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에겐 말하지 말아줘
"이혼하자"
이혼을 내뱉은 그는 더이상 말이 없었다.
"이혼이 장난이야? 우리 결혼한지 이제 2주 지났어."
"그래. 생각해보니, 가족들도 엮여있는데 쉽게 이혼은 아닌것 같아. 네가 이전에 이야기한것처럼 부부 상담이라도 받아보자."
결혼을 준비할때 그가 4번 파혼을 이야기했다.
그때마다 메리지 블루려니하며 달랬던 지난날들.
나도 힘에 부쳤지만, 조금만 더 힘내보자는 생각으로 상담을 신청했다.
돌이켜보니, 그와 나는 동상이몽이었다.
우리의 가정을 지키고 싶은 나.
자신의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남편.
시어머니께는 말하지 말라던 그의 당부를 나는 네번째 이혼 통보를 들은 날까지 바보처럼 지키고 있었다.
그의 좋은 남편, 멋진 아들 역할을 도와주며.
회사 일과를 마친 금요일 저녁 7시.
그와 함께 상담 선생님을 만났다.
"두 분이 이 상담을 통해서 얻고자 하시는건 뭔가요?"
상담의 목적을 묻는 선생님.
"부부관계가 회복되고 다시 친밀해지길 원해요."
"이혼하더라도 각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잘 알고 싶어요."
나와 그의 대답은 달랐다.
"우리"를 말하는 나와 "각자"를 말하는 그.
눈물이 났다.
내가 대체 뭘 잘못한건지.
지금 생각해보면 내 잘못은 없었다.
그와 나, 쌍방의 잘못이었고,
서로가 기대하는 가정상은 너무나도 달랐다.
"아내분과 남편 분의 기대가 다른데, 아내분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아요."
사실 괜찮지 않았다.
그날, 상담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하염없이 울었다.
가구에 막혀 문도 닫히지 않는 그 작은 방에서 나는 남편에게 들릴새라 소리죽여 울었다.
"혹시 두 분의 문제에 대해서 주변에서 아시나요? 부모님이라던지요."
상담선생님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엄만 몰라요.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요. 다 끝나고 말할거에요."
나는 침묵했다.
왜냐면 나는 엄마에게 말했으니까.
상담 이틀전, 남편과 계속되는 불편한 공기 속에 숨이 막혀왔다.
이러다가 상담 전에 내가 쓰러질것만 같아 급하게 연차를 썼다.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울었다.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너무 창피했다. 결혼한지 겨우 한달인데 이혼이라니
한시간을 망설였을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남편이 이혼하재. 나랑 눈도 안 마주쳐. 나 어떻게 살아."
"그린아. 괜찮아. 이혼하자고 하면 이혼해. 엄만 우리 그린이가 최선을 다했을거라 믿어.'
그때 엄마는 화를 내지도 않고, 침착하게 나를 달래줬다.
나중에 듣기로는 엄마가 많이 울었다고 했다.
우리 고운 딸 시집 보냈는데 어쩌면 좋냐고.
딸바보 아빠 가슴에 못이 박힐까 엄마 혼자 몇날며칠 끙끙 앓았다고 한다.
못난 딸은 남편 사랑 받으려고, 시엄마 사랑 받으려고 이리저리 애쓰는 동안,
우리 엄마는 힘든 티 한번 내지 못했다.
남편이 안부차 전화를 드리면 엄마는 항상 말했다.
"재상아. 우리 그린이 사랑하지? 많이 아껴줘."
6개월의 결혼 생활 내내 엄마는 애를 태웠다.
내 카톡 프로필 결혼 사진이 내 독사진으로 바뀔때마다 혹시 싸운건 아닐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고 했다.
딸 속상할까 티도 못낸채 잘 지내냐고 종종 안부만 물으셨다고 했다.
그는 아직도 모른다.
그가 체면 차리기 위해 안부전화랍시고 우리 엄마에게
"장모님, 그린이는 잘 지내요" 라고 저녁에 전화 했을때
엄마는 그 전날 울던 나를 전화로 달래고 있었다는것을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있었기에
나는 6개월이라는 긴 결혼생활을 겨우겨우 버텨낼 수 있었다.
"그린아. 부부는 가족이야.
미운 모습도 예쁜 추억으로 덮으면서 서로 다독이는게 부부야."
엄마가 오뚝이처럼 일어나 아빠를 사랑했듯이,
나도 그렇게 남편을 사랑하고 싶었다.
엄마가 너무 오뚝이처럼 씩씩하게 잘 살아서
나는 엄마가 괜찮은 줄 알았다.
이럴줄 알았으면 엄마한테 이야기하지 말걸.
이혼을 마침내 남편과 결정하고 집에 왔을때 엄마는 계속해서 잠을 설쳤다.
"우리 엄마는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바보 같은 나는 남편의 그 말을 존중한답시고 시어머니께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엄마가 강한줄만 알고 엄마에게 종종 이야기를 했다.
너무 힘들다고.
오뚝이 우리 엄마는 속으로만 펑펑 울었다.
그의 어머니가 이혼 소식에 앓아누웠다는 말에,
나는 8장의 편지에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고 바보처럼 적었다.
정작 내 엄마가 반년동안 얼마나 가슴 앓이를 한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