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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력제를 떠올리는 아침

레이 황 지음

by 노충덕

2024. 12. 4일 비상계엄을 시작했던 대통령이 탄핵소추, 체포, 구속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만력제라는 혼군에 관한 책을 떠올린다. 이미 수년 전에 읽은 책이지만, 동양에서 으뜸가는 혼군이었던 만력제와 대통령이 무엇이 다른지......


만력 15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

2017.7.28. 금


읽고 싶은 책을 주로 알라딘 인터넷 서점에서 산다. 품절된 책은 중고 매장을 찾아본다. 없더라. 예스 24에서도 품절이라. 교보문고 중고 매장을 수일에 걸쳐 들락날락하다가 겨우 구입한 거라 받아 볼 때 기분 좋더라.


<만력 15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는 중국 대륙에서 중일전쟁이라는 현대사의 굴절을 경험하고 미국에 정착한 레이 황이 ‘대역사관’이라 표현하는 거시적 관점에서 중국 명조의 역사를 서술한 책이다. 전문 분야를 분석해 가는 미국 역사학계의 학풍에 맞지 않아 출판이 쉽지 않았으나, 이후 중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 출판되었고, 한국에서는 2004년에 번역본이 나왔다.


레이 황은 ‘아편 전쟁 이전에 청나라에도 자본주의 맹아가 싹텄다’는 중국의 주장에 대하여, 영국 역사가 클라크 경이 말한 자본주의란 ‘자본을 가진 자가 가장 권위를 가지는 사회’라 보고, 자본주의의 기저에 있어야 할 소유권, 신용거래, 이윤추구라는 개념이 희박하거나 불가능했다는 이유로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만력 15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는 역설적 표현이다. 각장을 구성하는 만력제, 정거정, 신수행, 해수, 척계광, 이탁오 등의 인물이 16세기 명조에서 한때는 권력을 잡고 있었지만 누구도 자신의 공적과 덕행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다. 실패한 사람들의 역사가 쌓였고, 이들이 살았던 시대 이후 명나라 왕조가 청에게 무너지기 때문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온통, 전체적으로 문제들이 많아 한 두 사람의 노력으로는 개혁이 불가능한 지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1장 만력제, 2장 수보 신시행, 3장 장거정 없는 시대, 4장 산 조종(朝宗) :

명조는 의례와 인사에 의해 체제가 유지되었다. 의례란 하늘의 뜻을 받들고 조묘에 제사 지내고, 외국 사절, 은퇴한 관리를 접견하고, 군대를 열병하고, 달력을 공포하고, 모든 책이 흠정 되고, 선농단에서 친경하고, 존호를 내리는 것 등을 말한다. 이를 조정이 스스로 실천함으로써 천하에 모범을 보여 백성들이 따라오게 했다. 광대한 제국을 형법에만 의지하여 통치할 수 없기에 윤리 도덕의 힘을 이용한 것이다. 그런데, 레이 황은 이러한 명조의 체제가 흔들이는 사례로 ‘오조(午朝)사건’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풀어 간다. 조회를 소집 통보가 고급관리에게 전달되어 모두 허겁지겁 조정에 모였는데, 정작 조회를 소집한 주체가 없었던 사건이다. 신하들은 만력제가 황태자를 지명함에 자신의 의도를 반영할 수 없게 여론을 몰아간다. 황제는 여전히 황제였지만, 문관들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은 어느 것도 하려 하지 않았다. 20년간 황제의 업무에 태업(예: 상주문을 궁정 내에 묵혀두고 답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일관한다. ‘황위 계승 문제와 그 밖의 일련의 문제들이 발생하여 황제가 크게 불쾌감을 느꼈던 1587년, 즉 만력 15년은 표면상 중대한 동요가 없었던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은 명조의 역사에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시점이었다.’ 조정이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인 거다.


만력제의 스승으로 출발하여 전권을 행사하는 대학사가 된 수보 장거정이 흥하고 망하는 과정을 소개한다. 신시행은 장거정에게 발탁되었으나 장거정이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보았기에 황제와 대신의 중간에서 줄타기로 권력을 유지하고 황제를 보위한다.

정거정은 ‘규율을 바로잡는 일을 자신의 임무로 자처하고 실제로 모든 사람들에게 허점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신시행은 ‘관대한 방법으로 사람을 다스렸고 성실하라고 권했다. 결국 각자가 자발적으로 최선을 다해 빈틈을 메워줄 것을 기대한 것이다.’

만력제의 증조부인 정덕제의 자유분방한 통치, 황제란 자금성의 죄수일 수 있다는 사실, 황하의 치수, 대몽골 정책, 동참 금의위, 능묘 참배 등을 다룬다.


덧붙이는 雜多

- 명조 관리의 등급은 문관화양(文官花樣)으로 표시되었다.

- 과거에 응시하는 수험자수는 1백만 이상에 달했다.

- 영전의 은사는 대체로 아내 및 3대 전까지의 조상을 포함했다.

- 명조의 지방 현은 1천100여 개였다.

- 금중내조(禁中內操)란 궁성 내에서 환관으로 편성된 군대의 훈련을 그치게 하는 것이다.

- 황제의 신분으로서 신하를 대상으로 장기적인 태업을 행한 것은 만력제가 역사상 유일한 예일 것이다.

- 반계순의 황하 치수 : “제방을 쌓아 물을 한 곳으로 모으고 물로써 모래를 씻어낸다(建提束水 以水攻沙)” VS 하폭을 넓히기보다는

- 가마솥 밑에서 장작을 치우는 식의 방법

- 명조는 농민을 순박 무지의 상태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을 통치의 원칙으로 삼았다.

- 당대 절도사의 발호에 영향을 받았는지 명조는 문관 중시, 무관 무시의 경향을 보이기 시작하여 대략 1백 년이 흐르면서 문관집단의 사회적 지위는 사상 최고로 되었다. 무장들의 목숨을 건 공헌도 사회적 영향면에서는 문관의 한 편의 훌륭한 문장에 비길 바가 못 되었다.

- 이탁오의 학설은 반은 유물론이고 반은 유심론이다. 유가의 ‘인’, 도가의 ‘도’, 불가의 ‘무’는 서로 통했다. 그는 허위적인 도덕을 공경하였지만 도덕에 등을 돌린 것은 아니었다.

- 저자는 ‘저자의 말’을 통해 ‘중국은 2천 년 동안 도덕이 법률제도를 대신해 왔는데, 명대에 와서 그것이 극에 달했다. 여기에 모든 문제의 근원이 있다고 생각한다.’

- 저자는 중국이 신해혁명 이후 1990년대 초까지 약 80여 년이 격동의 시대였으며, 격동의 시대 이후에는 문제를 해결한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말한다.


<만력 15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는 새물결출판사에서 2004년 9월 초판을 내놓았고, 독자는 초판 1쇄, 중고본, 본문 544쪽 분량을 읽은 거다. 재미있다. 아주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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