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단단하다. 때로 구른다. 맞닿으면 소리가 난다. 가끔은 불꽃이 일기도 한다.
냄새는 흙보다는 차갑고 쇠보다는 따뜻한. 색은 햇볕 아래에 두면 무채색 같다가도 물 아래에 두면 오색찬란 빛을 발한다. 돌이 된 지 오래 되었을수록 표면이 둥글고 매끄럽다.
"돌." 발음해보면 단단한 소리와 구르는 소리가 같이 난다. 단단한 것이 굴러다닌다. 돌.
돌은 언제부터 돌이었을까. 태어나기를 돌로 태어나는 것이 있을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으로 태어난다. 고양이도, 날 때부터 고양이었다. 돌은, 돌이 되기 전에 무엇이었나. 돌이 되기 전 그것은 바위였을 것이다. 바위이기 전에는 지층이었을 것이다. 지층이기 전에는 퇴적물, 그러니까 식물과 동물이었던 것들. 하지만 결국엔 죽어서 차곡차곡 쌓인 것들. 나무는 죽어서 돌이 된다. 인간도 죽어서 돌이 된다. 살아있는 것들은 마침내 돌이 된다. 살아있는 것들은 돌을 걷어 찬다. 제가 돌이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듯이. 질문의 처음으로 되돌아 간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나였을까. 지수는 태어날 때부터 지수였을까.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죽고 쌓이고 짓이겨지고 굳어져 결국 돌이 되는 것처럼, 나도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누군가 이름 붙이고 걷어차고 짓뭉개고 버려두었다가 어느날 툭 떨어져 나와 내가 되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 갓떨어져 나온 나는 날카롭고 모났다. 비명에 가까운 날카로운 울음으로 가장 먼저 상처입힌 것은 나의 엄마. 내가 무뎌진 만큼 엄마의 상처도 아물었다면 좋을 텐데.
돌이 된 이후에 주어진 사명은 무뎌지는 것이다. 굴러가려면 무뎌지고 둥글어지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무뎌지지 않으면 쪼개어지고, 수없이 쪼개어진 조각들을 우리는 더이상 돌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런 돌의 삶에도 의지가 끼어들 틈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石の意志(いしのいし). 돌의 의지. '돌'과 '의지'는 일본어로 읽는 소리가 같다. 만약 일본어 듣기평가에 '이시노이시'라는 구절이 나오면 이것이 '돌의 의지'인지, '의지의 돌'인지 구별할 방법이 없다. 말장난 같지만 기왕 시작한 김에 2절까지 덧붙이면, 돌의 의지란 아마도 록 음악이 아닐까. rock n rolll. 고유명사에 가깝지만 굳이 뜻을 직역하면 돌이 구르는 것과 같다. 돌이 굴러가는 것이 음악이 된다니, 이것만큼 낭만적인 의지가 있을까. 인생이 늘 의지대로 구를 리는 만무하지만, 굴러가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다. 하염없이 굴러가다가 때로는 낭떠러지로 떨어지기도 하고 우연히 폭포 아래로 굴러가 끝없이 깎여나가기도 하지만, 그러던 중 찰나에 끼어든 한숨이, 비명이, 토닥임이, 돌로써 뿌려대는 모든 부스러기들이 서로의 음악이 되어 흐른다고 생각하면 탄생의 순간 품었던 지층의 열기가 심장 어느 구석에 남아있음을 느낀다.
무뎌져서 더이상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고, 때때로 누군가 나를 저기 저 절벽 아래로 걷어 차 주길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떨어지지 않고 대롱대롱 매달려 로큰롤을 불러대는 건 분명한 '돌의 의지'이다. 같은 박자로 굴러가는 돌의 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