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자전거 타고 올게. 한 시간 후에 올 거야.
처음으로 혼자 자전거를 끌고 양재천에 나선다. 자전거를 타는 게 처음이 아니라 "혼자"가 처음인 것이다. 오후 5시 반이 되어 나서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아침 8시부터 그 시간까지 고민고민을 하다가 결국 토요일 저녁에 맥주 한잔 마음 편히 마시려면 운동을 하자라는 타협점을 찾은 것뿐이다. 몇 시간을 고민한 건가...
우선 시작 전에 사진을 찍는다. 순간 가까이 앉아있는 비둘기가 신기해서 비둘기 인물사진을 10장 찍는 여유를 부리며 혼자 다니니 내 마음대로 멈춰 서서 좋다고 생각해 본다.
이때까지 한번 멈춤은 좋았다. 남편과 5번 정도 자전거 함께 탄게 다라서 출발해서 얼마 못 가 세우고 자전거 안장 높이를 맞춰본다. 그리고 또 얼마 못 가 깜빡한 운동앱을 켜본다. 가다가 또 멈춰 무릎에 힘이 덜 들어가게 안장 높이를 올려본다. 한 번만 더 멈추자라는 마음으로 음악까지 잘 틀고 출발한다. 이쯤 되면 에너지 반은 다 쓴 것 같다. 집 앞을 벗어나기는 할 수 있는 것일까 살짝 걱정이 되며,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그렸던 계획대로 출발을 못했다며 아우성친다. 무시하는데 에너지를 쓰며 밟아 본다.
한쪽 귀에서만 들려오는 요즘 빠져있는 종방 된 드라마 OST 'STAY'를 무한 반복 세팅을 위해 정말 마지막으로 세웠다. 추천해 주는 음악을 듣다 보면 마음에 안 들어 멈추고 싶을 것이고, 매번 운동할 때 듣는 음악 리스트는 마음속에서만 만들고 저장해 놨기에 틀만한 부지런한 리스트가 없다. 안전한 무한반복에 지루함은 품고 불안함은 좀 덜 수 있으려나.
탄천으로 들어선다. 오늘의 계획은 목적지는 반포대교, 시간은 1시간 반이다. 거리는 측정해 본 적 없어 모르겠고 아마 다녀오면 알지 않을까. 자전거가 만나는 삼거리는 내 승모를 한껏 높인다. 안 그래도 갑자기 인도에서 자전거길로 튀어나오는 아이나 조깅러가 신경 쓰이는데, 다른 자전거와 만나는 삼거리는 자동차길에 혼자 맨몸으로 달려드는 기분이다. 남편과 함께 갈 때는 길을 찾기가 덜 두렵지만, 고작 이런 삼거리길에 잔뜩 긴장하는 내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 게 불편하여 그 모습을 또 누르다 보니 더 불편했다. 오늘은 혼자 마구 긴장감을 뽐내보아도 잠자리 정도나 이마에 '텅'하고 부딪치니 할 만하다.
검은 모습을 드러낸 한강과 저 앞에 서쪽으로 보이는 붉은 석양을 향해 내 속도로 페달을 밟아 간다. 계획대로 목적지를 찍고 오는 것이 중요하기에, 속도는 좀 천천히 가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계속 타협해 본다. 그 사이 여름 태양 사이로 가을 냄새가 삐짓고 들어온다. 이런 좋은 냄새는 또 잠깐이면 사라지겠지. 올 한 해 잘 지내고 있는 건가 하는 싶은 생각이 내 머릿속 다른 길을 만들어 낸다.
생각보다 멀다. 한강 다리가 이렇게 많았는데, 차 타고 갈 때는 매번 꽉 막혀있어서 10개는 더 생겼으면 좋겠다는 욕심부린 생각이 났다. 청담대교, 영동대교, 성수대교, 동호대교, 한남대교 그리고 반포대교다. 영동대교를 지날 때쯤 왜 반포대교를 계획 잡았나 생각해 보니 남편이 평소에 혼자 다녀왔다는 자랑을 들었던 게 이유였다. 나도 갔다 와서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나이가 몇 살이 되어도 자랑하고 애썼다고 인정받고 싶은 걸까.
1시간을 넘게 달려 반포대교아래 도착했다. 다리마다 분위기가 다른데, 반포대교 아래는 젊은 분위기가 한껏 난다. 자리 깔고 앉아서 한강을 즐기는 모습에 그들의 시간과 다른 내 인생의 시간에 즐기는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떠올린다. 매번 기억이 잘 안나는 내 즐거운 시간들은 분명 존재했을 존재감의 부피를 못 느끼겠다. 어떤 다른 힘든 기억이 잡아먹은 것일 수도 있고, 긍정적인 생각을 담는 방이 너무 작아서 넘쳐흘러 없을 수도 있고, 실제로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그전에는 왜 나는 즐거운 기억이 잘 없지라며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우울함으로 넘어갔다면 지금은 잠시 그 생각을 꼭 쥐고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스스로 말해준다.
시원한 얼음물을 마시며 주변을 보니 혼자 자전거 타고 나온 사람들이 많다. 처음으로 인지한 것은 대부분 남자들이다! 혼자 자전거 타고 나온 여자는 나 혼자 밖에 없어 보였다. 내 성향이 혼자 뭘 못한다고 생각해서 자전거 타는 내내 머릿속에서 나 혼자 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었는데, 원래 남자들이 혼자 놀기를 더 잘하나 싶은 위안이 들었다. 왜냐고 고민하는 것까지 넘어가기 전에 얼굴 위로 빗물이 뚝하고 떨어진다.
계획에 없었던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일기예보 체크를 안 하고 출발했다. 서둘러 출발을 하며 가방을 챙길까 말까 하며 가져 나온 나를 칭찬한다. 그 방수 가방이 없었으면 핸드폰은 나와 함께 빗속에 푹 담겼을 것이다. 속도를 내서 밟을수록 얼굴에 쏟아지는 샤워기 같은 소낙비에 순간 묘한 웃음이 나온다.
나 이거 해보고 싶은 거였네
비 맞으며 자전거 타는 걸 해보고 싶었던 욕구가 마음속 깊이 있었던 것이다. 인지하고 살기에는 너무 깊이 있었던 욕구라 한참 얼굴에 비를 맞고 닦아내다 보니 입이 웃고 있어서 알게 되었다. 왜 하고 싶었을까? 이걸 나는 일탈의 카테고리에 넣어놨던 것이다. 사주에 '관'이 강한 나는 특히 정해진 틀을 벗어나기가 힘겨웠다 보니, 이 정도가 일탈인 것이다.
문제는 정말 비가 어머 어머 하게 쏟아졌다. 모두 다리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었지만 자전거 램프가 고장 나서 안 켜지는 나는, 더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처음엔 웃으면서 젖었지만 다리도 점점 무거워지고 옷은 이미 속옷까지 홀랑 다 젖은 상태에서 계속 웃으면, 일탈에서 이상한 사람 카테고리로 넘어가게 될 것 같다. '좀 있다 그칠 것이라 생각하고 쉬어야 하나, 아냐 그냥 가는 게 맞겠지' 사실 쉬면 다시 못 움직이고 택시 불러야 할 것 같았다.
30분쯤 물속을 달리다 보니 비가 멈추고 좌측 건너 멀리 야구경기장에서 환호성이 들린다. 이미 가을바람이 날 말려주고 있었고 깜쪽같이 밤하늘이 빛난다. 비를 맞으며 느꼈던 느낌과 감정들, 촉감과 움직임, 약간의 두려움과 웃음. 이 복잡 얄따구리한 것들을 내가 빈틈없는 계획으로 움직였으면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느껴볼 수 있었을까..? 절대 아니다. 사람 안 변한다고, 난 일탈을 꿈꾸면서도 일탈을 계획할 계획이 없음을 안다.
다시 한번 인생 옷자락을 잡고 잠시 느껴본다. 평소에 계획대로 안되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왜 안되었는지 분석하고 다시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내 모습에서 비 오는 날의 자전거는 완전한 계획실패의 시간이다. 그런데 계획대로만 살아갔을 때 이번 생에 내가 느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나는 단 한 번도 못 느껴보고 눈을 감게 된다. 모든 것을 직접 느껴 볼 필요는 없지만, 모든 것을 내 계획대로 사는 것이 나에게 유익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나는 계획하지 않음을
계획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살아가며 느낄 수 있는
인생의 조각은
내 경험 외의 상황에서
경험으로 만든 계획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얻어질 수 있다.
비 오는 날 자전거를 계획하고 타지는 않겠지만, 다음번에는 어떤 계획이 틀어져서 내 인생에 추억과 사연을 만들어 줄까. 설레는 용기를 품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