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왜 우리 가족을 좋아하지 않아?

나는 오빠가 좋아서 결혼한거지, 오빠네 가족을 좋아해서 결혼한게 아냐

by 그리니

결혼식 전, 회사에서는 프로젝트가 막바지로 향해 가고 있었다.

"우리만 믿고 잘 다녀와요 그린님!"

자신들을 믿고 편하게 결혼식과 신행을 다녀오라는 팀원들.

너무 고맙고 미안했기에 결혼식 이틀전,

나는 새벽 6시까지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결혼식에 와준 동료들에게 미안함과 반가움이 뒤섞인 인사를 나누고,

나는 신행길에 올랐다.

프로젝트 마무리 단계라 바쁘게 울리는 메신저.

회사에 돌아가면 할일들이 머리에 가득했지만

10일간은 걱정하지 말라고, 메신저 꺼두라던 동료들의 말을 기억하며

나는 신행의 즐거움에 흠뻑 빠졌다.


신행에서 돌아오자, 야근은 바로 시작되었다.

시차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냐며 미안해하는 동료들의 눈가에는

다크서클이 짙게 서려있었다.


10일간의 휴가를 다녀오도록 백업해준 동료들에게 고마워하며

그렇게 저녁 11시까지 매일 야근이 시작되었다.


매일 일에 지쳐 막차를 타고 들어오던 내가 안쓰러웠던걸까.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데리러 갈게"


"그린님 지하철 안 타요?"

"먼저 가셔요. 남편이 데리러 온대요"

"어머어머 진짜 스윗하다!"


장난스럽게 놀리는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는 남편의 차에 올랐다.


"고생했어"

"데리러 와줘서 고마워 오빠"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반쯤 비몽사몽한 시간.

시계는 12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린아. 나 이번 주 토요일 점심에 축구 간다."

청첩장모임과 결혼식,

짧았던 신혼여행,

가족 인사.

그와 함께한 시간이 짧다고 느꼈던 내게 마음속에서 "뭐라는거야?"하고 성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이해해야지.


"그래. 재밌게 다녀와"

내 눈치를 보던걸까. 그는 우물쭈물하더니 다시 입을 뗐다.

"그린아, 그리구 5월에 어버이날이랑 어린이날 있잖아. 그때 할머님이랑 우리 외가 식구들이 같이 보재."

"갑자기? 언제?"

"몰라. 정해지면 알려주겠지? 너가 가족행사는 미리 말해달라고 해서 알려주는거야"


결혼식 전에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4월에 어머님,할머님 뵙고 인사드리기로 했는데...

5월에는 외가 친척들도 만나야한다며 통보하는 그에게 짜증이 밀려왔다.


야근만 아니었어도 그렇게 화가 나진 않았으려나.

아님 주말에 같이 있는 시간이 있다면 서운하진 않았으려나.

말할 힘조차 없던 나는 차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내 눈치를 계속 봤던걸까.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장난을 걸어왔다.

"그린아, 왜 그래~ 옷 사러 갈까?"

"오빠, 미안한데 내가 너무 피곤해서.. 나 괜찮아."


방에 앉아 내일 일할 내용을 정리하는 내게 그는 계속 우물쭈물하며

말을 걸어왔다.


"그린아, 화 풀어~ 표정이 왜 그래?"

"오빠, 나 정말 괜찮아..! 몇 시 부터 몇 시까지 가족행사 있을지만 알려줘"

"가족행사에 그런게 어딨어... 하루 종일 비워야지"

"알겠어."


시무룩한 남편은 곧 욕실로 씻으러 들어갔다.

'그래도 오빠가 나 걱정해서 데리러 와준건데 너무했나'


내 기분이 왜 이리 안 좋을까.

결혼도 처음이고, 가족행사도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곰곰히 내 감정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나는 사람을 만나면 긴장을 많이 하는 타입이다.

그의 외가 식구들을 처음 만났던 날들이 떠올랐다.

어색하게 인사하던 순간들. 가끔 나누던 대화와 나 혼자 묵묵하게 먹던 밥.

'아, 내가 시댁 모임을 생각하니 긴장이 되는거구나.'

남편에게 내가 화나지 않았음을 카톡으로 설명했다.


"오빠. 나는 가족모임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 표정이 안 좋았다면 미안해.

다만 가족 모임에 내가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해.

그리고 오빠랑 나랑 청첩장 모임 때문에 결혼식 전에 너무 바빴잖아.

바쁘더라도 우리 둘만의 시간을 좀 가지고 싶어.

나는 오빠랑 더 친해지고 싶은데 계속해서 가족 모임이 있으니까 좀 부담스러워.

오빠를 더 알아갈수록 가족들과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질거야. 시간을 조금만 줘"


남편은 거실, 나는 안방.

남편에게 상처를 줄까 쓰고지우고를 반복하길 몇번째.

나는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잠들무렵 띠링 울린 휴대폰.

남편이었다.


"갑작스러웠던건 미안해.

근데, 표정 관리좀 했으면 좋겠다. 네가 기분이 안 좋다고 해서 그렇게 찡그리고 있으면 내가 계속 네 눈치를 봐야하잖아? 내가 너 표정 고치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 다른 사람 배려좀 해.

가족이랑 어색하면 더 자주 봐야하는거 아니야? 자주 봐야 친해지는게 당연한데 너는 왜 그걸 이해 못해?

결혼하면 가족을 챙겨야하는건 당연한거 아닌가.

그리고 우리 이미 같이 살고 있잖아. 둘만의 시간이 왜 필요한데?

너랑 나는 참 안 맞는것 같다."


할말을 잃었다.

나는 그냥 30분이라도 둘이 마주 않아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한건데...

그에게 어떻게 말할까 고민을 하다가 그에게 말했다.


"오빠. 내 이야기를 왜곡하고 있는것 같아.이야기좀 해"


그때라도 멈춰야했을까. 남편의 시선은 이미 냉랭했다.


"가족 모임이 있다고 미리 이야기해준건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오빠, 내가 야근이 있어서 피곤해서 그래. 그리고 가족 모임은 싫은게 아니라 부담스러운거야. 아직 안 친하잖아."

"그러면 가족 모임이 있을때마다 그렇게 싫은 티 팍팍 낼거야?"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겠지만, 내 표정이 안 좋을 수도 있잖아. 계속 거쳐가는 과정인거지."

새벽 2시에 시작된 싸움.

그렇게 우리는 1시간을 옥신각신 싸워댔다.


"하... 지친다. 이혼하자."


신혼여행 2주가 지난 그날,

그는 이혼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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