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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May 06. 2024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

메디치 에서 내놓은 책이다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     

   2017.4.30.에 읽고 쓴 글이라 2024년 5월 시점에서 낡은 것과 참신한 것을 가려내며 다시 읽어야 한다. 꿈같은 이야기가 있고, 숙의가 필요한 주제다. 한때 참신했던 것이 오늘 낡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책은 박근혜 탄핵 이후  대통령 선출을 앞에 두고 시대정신을 이야기한다.   

  


   들어가는 글은 셋이 적었다. ‘촛불의 열망, ‘진짜 변화’로 이어지려면’(전 경제부총리 이헌재), ‘국가의 역할을 다시 묻는 이유’(與時齋 기획이사 이원재), ‘정권교체, 주권 회복, 그리고 그 다음은?’(희망제작소 선임연구원 황세원). 그리고 대담을 글로 옮긴 책이다. 황세원은 들어가는 말로 책의 방향을 제시한다. “촛불 집회의 열망이 ‘어떻게 되는지 정권 한번 바꿔보자’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정권교체는 이미 경험했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은 “기득권은 어차피 건드릴 수 없다”라는 전제 따위는 깔지 않는, “급속한 변화는 경제성장에 마이너스로 작용하며 국제사회에 나쁜 이미지를 준다”라는 식의 변명은 하지 않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미래를 위해서라면 어떤 변화도 가능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감내할 입장을 가진 정부다.” 그런 정부를 우리가 가지게 된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야 할까? 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고 있다.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의 1장은 ‘산업’이 아닌 ‘사람’을 보호하는 국가로, 기득권이 무너져야 사회가 바뀐다, 정책의 큰 틀을 바꾸려면 어떻게 하나라며 국가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이야기다. 2장은 변화의 출발점에 주거, 교육, 소득, 일자리와 산업, 외교, 통일을 두고 관점을 바꾸자고 말한다. 3장에서는 중요한 건 ‘재원’이 아니라 ‘비전’이다, 인물보다 시스템에 주목하라, 모두가 혁신가로 리바운드 사회를 만드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박정희가 주도한 선택과 집중이라는 ‘60년대 체제’를 버리고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 봄을 절호의 기회요, 한국 역사의 축복이라고 여기자는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전문가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계기였다.     

옮겨두고 싶은 문장을 고른다.

1장 국가는 무엇인가

‘산업’이 아닌 ‘사람’을 보호하는 국가로

재벌의 집중화 위험이 너무 높아 국민들이 일상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투표로도 제한받지 않는 무한 임기의 권력 집단과 지나치게 강력한 대통령제가 만나 ‘박근혜 게이트’가 됐고, 그에 대한 변화 요구가 임계치를 넘긴 것이다. 정유라의 입시부정 문제가 방아쇠(trigger)의 역할을 했고 핵심은 ‘공정성’에 있다. 불공정을 감내하는 수위(tolerance level)가 달라진 것이다.

   국가가 되찾아야 할 제 역할이 무엇인가? 헌법 제 34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돼 있다. 이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사회보장, 사회 복지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다. 최고의 자살률과 최고의 청년실업률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 먼저 공동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좋은 삶’이 무엇인지 공동체가 함께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거기에 맞춰 그런 삶을 창출할 수 있는 경제를 떠올려야 하고 그런 경제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정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시민들이 좋은 삶을 추구하고, 좋은 공동체를 위해 논의할 수 있는 장을 펼쳐주고,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국가의 최우선 정책은 더는 ‘성장’이 아니다. 걱정해야 할 것은 ‘성장’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이라는 점, 기업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라는 점이다. 나아가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양극화의 뿌리는 박정희 시대의 ‘렌트 배분’에 있다. ‘60년대 체제’에서 시작된 렌트 배분은 정부의 ‘인허가권’에서 나온다. 선택과 집중은 결과적으로 불공정한 사회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지나친 집중화로 역동성을 잃고 위험이 커진 사회를 만들어 놓았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은 유신선포와 더불어 중화학공업 집중 육성과 수출 주도 경제 선정 전략을 추구하는데 이때부터 ‘기업에는 세금 부담을 주면 안 된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 노동자들은 저임금 일자리에 만족해야 한다.’ ‘복지는 게으름을 낳는다’라는 주장이 사회의 지배적 논리가 됐다. 지금까지도 그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이제는 이를 재평가해야 할 시기다. 강력한 소수 재벌 대기업과 나머지 취약한 경제 주체로 양극화된 결과는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의 불균형을 용인하지 않는 분배와 재분배를 강화하는 선택을 하지 못한 탓이다. 기업의 성장이 국민 모두에게 혜택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낙수효과(trikle down effect)’ 또는 ‘파급효과(spill over)’를 과신한 탓이다.

   산업정책의 출발은 인허가권 내려놓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인허가권은 정경유착으로 귀결되고 그 자체가 이미 시대정신과 맞지 않는다. 변화를 읽는 능력을 가질 수 없다. 혁신도 일어날 수 없다. 자본주의 국가에 살면서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덩샤오핑의 감각에도 미치지 못한다. (“창문을 열어 놓으면 시원한 바람만 들어오는 게 아니고 모기도, 벌레도 들어온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들어오면 장난꾼이 꼭 생기지만 그 폐해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재벌 기업에게 ‘궁핍화의 길’만 남았다. 대기업이 무너지면 나라 경제가 흔들린다는 논리가 비판 없이 받아들여지던 사이에 공공의 자원이 기업에 마구 흘러 들어갔다. 기업이 흥할 때가 있으면 쇠락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야 금융이나 인재와 같은 국가 자원이 새로운 곳으로 흘러갈 수 있고, 새로운 기업이 성장할 자리가 생긴다. 무너지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은 사람들의 삶이고 가정이다. 국가가 보호해야 할 대상은 기업이 아니라 사람이다. 대기업이 망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이미 이 시대에 통하지 않는다.      


   2. 기득권이 무너져야 사회가 바뀐다. 변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이 기득권층이 더 많은 것을 누리는 이 사회의 고리를 끊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열린 사회로 갈 수 없다. 변화를 막는 것은 오히려 작은 기득권이다(예: gentrification). 개혁하려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막차 문 닫기’가 성행한다.      


   3. 정책의 큰 틀을 바꾸려면. 국가가 하지 말아야 할 일로 첫 번째는 렌트 배분에서 과감히 물러나야 한다. 두 번째, 기본 소득을 도입하는 것이 시대정신이다.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가 탄탄한 복지와 자유로운 시장을 동시에 이룬 시스템, ‘노르딕 모델’에 주목해야 한다. 변화의 정책은 대범하고 단순해야 한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아이가 태어나면 16세까지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책임진다”라는 식으로. 이런 방법은 사회통합 Social Mix의 관점에서도 바람직하다. 토론이 가능한 사회여야 장기적 문제를 풀 수 있다. 독일의 원전 정책 중단처럼 사회 전체의 유익을 위한 결단이 가능하려면 열린 사회, 토론이 가능한 사회, 공동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살아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2장 변화의 출발점

   주거 / 가계 부채 문제는 주거 문제다. 소유에서 공유로, 건설에서 개량과 사용으로, 구별에서 통합으로 오늘날 주거정책의 패러다임을 뒤집어야 한다. 국채 발행으로 매입 공공임대를 늘리자.

   교육 / 국가가 책임질 교육은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법’이어야 한다. 각자가 ‘좋은 삶’을 살수 있는 방법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돼야 한다. 획일성 탈피와 협력과 소통의 능력을 높이는 일에 더욱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 교사들의 능력과 태도 변화가 절실하다. 직업교육이건 대학교육이건 개인이 교육을 받는 것은 사회에 이익이 되니까 무상으로 제공해도 된다. 우리 교육에서 늘 근본적인 문제인 대학 입시를 위한 경쟁 때문에 교육개혁이 좌절된다. 대학은 정말 공부하는 사람만 가는 학교가 되도록 해야 한다. 프랑스 교육개혁은 보수중의 보수인 드골이 해냈다. 주입식 교육으로는 철학적이고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도록 교육할 수 없다. 교육을 개혁해야 하는 진짜 이유다.

   소득 / 기득권 때를 벗기려면 사회안전망부터 갖춰야 한다. ‘시급 1만 원’이 어렵다면 세금으로 보태주면 된다. ‘정규직’ 집착보다 현실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같은 업무에 비정규직을 쓰려면 정규직보다 임금을 더 주도록 하는 방안도 있다.

    일자리와 산업 /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준다. 어찌할 것인가? 로마 병사에게 부여된 ‘3일 약탈권’을 생각하자. 국가가 아직 일자리가 있는 사람한테 세금을 징수해서 전체에 재분배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일을 함으로써 생산, 공급에 기여하는 존재로만 인식했는데,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소비하는 존재’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기본소득 논의의 출발점이다.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없앤다고 두려워만 하지 말고 새롭게 창출되는 부가가치를 사회가 적절히 회수해서 분배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자연히 망할 산업은 망하도록 출구를 내주고, 거기 소속된 사람들을 국가가 보호하면 된다. 그러면 새로운 경쟁력을 갖춘 산업이 자연스레 이전 산업을 대체한다. 이윤 창출 가능성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기준으로 투자하는 금융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외교 통일 / 북한은 중국보다 더 백지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어떤 전기를 맞으면 ‘퀀텀점프’를 할 가능성이 있다. 통일 정책도 소셜 믹스의 관점에서 해야 한다.      


3장 리더십의 조건

   중요한 건 ‘재원’이 아니라‘비전’이다. 국채 발행, 증세, 양적 완화 모두 가능하다. 우리나라처럼 매년 15~20조원 씩 세수를 늘릴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관건은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되도록, 미래 세대가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쓰는 데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게 중요하다. 정책 구조 조정을 하면서 재원을 마련하면 된다. 기득권과 낡은 제도로 꽉 막힌 체제를 확 털어버리고 새로 국가의 일을 디자인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인물보다 시스템에 주목하라. 영웅 한 명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누가 권력을 쥐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합의를 만들어가면서 통치해야 한다. ‘박정희’유산 때문에 일사분란하지 않으면 국가가 안돌아 간다고 생각하는데, 반면 일사분란하게 국가가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은 못한다. 지역에서 못한 일을 중앙에서 하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보충성’의 원칙에 따른 상향식 의사 결정 방식)

모두가 혁신가인 리바운드 사회로. 우리 사회는 ‘정상’의 범위가 너무 좁다. 다양성이 없이는 사회가 지속될 수 없다. 다양성이 높아야 ‘리바운드 사회’ 가 가능하다.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는 민교장이 두 권 있다면서 읽으라 건네준 책이다. 박근혜 게이트를 거치며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2017년 3월 15일 초판이 나왔고, 4월 25일에 초판 10쇄를 찍은 거다. 독자의 손에 4월 28일에 들어왔으니 따끈따끈한 책이다. 책은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를 읽어보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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