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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Oct 16. 2023

곪아 터진 학교 교육 01

여러 권의 책들을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엮는 주제 서평

https://brunch.co.kr/brunchbook/grhill01

브런치 북  플랫폼은 로그인한 작가, 독자가 읽은 시간을 체크해 완독율을 작가에세 알려주는 냉정한 시스템이다. 

이틀째 숨이 막힌다.



곪아 터진 학교 교육 01(3,600자)

   학교 교육은 교육 내적인 요구와 사회의 요구에 따라 변화하고 있으나 다른 분야에 비해 변화의 속도가 늦은 까닭에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라는 관점에서 보수적일지라도 방향이 바르다면 탓할 이유가 없다. 2023년 뉴스의 중심에 곪아 터진 학교 교육이 있다. 학생과 교사가 함께 존중받는 학교를 만드는 일이 해야 할 일이다. 

   학교 교육을 논하기에 앞서 교육과 교양을 견주어 보고,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를 파악하려 한다. 교사의 업무 추진과 생활지도 영역을 살펴보고 거시적으로 교육의 방향을 모색한다. 구체적으로 교육방법론에 대한 검토와 제안을 내놓고, 참고할 키루스의 교육이란 관점을 떠올려 본다. 과거의 전통교육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교육에서 온고지신해야 함이 중요하나 앞서 <조선의 밥상머리 교육> 서평으로 갈음한다.     


교육과 교양

   교양과 교육을 비교해 보면 교육은 대상이 있어 주어진다면교양은 스스로 만든다는 차이가 있다. 교육은 학제에 따라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나 교양은 비체계적이며 다양한 방법으로 쌓을 수 있다. 단선적인 교육은 내적 성장과 외적 성장을 추구하나 교양은 내적인 성장에 치중한다고 본다. 교육의 내용은 문화유산이든 학생의 경험이든 교과 내용의 분량에 한계가 있으나 교양을 구성하는 요소는 사람에 따라 폭과 깊이가 다르다. 예를 들어 교사라면 교과 외 지식을 자기 연찬을 통해 얻어 형식지와 암묵지를 스스로 쌓아간다.

교육이 아닌 교양으로 얻을 수 있는 나열해 본다.


나당 연합군이 백제와 고구려를 협공할 때 맺은 약조를 학창시절 배운 바 없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 르네상스의 기반에 중국에서 들여온 물질적 풍요로움이 있었고, 18세기 계몽사상은 공자와 맹자의 철학을 수용한 것이다. 

캐리어의 에어컨 발명과 보급이 북미 스노우 벨트로부터 선 벨트로의 이주를 촉진한 주요인이라는 것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프랑스 혁명이 공자와 맹자의 철학에 바탕을 둔 것이며, 막스 베버가 주창한 자본주의의 기원은 사실이 아니라 공자와 맹자의 철학에서 서구의 자유시장론이 탄생한 것이라는 새로운 연구와 주장이 있다. 

따뜻한 열차 내 냉동시스템이 도시의 발달에 영향을 주었으며, 교통망의 확대로 주택의 공급과 수요를 풀어갈 수 있다. 자연을 사랑한다면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살아야 하고, 저밀도 공간에서 살기 위한 교외로의 이주는 고층 메트로폴리스보다 자연에 훨씬 덜 친화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운전, 전기, 난방, 대중 교통수단의 탄소 배출량을 더하여 생각한다면 도시가 교외 지역보다 더 친환경적이라는 것이다. 

가톨릭의 부패에 맞서 스위스에서 시작된 칼뱅의 종교개혁 과정에서 칼뱅의 논리적이고도 엄격한 전제적 교리가 뿌리내려 제네바를 비롯한 스위스 사람들의 정신과 생활을 지배했다. 칼뱅의 종교적, 정치적 독재에 대항했던 신학자 세르베투스라는 화형을 당한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카스텔리오가 톨레랑스의 개념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칼뱅의 독재와 폭력에 반박한다. 


   이와 같은 사실과 주장, 개념의 기원은 <공자와 세계 1,2,3,4,5,>, <도시의 승리>,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교양 수업>를 읽어 스스로 만들 수 있다. 

   피터 비에리에 따르면 교양이란 사람이 자신에게 행하는, 그리고 자신을 위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교육은 타인이 나에게 해 줄 수 있지만, 교양은 오직 혼자 힘으로 쌓을 수밖에 없다. 교양을 갖추려고 할 때는 이 세상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의식을 품고 노력해야 한다. 자기 자신과 세계를 대면하는 방식이 교양이고 말한다.   

  

한국 교육의 현주소

   한국 교육의 현주소를 생각할 때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하다.


   평범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요제프 기벤트라의 아들 한스 기벤트라가 주인공이다. 

   시골 동네에서 천재가 나왔다는 평가받으며 국비로 공부할 수 있는 주 시험에 2등으로 입학하기까지가 소설의 전반부이다. 총명한 한스는 동네 목사, 라틴어 학교 교장 등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주 시험에 합격한 후 자연을 벗하며 마음껏 뛰어논다. 당연히 그는 아버지와 동네의 자랑거리였고, 한스도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기숙학교에서의 삶이 한스에게 변화를 가져오기 전까지 모범생으로 공부한다. 소설은 기숙학교 학생들의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춰 개성과 사회성을 묘사한다. 힌딩거는 연못에서 익사하고, 루치우스의 음악적 재능 없음, 하일거의 반항적 태도와 우울증이 주요 소재다. 한스는 튀는 행동으로 근신령을 당한 하일거와 우정을 키워가며 학교와 멀어져간다. 하일러의 수도원 탈출과 퇴학은 한스에게 충격이 되고, 공부에 재미를 느끼지 못해가며, 영혼은 불안과 절망에 싸여 허우적거린다.

   요양휴가를 떠나 집으로 돌아온 한스는 신경쇠약으로 괴로워하고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죄책감에 힘들어한다. 엠마와의 키스와 이별은 사랑은 달콤함으로 포장되어있으나 쓰디쓴 맛을 낸다는 것을 알아버린다.

기계공으로 살아가기로 정하고 일을 배우던 날들을 보내던 중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신다.

   싸늘한 시체가 되어 어두운 강물을 따라 골짜기 아래로 떠내려간다. 술이 원인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학교 다니는 자식을 준 부모라면, 한스 기벤트라처럼 방황하거나, 자살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언론에 자주 등장해 우리를 아프게 한다. 20세기 초 독일의 학교와 21세기 한국의 학교가 다른가? 아니다. 너무나 닮았다.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가 자녀를 학교에 보낸 부모의 가슴을 졸이게 한다. 이것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이자 단면이다. 

   우리가 모두 경험한 것과 같이 <감시와 처벌>은 학교를 군대, 산업, 의료기관과 함께 권력이 행사되는 기관으로 평가한다. 규율은 복종 되고 훈련된 신체, 순종하는 신체를 만들어낸다. 규율은 폐쇄성을 갖고 개인의 공간을 나눈다. 학교는 기능적이고 위계질서를 갖는 공간을 만든다. 규율은 시간표를 만들고, 행동에 대한 시간을 작성하고, 나태를 불허하는 등의 방법으로 활동을 통제한다. 학교라는 건축물이 가진 문제를 드러낸다.   

  

교사의 사명감

   이 같은 한국 교육의 현 상황은 교사에게 사명감을 요구한다고 본다. 이미 노동자나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교사가 적지 않은 상황이기에 더욱 사명감에 관한 요구가 크다. 직업으로써의 교사가 아닌 사명감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 <펠로폰네소스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가 ‘한때의 갈채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멸의 재산으로서 이 책을 썼다’라는 집필 이유(철학)를 밝혔듯이 교사도 교육에 대한 사명을 기억해야 한다. 일 년만이라도 문·사·철에 빠져보거나, 한비야의 일 년 100권 읽기처럼 독서 지침을 따라 해 보는 일도 사명감을 되살리는 계기로 만들 수 있다. 교사의 관용적인 태도도 사명을 다하는 데 필요하다. <프랭클린 자서전>에 따르면, 영국 식민지였던 초기 아메리카의 지도자들이나 서민들이 오늘날과 같은 지독히도 오만한 개신교에 물들지 않았다. 하나님을 숭배하되 그의 삶의 기준은 종교가 아닌 상식에 기초했다. 

   교사가 직업인이기에 앞서 사명감이 있는 존재이어야 함은 상식이자 교사와 교사가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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