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준위

second lieutenant

by 그리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것은 1935년에 에르빈 슈뢰딩거가 고안한 사고 실험을 뜻하는 말로, 쉽게 이야기를 하자면 '어떤 상자 안에 있는 고양이가 1시간 뒤에 죽게 될 확률이 50%인 경우, 생사 여부를 눈으로 직접 '관측'하기 전까지는 고양이가 상자 속에서 살아있으면서도 동시에 죽어있는 상태를 유지한다.'라는 개념이다.


내가 이 단어를 서두에 쓴 이유는 바로 하나다. 바로 군대에서의 '준위'라는 계급이 이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무척이나 유사하기 때문.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신비한 계급인 준위. 나는 이 계급을 가졌던 인물을 '관측'했던 순간을 추억하며 글을 써보고자 한다.


한때 온라인상에서는 '준위라는 계급은 우리나라에 없다.'라는 말로 어그로를 끄는 사람이 있었다. 물론 군대를 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의외로 꽤 많은 사람들이 그 말에 솔깃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실제로 준위라는 계급을 가진 사람을 볼 기회는, 일반인은 물론이고 군인들 사이에서도 무척이나 희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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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준위 계급장. 우측에 있는 소위 계급장과 형태는 같지만 색깔이 금색이다.
"와... 이 계급장은 뭐야? 진짜 신기하다."




나 또한 그랬다. 군사학 수업 중에 준위라는 계급이 있다는 것을 배웠지만, 실제로는 사관후보생 시절 내내 준위라는 계급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이런 준위보다 별(장군)을 더 많이 보았다 느낄 정도로, 준위라는 계급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 계급인 것만 같았다. (임관식 때만 하더라도 평생 볼 별들을 모두 보았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는 준위를 볼 기회가 찾아왔다. 자대를 배치받기 전, 내가 속한 사단이 담당하고 있는 지역을 모두 정찰한다는 명목하에 지역 이곳저곳을 가게 되었는데, 그때 운이 좋게도 준위라는 계급을 가지고 있는 인물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 지형 정찰 교육을 시작할 때에는, 특별한 무언가를 볼 것이라는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속한 사단이 지역도 매우 넓고, 주요 방호 시설들 또한 다양하게 있었기 때문에 '설마 구석구석 다 가보겠어?'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원자력 발전소를 지키고 있는 부대에 들어가 밤새 순찰 훈련을 하기도 하고, 여단급 부대에 방문하여 여러 정보를 익히던 어느 날, 교육장교님께서는 나와 동기들을 불러 모으고서는 찬찬히 이야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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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우리 사단 지역의 해안을 감시, 정찰하고 있는 레이더 기지로 갈 예정입니다.




레이더 기지라니. 그 순간 나는 '과연 군대에서 운영하는 레이더 기지는 얼마나 좋은 곳일까?' 하는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장소를 마주하게 되니, 나는 눈앞에 펼쳐진 두 가지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는 레이더 기지가 특별한 곳에 숨겨진 게 아니라, 흔히 우리가 해안가 쪽으로 여행을 갔을 때, 등대와 함께 볼 수 있는 그 건물이었다는 점. 그리고 두 번째는 그 건물 안에 생각보다 많은 병력들이 상주하고 있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레이더 운용관님께 사단 지역에 있는 레이더들이 어디에 있는지와 상주하는 인원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안내를 간단하게 듣고, 다음으로 레이더 장비의 자세한 활용을 보기 위해 장소를 옮겼는데, 그 순간 지루함으로 가득 차 있던 나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 이유는 상황실 내부에서 인자한 미소로 우리를 반기는 레이더 기지장님의 모자에 지금껏 책에서만 보던 그 계급장이 딱! 하고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와.. 준위가 진짜 있었어.'


나는 멸종한 공룡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본 사람처럼, 한동안 그 계급장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내가 공부한 책과 매체에서는 준위에 대해서 이렇게 서술이 되어 있었다. '해당 군사특기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숙련도를 가진 인물이자, 스페셜 리스트라 부를 수 있는 계급이 바로 '준위'이다.'라고. 그런데 실제로 준위를 만나보니 그 말이 정말로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진짜 전문가는 어려운 걸 쉽게 풀어 설명하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기지장님은 그 말의 표본과도 같았다. 레이더 기기와 화면에는 복잡하게 되어있는 버튼과 그림들이 나열되어 있었는데, 기지장님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나하나 쉽게 설명을 해주셨다.


그리고는 군인에게서는 잘 볼 수 없는 우아한 동작으로 먼바다를 지나는 배를 가리키시며, 장비들의 관측 범위가 우리의 시야보다 넓고,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자세하게 확인이 가능하다는 말씀 또한 해주셨다. 그리고 긴 설명을 마무리하시며 장교로써 첫 발을 내딛는 나와 동기들에게 건승을 기원해 주셨다.


다른 지형 정찰 때와는 다르게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시간. 나는 레이더 기지 견학을 끝내고 난 후에 배웠던 내용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머릿속에 정보들을 되새겼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다른 곳에서 근무를 하고 계신 준위님들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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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설픈 바람은 이내 실패로 돌아가듯이, 나의 기대는 결국, 군 생활 내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특정한 병과가 아닌 이상 준위가 편성되어 있는 전문 부서로 발령 나기가 어려웠고, 파견이나 교육 등으로 가기에도 그런 곳은 허가를 받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는 또 볼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에는 수많은 별들만 눈에 담은 채 조용히 전역을 했다.


지금도 준위 계급장을 보면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 어쩌면 내 군 생활 중에 찾아온 수많은 행운들 중 하나는, 바로 그날 준위를 만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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