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zero May 12. 2024

소닉을 타고

    일본의 골든 위크는 4월 말에서 5월 초에 걸친 황금연휴 기간이다. 4월29일 쇼와의 날을 시작으로 5월3일 헌법기념일, 5월4일 녹색의날, 5월5일 어린이날이 국가공휴일에 해당한다. 사이에 낀 4월30일부터 5월2일도 공공기관이나 호텔,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회사가 문을 닫는다. 더욱이 2024년의 경우 5월5일 어린이날이 일요일이다 보니 5월6일 대체휴일까지 생겨서 무려 10일간의 장기 휴일이 생기게 되었다. 정말인지 골든 위크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우리 가족에게도 10일간의 휴가가 생겼다. 가만히 집에만 있기에는 황금연휴가 너무 아까 웠다. 어디든 가보자며 인터넷과 여행책자를 들척이며 장소를 물색했다. 숙박비와 교통비가 2배 이상으로 오르는 시기여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물가가 싼 소도시로 떠나기로 했다. 그 결과 우리 가족이 결정한 곳은 기타큐슈시였다.


    여행 첫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하카타역으로 갔다. 후쿠오카시의 모든 기차와 지하철이 통과하는 거대한 역. 도쿄까지 가는 신칸센과 규슈 지역의 가장 아래에 있는 가고시마까지 가는 신칸센을 이곳에서 탈 수 있다. 역사를 들고 나서는 수많은 기차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언젠가는 도쿄까지, 더 멀리 홋카이도까지 열차 여행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체력이 받쳐 줄 때 떠나야 될 텐데 말이다, 큭.

    탑승구로 기차가 들어온다. 오늘 우리가 탈 기차는 ‘특급열차 소닉’이다. 파란색 소닉은 투박하면서도 날렵해 보인다. 갑자기 사람들이 열차 앞머리를 향해 뛴다. 무슨 일인가 싶어 따라가 보니 일명 대포카메라로 불리는 DSLR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소닉을 찍고 있다. 찰칵찰칵 차르르르. 셔터 소리에 맞춰서 기차가 이런저런 포즈를 취한다. 브이를 했다가 볼하트를 만들고,  뒷모습을 보여줬다가 제자리 점프를 한다. 자유자재로 포즈를 취하는 모델 앞에서 사람들은 연속 셔터를 누른다. 차르르르, 찰칵. 기차가 많은 나라이니 만큼 기차 덕후들도 많다던데, 아이도 어른들도 이렇게 기차를 좋아하는구나 싶어서 웃음이 난다. 그 사람들 틈에 끼여서 나는 스마트폰으로 열차 머리를 찍었다. 곁에 서 있던 아이가 특급열차를 종류별로 다 타 보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버킷리스트의 목록을 또 추가해 본다.


    40여분을 달려서 기타큐슈 역에 내렸다. 한때는 공업도시로 200만 인구가 살았다는 기타큐슈. 산업이 달라지면서 현재는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고, 인구수도 줄어들었다고 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출생률은 감소하고, 도시는 고령화가 진행된다. 더욱이 지방 소도시는 생산력 있는 젊은 층이 떠나니 도시의 생명력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게 된다. 지방소멸이란 단어를 싫어하지만 지방소멸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도 심심찮게 듣게 되는 이야기, 그런 고민과 과정들을 나는 어떻게 소설로 쓸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언젠가는 쓸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자, 여행을 왔으니 관광을 해보자. 미리 예약한 호텔에 들러 짐을 맡기고 본격적인 관광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고쿠라성이다. 화재로 인해 천수각이 타 버려서 지금 있는 천수각은 추후에 새로 지은 것이라 한다. 입장료를 내고 성 안에 들어갔다. 기타큐슈시의 역사와 지리를 짧은 영상으로 풀어낸 것을 보고, 유물도 봤다. 성 주변의 경관이 좋아서 어디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도 저절로 멋지게 나왔다.

    고쿠라성을 나와서 탄가시장의 유명 빵집에서 오믈렛빵과 크로와상을 샀다. 점심은 회전초밥이었다. 일본 와서 회전초밥을 처음 먹었는데, 한국이나 일본이나 초밥 맛은 비슷했다. 비슷해서 실망이라는 게 아니라, 비슷해서 좋았다는 뜻이다, 하하. 초밥은 언제 먹어도 진리이다.


    

    배가 부르니 또 구경을 떠나자. 기차를 타고 스페이스월드 역으로 갔다. 이곳에 있는 ‘기타큐슈시립 자연사 역사박물관’에 가기 위해서이다. 자연사 박물관의 이름에 걸맞게 입구부터 대형 티라노사우루스와 브라키오사우루스 뼈가 방문객을 맞는다. 거대한 공룡뼈 앞에서 사람들이 인증샷을 찍는다. 아이가 공룡뼈 앞에서 손가락 브이를 한다. 이렇게 나란히 서 있으니, 고작 뼈만 남은 공룡인데도 인간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크다. 진짜 압도적인 스케일. 만약 공룡이 살아 있었다면 인간은 어떻게 되었을까, 공룡과 인간이 같이 공존하는 세상이 가능했을까, 공룡은 왜 멸종한 것일까?, 언젠가 읽은 과학책의 내용을 떠올리면서 이런저런 상상을 해봤다.

    그러고 보면 이곳의 역명과 장소도 대단히 재미있다. 스페이스월드 역인데 스페이스월드는 없기 때문이다. 우주과학과 놀이를 결합한 복합 테마파크였던 스페이스월드는 몇 년 전 문을 닫았다. 지금 그 장소는 대형 아울렛 쇼핑센터로 바뀌었다. 역명만 그대로 남아서 이 지역을 지키고 있다. 광활한 우주와 미래를 상징하던 우주선은 사라지고, 과거의 영웅이었던 공룡만 이 지역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현실. 쇠락해 가는 소도시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괜히 씁쓸하기도 했다.


    폐관시간까지 박물관을 구경하고 다시 숙소가 있는 기타큐슈 역으로 돌아왔다. 저녁은 내가 좋아하는 모츠나베와 나마비루. 하하하, 정말인지 생맥주 한 잔이면 하루의 피로와 피곤이 거품처럼 녹아버린다.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면 혈중 알코올 농도가 너무 높아질 것 같아서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숙소로 돌아왔다. 창밖으로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내일 아침에는 비가 그쳐야 할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여행 첫날을 마무리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 개의 산책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