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삼촌으로부터 박정희가 보릿고개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었다고 여러 번 들었다. 국민학교 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외웠고, 궁정동에서 저격받았다는 대통령 서거 소식에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유년시절은 온통 ‘박정희’와 ‘새마을 운동’, ‘반공’, 1980년이 되면 마이카 시대가 될 것이라는 어느 화백의 만화를 보며 자랐다. 세월을 흘렀고, 민주화 과정의 한 편에서 나 살기 바빠 정치에 관심두지 않고 소시민으로 살아왔다.
이제는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리고, 알 수 있는 사실에서 공과를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 경제성장이든 경제 발전이든 60, 70년대의 경제가 온전히 그의 역할 때문만은 아니며, 미국의 ‘지도와 지원’에 힘입었다는 것과 한일 국교정상화나 베트남 전쟁에 군대를 파견한 것이 정치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고, 그 과정에서 경제성장에 큰 도움을 받았다는 것, 인권과 사회 복지, 농촌은 소외됐고 기업으로부터 챙긴 각종 불법 수수료(지불금)가 정치 자금이었으며, 스위스 비밀계좌가 존재하며, 베트남 참전 군인의 수당을 정부가 착복했음과 중정이 저지른 해악에 재미교포까지 두려워했음과 문선명과 김종필의 관계 등 결코 단순하지 않고 깨끗하지도 않았던 현대 한국사의 맨얼굴을 들여다본다.
방대한 분량이라 요약하기보다 역자 후기를 옮겨 본다. “프레이저 보고서는 1945년부터 1978년까지 한미관계를 조사한 것이다. 원제는 이다. 미 하원 국제기구소위원회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사이에 존재하는 정치, 군사, 첩보, 경제, 교육, 그리고 정보관계의 모든 측면들을 충분하고 완벽히 조사, 연구를 수행’하라는 권한을 의회에서 위임받아 작성했다.
조사의 계기는 박정희정부가 인권에 관한 국제 규범을 체계적으로 위반하고 있다는 보고서였다. 소위원회는 1976년 내내 소규모 조사를 통해 정부가 미합중국에서 매수와 뇌물, 협박과 괴롭힘 등 부적절하고 불법적인 활동들을 하고 있다는 강력한 암시들을 찾아냈고, 이에 한미관계 전반에 대한 조사 권한을 추구하여 획득했다.
동맹 정부와의 관계를 조사, 정리하여 결과를 만들어 낸 후 결론과 권고 의견까지 내는 일은 드물고 까다로운 일이다. 객관성과 타당한 근거, 설득력을 담보해야 한다. 거기에 의회라는 권위를 얹음으로 더더욱 조심스럽고 신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소위원회는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28개 주와 11개 국가에서 1,563건의 인터뷰를 행했고, 123건의 소환이 이루어졌으며, 제출받은 수천 종의 문서를 검토했고, 선서를 한 37명의 증인들이 참석한 청문회를 20회 개최했다. 조사위원들 역시 해당 분양의 전문가들이었다. 그들은 행정부 기관들, 입법부, 주한미대사관, CIA, 주한미군, 그리고 한국의 ‘유력한 기업인들’이 미국정부에 보낸 비밀보고서들도 검토했다.
보고서는 적절한 단어와 어휘를 사용하고 문장을 구성하기 위해 철저한 검증과 근거 확인, 수많은 토론과 평가과정을 거쳤다. 의회의 권위, 조사위원들의 성실성, 그리고 한국정부의 반박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집필되었다. 그러므로 박정희 시대와 한국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객관적인 평가서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역자후기 p 670~671]
프레이저 보고서는 레드북에서 2014년 초판이 나왔다. 본문 676쪽 분량이다. 옮긴이는 김병년으로 번역은 매끄럽지 않다. 표지에 한국현대사와 박정희 시대에 대한 가장 완벽한 평가서, ‘악당들의 시대’라는 부제가 있다.
P.S. 2015년 12월 25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