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에서 특정한 내용을 뽑아 쓴 주제 서평 13
말하기와 글쓰기의 다름이 우리의 사고체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연구한 책이다.
말은 사라지나 글은 남는다는 라틴 격언을 떠올린다. 글을 쓰는 일이 두려운 까닭은 정확한 진실이 아니면 책임과 비난이 따르기 때문이다. 평범한 독자라도 책을 읽으며 근거 없는 주장인지, 지나친 생각인지, 불필요한 중복인지를 안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를 읽어 글쓰기의 두려움을 이기기 위함이다.
책은 핵심을 파악하기 어렵다.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연구자들이 중복돼 나온다. 언어학 전공자에게 필요한 책이란 생각으로 읽었는데, 출판사는 인문, 사회 과학 전 분야를 아우르는 교양서로 평가한다.
‘구술문화가 문자문화로 바뀐 것은 청각에서 시각으로 정보를 인식하는 체계를 바꾼 것’, ‘문자는 의식을 구조화한다’, ‘학술 언어와 일상 언어의 차이에서 여성의 일상어 기반 소설 등장’, ‘중세는 물론 낭만주의 시대까지 구술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음’, ‘한글에 대한 외국 학자의 평가’, ‘방언이 지배적 언어가 되는 과정’, ‘왜 유럽에서 라틴어가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문자로 존속하는가’, ‘유럽 내 학교에서 라틴어가 학술 언어가 된 까닭’, ‘말하기에서 문자로 쓰기에 대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거부감’ 등이 책을 덮고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다.
지식 조각들을 정리해 나중에라도 스키마가 잡아당길 때까지 기억하려 한다.
- 미국주의는 하버드 대학이 제공하는 이념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며, 예일대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미국학을 확립한다. 오리엔탈리즘의 뿌리가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미국의 헤게모니는 군사력 못지않게 대중매체, 문화, 과학의 힘에 토대를 둔다. 중국은 미국의 soft power를 통제하려 할리우드 영화에 엄격하다.
언어의 구술성
“언어학의 아버지 소쉬르는 구술로 하는 말이 가장 우선적이고 모든 언어적 의사소통의 근저를 떠받치고 있음을 강조한 바 있으며, 쓰기가 언어의 기본 형태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경향이 학자사이에 존재함을 주의할 것을 촉구한 바가 있다”
일차적 구술성이란 쓰기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구술성을 가리킨다. 수사학은 과거 2 천 년 동안 서양문화 전체에서 가장 포괄적인 학문의 주제였다. 수사학은 기본적으로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이나 연설이기에 오늘날에도 강연자에겐 의미 있다. 고대에는 준비한 텍스트에 따라 말한다는 건 무능한 일이었다.
일차적 구술성에 대한 현대의 발견
호메로스의 존재와 그의 작품인가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서구의 문화유산 중 가장 모범적이고 진정하며 뛰어난 세속시란 것이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함없고 일반적인 견해다” 두 서사시는 여러 세기에 걸쳐 형성되고 손질된 끝에 기원전 700~650년경 그리스 알파벳으로 적힌 것이다. 플라톤은 쓰기가 지식을 처리하는 수단으로써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이며 질문에 무책임하고 기억력을 손상시킨다며 쓰기를 유보하자는 의견을 냈다. 기원전 4~5세기 플라톤 시대에 이미 그리스인은 글쓰기의 실효성을 알았고, 독창적이고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구술성의 정신역학
구술문화에 입각한 사고와 표현의 특징으로 첨가적이다. 정형구에 의지한다. 장황하거나 다변적이다. 보수적이거나 전통적이다(박식한 노인들이 높이 평가받는다) 인간생활 세계에 밀착된다. 논쟁적 어조가 강하다. 객관적 거리를 두기보다 공감적이며 참여적이다. 추상적이기보다 상황 의존적이다. “구술문화는 기하학적 도형, 추상적 카테고리에 의한 분류, 형식논리적인 추론, 수속, 정의 등과 관련이 없고, 텍스트를 통해 형성된 사고에서 유래한다”
본문에는 고타마 싯다르타가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며 걸었다는 문장을 떠올리게 하는 다른 사례(만능의 므윈도 : 그에 대한 통상적 형용구는 태어나자마자 바로 걷기 시작한 조그만 이다)가 있다.
어떤 사물의 물리적 내부를 확인하는 데 소리만큼 직접적으로 효과가 있는 감각은 없다. 우리 눈은 불빛에 끌리지만 불꽃의 어느 곳에도 ‘응시점(fix)’을 가질 수 없다. 시각은 토막 내는 감각이고 청각은 통합하는 감각이다. 시각의 이상은 명확성과 명료성이며, 청각의 이상은 하모니다. 내면성과 하모니는 인간 의식의 특징이다. 지식이란 궁극적으로 분리가 아니라 통합이며 하모니를 이루는 일이다.
내부나 외부라는 개념은 수학 개념이 아니며 인간 존재에 기초를 두는 개념으로서 인간 자신의 신체 경험에 입각한다. 화자와 청자 사이에는 일체가 형성된다. 화자가 청자에게 자료를 건네주고 읽도록 하면 청중의 일체성은 무너진다. 쓰기와 인쇄는 대상을 분리한다. “신앙은 듣는 것으로부터 온다”(로마서 10장 17절)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영혼은 사람을 살린다”(고린도서 3장 6절)
쓰기는 의식을 재구조화한다.
델포이 무녀는 신탁을 말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다. 신의 목소리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책에 이렇게 쓰여 있다’고 말하면 ‘그것은 진실이다’와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텍스트의 내용이 거짓임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해도,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그 텍스트는 계속 거짓을 말하는 셈이다”
소크라테스는 ‘쓰기는 비인간적이다’, ‘기억을 파괴한다’, ‘쓰인 것은 대답하지 않는다’, ‘쓰인 말은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쓰기는 기술이다. 쓰기는 소리를 정지된 공간으로 환원하고, 현재로부터 말을 분리시킨다. 쓰기는 무의식에 나타나지 않는다. 쓰기는 의식을 높인다. “쓰기는 인간의 모든 기술적 발명 중에도 가장 영향력이 컸으며, 말하기를 구술-청각의 세계에서 시각의 세계로 이동시킴으로써 말하기와 사고를 함께 변화시켰다”
종이는 중국에서 기원전 2세기, 중동에는 8세기, 유럽에는 12세기에 만들어진다.
“12세기 영국에는 벽시계도 달력도 없었다. 중세나 르네상스시대에도 지금이 달력상 몇 년에 해당되는지 일상생활에서 거의 의식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이 달력상으로 몇 년에 태어났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했으며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문학이 나타난 것은 17세기가 지나서였다. 어휘가 풍부해진 것은 인쇄된 사전 덕택이다. 17세기 라틴어 학교에서 라틴어를 가르쳤는데 남성이 대상이었다. 여성들은 훨씬 덜 연설적인 목소리로 스스로를 표현했으며 이것이 소설의 발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겨우 50마일만 떨어져도 주민들이 서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일상어들이 달랐기에 실질적으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한정된 수의 소년들에게 라틴어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라틴어는 학술라틴어, 즉 쓰기를 통해 완전히 통제된 언어가 되었다. 학술 라틴어는 1000년 이상 남성만이 쓰고 말하는 언어였다. 근대과학은 라틴어의 정신 위에서 성장한 것이다. 낭독은 19세기까지도 일반적이었다.
인쇄, 공간, 닫힌 텍스트
인쇄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유럽 르네상스로 바꾸었고, 종교개혁, 근대 자본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쳐 서유럽이 전 지구를 탐험하게 했고, 가정생활과 정치, 근대과학을 융성케 했다.
사고와 표현의 세계에서 오래 지속한 청각의 우위는 인쇄를 통해 시각의 우위로 바뀌게 되었다. 텍스트가 한층 읽기 쉽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속독과 묵독을 가능케 한다. 인쇄는 수사법이란 옛 기술을 학문 교육의 중심에서 추방했다. 영어 사전이 만들어진 것은 18세기다. 인쇄는 폐쇄감각을 부추긴다. 인쇄된 텍스트는 저장의 말을 최종적인 형태로 나타낸다고 여긴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는 잘 읽히지 않는다. A41~2장이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다 담을 수 있다. 이를 276페이지에 늘여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