 점점 멀어진다. 미디엄 샷에서 롱 샷까지 멀어지던 카메라의 모습에서 아룽의 표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질주하면서 잡고자 했던 것은 택시가 아닌 지금의 현실이다. 눈앞에 놓인 현실조차 마주하지 못하는 이 젊은이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다. 에드워드 양 감독이 설계한 캐릭터 간의 간극은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커진다. 서로에게 의지하지 못하는 이상한 관계들 사이에서 프레임 안에는 인물들 간의 여백이 생기고 공간에도 여백이 생긴다. 수첸의 집안을 가득 메웠던 희망의 빛마저 그 여백 안에서 점점 옅어졌다. 서서히. 




대만 뉴웨이브의 외침

“미국으로 가면 어때?” 수첸은 아룽에게 말한다. 이는 대만 젊은 청년들의 목소리가 아닐까 싶다. 이 현실에서 더 나은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 수첸의 현실은 자신의 직장이 기업에 인수당하고 사직한 상태다. 새로운 건물들 사이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려는 수첸의 마음은 대만의 젊은 청년들을 닮았다. 두려움과 설레는 양면적인 감정의 공존은 수첸과 아룽을 통해 드러난다. 후반부에 다다라 두 사람은 불이 꺼진 수첸의 집에서 대화를 나눈다. 표정이 드러나지 않기에 더 슬픈 이 장면은 마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환상의 빛>(1995)의 장면이 생각난다고 해야 할까. 아룽은 미국을 가는 것, 그리고 결혼을 하는 것은 그저 도망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정면으로 상황을 마주하지 않고 각자를 감추는 행위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진실이기는 하나 어둠에 묻힌 진실. 화려한 도시 안에서 자유로이 외칠 수 없는 이야기다. 영화는 이 장면을 위해 쉴 새 없이 달려왔을지도 모른다. 앞선 장면들의 여백은 그리하여 더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아룽은 이제 어둠 속 수첸의 집에서 나왔다. 그녀를 남겨두고. 


아룽과 수첸은 이제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간다. 수첸의 집 앞에 있던 남자로 인해 칼을 맞은 아룽의 삶의 마지막은 허무하다. 푸른빛이 어스름히 내려앉은 새벽, 그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려진 텔레비전 속에서 대만 소년야구단이 우승하는 장면을 본다. 에드워드 양 감독이 내비친 약간의 희망이다. 어쩌면 야구 플레이처럼 간단한 룰이 적용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줄곧 이어져 오던 비관적인 태도에 약간의 균열이 생긴다. 수첸은 이제 타이페이의 커다란 건물들을 내려다본다. 미국에 가지 않고 대만에 남는 선택을 하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지 않냐는 새로운 직장 상사의 물음에 “그는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어요.”라고 답한다. 수첸이 보고 있는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쳇바퀴 같은 삶은 아직도 공허하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유리면으로 인해 왜곡되어 보이는 자동차들은 마치 강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수첸은 그저 바라보고 또 볼 뿐이다. 그것은 예측할 수 없는 것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경기를 치르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대만의 중심부 타이페이를 살아가는 모든 대만 청년들에게 에드워드 양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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