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고마웠어요
누군가 그랬다.
결혼하고 가장 힘든건 시월드라고.
모든 관계에 "시" 접두사가 붙으면 참 힘들다고.
이혼 서류를 내고 오던 날.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
6개월간 참 열심히 버텼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가냐는 남편에게
"잘가"
한마디 남기고 돌아서는데 문득 생각난건 시어머니였다.
남들은 징글징글 싫다는 시댁이지만,
나에겐 눈물 나는 결혼 생활을 버티게 해준 고마운 분이었다.
마마보이의 "엄마, 엄마" 소리에 시어머니가 징글징글하게 싫을만도 한데,
정작 어머님은 참 좋은 분이셨다.
너무나도 고되었던 시집살이.
자식세대에게는 물려주기 싫으시다며,
"너네가 행복하면 그만이야"
라며 아껴주시던 어머님이셨다.
남편과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 허락을 위해 어머님을 찾아뵈었을때,
어머님은 "반가워요 아가씨"라며 소녀처럼 웃으셨다.
햇살처럼 따스한 분.
하나뿐인 며느리, 혹여라도 아들이 속썩일까 싶어 염려하셨다.
만날때마다 자신의 아들을 붙잡고 "그린이한테 잘해줘야해."라며 당부하셨다.
함께 식사를 할때면 고기 반찬은 모두 내 앞으로 밀어주시던 어머님.
휴가를 가는 우리에게 "재상이 몰래 너 혼자 써" 라며 용돈을 쥐어주시던 어머님.
내 생일날, "울 그린이 잘 지내니. 꽃이 너무 예뻐서 보낸다. 생일 축하해" 라며 사랑을 표현하시던 어머님.
내가 행복하길 바란다며 항상 기도해주시던.
대구에 계신 부모님이 보고싶다던 내 말이 맘에 걸리셨는지, 항상 엄마처럼 챙겨주시던 어머님이셨다.
결혼 생활 동안 나는 여러번 아팠다.
스트레스로 인해 산부인과를 제집 드나들듯 다녀왔고, 잦은 몸살에 시달렸다.
그때는 결혼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인지도 모른채, "내가 몸이 왜 아프지?" 갸우뚱 거렸고,
남편은 "네가 자주 씻지 않고 게을러서 그래" 라며 못된 말을 밥먹듯이 해댔다.
부모님께서 걱정하실까봐 말도 못하고 끙끙대던 나를 챙겨준 사람은 다름 아닌 어머님이셨다.
엄마밥이 먹고 싶다며 집에서 혼자 훌짝이던날들.
언제부터인가 어머님은 반찬을 보내오셨다.
"그린아. 잘 먹구 아프면 안돼. 건강이 제일이야."
바쁜 회사 일상 속에서 배달 음식으로 대충 끼니를 떼우던 내게 어머님은 매번 남편을 통해 반찬을 가져다주셨다.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만 가득했던 반찬들.
다이어트 때문에 밀가루는 줄이고 있다고 지나가듯 이야기했었는데,
어머님께서는 밀가루 대신 계란으로 반찬을 만드셨다.
남들은 혀를 내두르는 시월드지만, 내겐 남편의 냉대를 그나마 견디게 해준 서울엄마였다.
남편이 내게 최후통첩으로 이혼을 이야기한 날,
울면서 집 밖으로 나와 휴대폰을 한참 만지작 거렸다.
'힘든 일 있으면 꼭 의논하라고 하셨는데...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논의는 드리는게 맞는걸까?'
완벽한 아들이고 싶어하는 남편에게, 시어머니께서 우리 결정을 아는 것은 치명타일것.
그랬기에 결혼 생활 기간동안 힘든티 한번 내지 않았다.
"오빠가 얼마나 잘해주는지 몰라요 어머님"
항상 밝게 웃으며 어머님께 보였던 모습들.
더 이상은 버틸수 없었다.
- 어머님. 저녁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오빠가 결혼 생활 동안 이혼을 여러번 이야기했어요.
오빠는 제가 한 일들이 쌓여서 마음이 돌이켜지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그 동안 걱정 하실까 말씀 드리지 않다가, 제가 더 이상은 버티질 못해 밤 늦게 연락드려요..
중재요청이었고, SOS였다.
'엄마. 저 너무 힘들어요. 도와주세요.'
어머님께 연락이 왔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주말에 남편과 차분히 함께 이야기해보자던 어머님.
수요일 저녁이었다.
출근하는 내게 아침 잘 챙겨먹고 잘 다녀오라며 연락하시던 어머님.
나를 향한 걱정이 가득한 카톡에서 어머님의 찢어지는 마음과 염려가 느껴졌다.
'어머님은 지혜로우시니까, 이 상황을 타개하도록 도와주실거야'
주말만을 기다리며 기도하던 내게, 남편은 금요일 자정, 다시 이혼을 이야기했다.
"엄마랑 이야기 끝냈어."
남편과 이혼 전, 어머님을 만나뵈었다.
예의도, 체면도 아니었다. 그냥 가족이니까. 그래서 뵙고 싶었다.
일주일 사이 수척해지신 어머님.
많이 아프셨다고 했다.
무엇이 힘들었냐고 물으시며 내 마음을 위로해주시려는 어머님은
그 와중에도 내가 걱정된다며 식사를 포장해오셨다.
힘들어도 굶으면 안된다고.
눈물이 났다.
서울엄마는 자신도 힘든 와중에 내 걱정뿐이었다.
만나서 다 이야기해야지 라던 내 생각과 달리 말문이 턱 막혔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결국 나는 남편이 냉대했다는것만 간단히 이야기하였고, 여자로써 사랑 받지 못했음을 털어놓았다.
어머님은 한참을 멍하게 계셨다.
힘들어하셨다.
교회 카페에서 마주앉은 우리는 편지를 교환했다.
서울엄마의 마지막 편지.
나의 편지.
나의 편지에는 남편을 많이 혼내지 말고 안아달라는 당부가 있었다.
그가 많이 혼나면서 자랐음을 알기에.
그가 착한 아들이고 싶어하는 마음을 알기에.
어찌보면 주제넘은 편지.
어머님의 편지에는 남편이 결혼생활의 힘듦을 이야기하며 울어, 이혼을 말리지 못했다는 말과,
가족이 되어주어 고마웠다는 인사가 적혀있었다.
참, 서울 엄마다운 편지였다,
내가 마음 아플까, 많이 울까 걱정하는 내용이 가득한 편지.
집으로 가는 길,
서울 엄마는 내가 탄 버스가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채.
반찬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엄마다운 멘트도 함께.
다음 날 아침,
서울 엄마에게 메시지가 왔다.
- 울 그린이. 편지 잘 읽었어.
그린아. 이 길이 끝이라 생각하지 말고,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간다고 생각하자.
상재를 위한 네 마음이 편지에서 느껴져서 더 마음이 아프구나.
점심은 고기로 든든히 먹구.
우리 그린이가 그린이를 더 많이 사랑해주고 아껴주길 바랄게.
서울엄마의 마지막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