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권
1000만 관객을 넘어서면서 한창 인기몰이 중인 영화 '왕사남'에서, 마지막까지 단종을 지지했던 인물이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던 금성대군. 그런 그가 유배를 오고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이 바로 오늘 소개할 영주이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무언가 다른 도시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무언가 안동과 비슷하게 선비들이 살 것 같은 느낌이 나지만 색다른 포근함이 느껴졌고, 주변 풍경 또한 겨울임에도 창창한 빛을 띠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영주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나의 입에서는 무심코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내가 선비라면 여기서 살고 싶었을 것 같다."
내가 영주에서 가장 먼저 간 곳은 부석사였다. 이곳을 첫 목적지로 정한 것은 우리나라의 국보인 무량수전을 보고 싶어서 간 것이었다. 하지만 내부를 둘러보다 보니 부석사는 고개를 돌리는 족족 보물과 국보가 있는 환상적인 사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보물로 지정된 '부석사 당간지주'였다. 당간지주란 절에 행사가 있을 때 달아두는 당(幢)이라는 깃발을 지탱해 주는 돌기둥을 뜻하는 말인데, 보기에는 투박하지만 그 자체로 한 시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묘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간지주가 있는 곳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부석사 천왕문이 나온다. 그리고 천왕문을 통과해 조금 더 걸어가면 근엄한 부석사의 또 다른 입구를 만나게 된다. 이곳의 계단은 각도와 높이가 꽤 되었는데, 이런 계단의 형태는 한 걸음씩 부석사로 다가서는 나에게 겸손함을 가르쳐 주는 듯했다.
부석사 안쪽으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인 삼층석탑 두 개가 보인다. 그리고 그 정면으로 "우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하는 멋진 범종각이 방문객을 근엄하게 내려다보듯이 서 있다.
이 범종각은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로써 1746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747년에 중건되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범종각이라는 이름답게 처음에는 내부에 쇠종이 있었으나 해당 범종의 소재는 현재 파악되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범종각은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누각의 아래쪽에서부터 걸어와서 가운데를 통과하는 형태를 띠고 있는데, 걸어서 올라갈 때의 느낌도 예술이지만 그 옆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풍경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범종각을 지나면 아래쪽으로 통과하는 또 하나의 누각을 볼 수 있는데, 이 누각은 범종각과 같은 보물로 지정된 '안양루'이다.
안양루는 무량수전의 바로 앞에 지어져 있는 건물로, 설명에 따르면 누 밑을 통과하여 무량수전으로 들어서게 한 일종의 누문(樓門) 형태의 건축물이라고 한다.
또한 이곳에서는 범종각에서의 풍경에서 업그레이드된 듯한, 황홀한 자연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데, 이곳 옆에 서서 주변의 산세를 바라보다 보면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안양루에서 풍경을 바라보다가 뒤를 돌아서면, 우리가 교과서에서 익히 봐왔던 건물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무량수전을 볼 수 있다.
시간이 흘렀어도,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무량수전 안에는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이 모셔지고 있다고 하는데, 나는 아쉽게도 내부를 보진 못했다.
이곳을 보면서 또 놀라웠던 것은 무량수전 앞에 있는 석등 또한 국보로 지정되어 있었다는 것인데, 관련된 설명이 이야기해 주는 것처럼 이 석등은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지니고 있었고, 화사석의 벽면에 새겨진 보살상 조각은 이걸 손으로 어떻게 깎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 정도로 정교했다.
무량수전의 우측에는 마찬가지로 국보로 지정된 '부석사 삼층석탑'이 자리를 빛내고 있었다. 이 탑은 문무왕이 있던 시절에 부석사를 창건하면서 함께 만들어진 탑이라고 하는데, 탑이 가지고 있는 양식이나 역사적인 가치가 무척이나 뛰어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무량수전의 뒤편에는 부석사의 이름이 된 부석이 자리 잡고 있다. 부석은 특이하게도 바위와 바위 사이가 서로 붙어있지 않아서 부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실제로 약간의 틈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석사 입장료: 무료
영주터미널 - 부석사 이동 소요: 버스로 약 45분
부석사를 보고 나서 한 시간 정도를 달려서 도착한 곳은 무섬마을이었다.
무섬마을이라는 마을의 명칭은 물 위에 떠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그 이름에 걸맞게 마을 주변을 보면 개울이 마을 전체를 휘돌아서 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은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인 만죽재와 해우당이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으로, 마을 전체가 자연과 어우러진 조선시대의 마을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무섬마을에서의 백미는 역시 개울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였다.
국토해양부가 뽑은 아름다운 길 100선, 문체부 로컬 100에도 선정된 이 외나무다리는 그 명성에 걸맞게 정말로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윤슬이 반짝이는 다리 위를 찬찬히 걷다 보면 투명하고 잔잔한 개울 바닥과 함께 평화로운 주변 풍경이 방문객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데,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서인지 보통은 이곳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남기곤 한다.
다리의 입구 쪽에 세워진 표지판에는 '양보하지 않으면 서로 건널 수 없는 다리로 상생과 협력의 마음을 담고 있다.'라는 안내 메시지가 있는데, 실제로 다리를 걷다 보면 양보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를 건너면 맞은편에는 산책을 하기 좋게 만들어진 데크길이 있다. 이곳에서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무섬마을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는데, 마을의 전경이 참 고풍스럽고 예뻤다.
여행을 끝나고 나서는 (당시 기준) 무섬마을 안까지 버스가 들어온다는 안내가 있었는데, 해당 버스는 타보지 못했고, 나는 마을 외곽에 위치한 정류장까지 걸어간 뒤 버스에 탑승하여 터미널까지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