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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곰 Nov 01. 2022

갑자기 걷게 된 산티아고 순례길

#1

  3월의 프로방스 햇빛은 너무 따뜻했다. 겨우내 언 땅은 녹은 지 오래되었고 나뭇가지엔 푸른 새싹이 이미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또 도시 곳곳에 세워져 있는 분수들은 수 백 년 전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물줄기가 다시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엑상프로방스, 나는 이 도시를 사랑했다. 오 년 동안 혼자 있었던 나에게 큰 위로를 가져다줬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나오는 골목이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폴 세잔의 새빨간 사과는 생기로움을, 에밀 졸라의 필력은 나에게 생각거리를 갖다 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이 동네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가? 나는 일부러 도시에서 멀리 떠나 다른 골목을 배회하며 걸어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아주 이른 새벽에, 아니면 아주 늦은 밤에 동네를 차분히 걸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좋았던 느낌을 다시 느낄 수 없었고, 사람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고요함이 오히려 나에게 공포감을 줬다. 그때 나는 프랑스를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더 여기에 머문다면 내 정신 건강상태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안 좋아질 것 같았다. 


봄 기운이 만연한 3월의 엑상프로방스


  내 결심을 얘기하려고 학장 신부에게 면담 요청을 했다. 나는 면담 날짜가 다가올 때까지  A4 용지로 여섯 장이나 되는 글을 준비했다. 프랑스어를 아주 완벽하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외국인에게 언어가 늘 숙제로 남아 있는 걸 알면서도 유창하지 못한 내 언어에 언제나 한계를 느꼈다. 언어를 제대로 못하면 오해를 낳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오해는 상처로 이어진다. 나는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중요한 대화를 해야 한다면 어떤 말을 할지 준비하고 또 대화 중에 궁금한 게 있으면 거침없이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야 대화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찝찝한 기분이 없다. 이 여섯 장에는 그동안 배운 프랑스어를 능력껏 집어넣었다. 최대한 예의를 차리면서 직설적인 어투는 피해서 썼다. 


  학장실은 공기는 무거웠다. 그동안 수 없이 이방을 들락날락 걸렸는데 왠지 낯선 공기가 내 목과 코를 찌르는 듯했다. 마치 작은 쇳가루가 자잘하게 긁으면서 넘어가는 것 같았다. 학장 신부는 평소에 잘 입지도 않는 수단(성직자의 긴 옷)을 입고 있었다. 까맣고 단추가 수십 개 달린 그 옷. 프랑스에서는 수단이 곧 앙시앵 헤짐Ancien Régime, 곧 구닥다리 가치관을 의미했다. 과거 프랑스 혁명군은 사제들의 수단을 강제로 벗겨내고 국가에 충성을 요구했다. 그걸 거부한 사제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그래서 나이 든 신부들은 기피하는 옷인데 오늘따라 그는 입고 있었다. 난 그 옷을 입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어떤 말을 할지 학장은 예상을 한 듯 보였다. 더 이상 형제애 Fraternité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 매우 오피셜하게, 학교 책임자와 한 학생으로서 대화를 하려는 모습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차분하게 내 상황과 솔직한 생각이 담긴 글을 읽었다. 학장은 내가 준비한 여섯 장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도 당황했는지 살짝 웃었다. 그리고 구어체로 읽어대는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면담은 한 시간이나 이어졌다. 학장은 많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는 연민 어린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래서 이제 당신 계획은 뭐예요? 언제 프랑스를 떠나려고요? 당장 하고 싶은 게 있어요?”

“......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습니다.”


사도 산티아고(성 야고보)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니. 아주 오래전에 아는 형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면서 겪은 경험을 내게 들려준 적이 있었다. 스페인을 가로로 쭉- 한 달 동안 걸었고 흙바닥에 매트 하나 깔고 자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씻는 것도 힘들어서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며 걸었다고도 했다. 솔직히 지저분해 보였다. ‘어떻게 저런 상태에서 한 달을 살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순례길을 회상하며 말하는 형의 얼굴은 매우 행복해 보였었다. 몇 년 전엔 엄마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운동 마니아였다. 수영, 헬스, 에어로빅, 마라톤 엄마는 안 해본 스포츠가 없을 정도다. 몇 년 전부터는 등산에 빠져 있어서 매 주말마다 전국에 있는 등산 꼭대기를 점령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걱정이 안 됐다. 그녀라면 충분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엄마는 순례길을 걸으면서 내게 종종 화상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말에선 그 벅찬 감동이 느껴졌다. 얼굴은 땀과 흙먼지가 가득했지만 행복해 보였다. 너무 행복해 보였다.


  나도 언젠가 그 행복한 길을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어떤 길이길래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스페인은 프랑스 바로 옆 나라니까 바로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든 집 근처 맛집은 모른다고 했던가, 나는 산티아고 근처는 커녕 그 기회조차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껏 산티아고 순례길을 갈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던 거보면 나는 이 길을 잡히지 않는 허무한 꿈이라고만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갑자기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 허무한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렇게 갑자기 떠나게 될 줄은 몰랐다. 남들은 일 년 전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한다.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씩 걸어야 하니까 잘 걷기 위한 준비를 한다. 먼저 좋은 등산화부터 사서 동네 산책뿐만 아니라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 걸을 수 있는 곳은 다 걸으면서 다리와 등산화를 단련시킨다. 그뿐이랴. 등산 가방, 걷는 장비 등 내 몸에 익숙해질 수 있게 끊임없이 사용해본다. 그런데 나는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부랴부랴 내 방에 있는 캠핑장비를 뒤져보니 가방이나 기능성 옷 같은 기본적인 물품은 있는 것 같았다. 등산화는 엄마가 사줬다. 내가 산티아고에 갈 거라고 말했더니 너무 부럽다는 목소리로 돈을 보내왔다. 좋은 걸 신어야 오래 잘 걸을 수 있다는 게 엄마의 경험담이었다. 등산 스틱, 햇빛 가릴 수 있는 모자, 우비, 발가락 양말 등 부수적인 건 동네 스포츠 매장에서 가장 싸고 질 좋은 걸로 샀다. 어차피 나중에 순례길 끝나면 한국에 갖고 가지 못할 물건들이다. 


  순례길 출발하기 전날, 내 방바닥에 온갖 물건을 깔아 놓고 준비 못한 게 있는지 여러 번 확인했다. 2주 동안 나름 알차게 준비했다. ‘빠트린 게 있으면 스페인 가서 사면 돼’ 하면서 준비한 물건을 하나씩 가방에 집어넣었다. 가방은 꽤 무거웠다. 11킬로 그람 정도. 이걸 어떻게 매일 들고 걸어야 할지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새로운 여정을 떠나는 건 언제나 설렘 가득한 일이다. 내가 대학생이 된 이후로 매년 배낭여행을 떠났다. 유럽이라면 거의 모든 나라를 가봤고 브라질, 아프리카도 가봤다. 낯선 곳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다.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릴 수도 없다. 오로지 내 힘으로 순간순간을 해결해야 한다. 그럴 때 나는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스릴 만점. 성장하며 경험하는 뼈아픈 느낌이 나에겐 스릴이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될 대로 되라지. 순례길이니까 하느님이 날 도와주겠지. 순례길이 끝났을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있을지 기대감이 걱정보다 컸다. 그래,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보자. 산티아고가 나를 부른다.


순례길을 떠나기 전에 기도했던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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