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ond lieutenant
"일만!, 이만!, 삼만!, 산개 검사!"
이 구호는 일반인들은 당연하고, 군인 중에서도 극히 소수만이 들어본 단어일 것이다. 그 이유는 저 단어들이 일반 훈련이 아닌 오직, 공수훈련을 할 때에만 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특수부대에 속한 간부, 혹은 해병대나 특정 부대의 장병들만이 받는 이 고된 훈련의 구호를 내가 어떻게 알고 있을까? 그 물음의 답이 바로 오늘 내가 풀어갈 이야기다.
대전에서 OBC(초급 장교 병과 과정) 교육을 받고 있던 어느 날. 병과장님께서는 고된 훈련이 예정되어 있으니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며칠 뒤, 나를 태운 한 대의 버스는 알 수 없는 시골을 향해 정처 없이 달려 나갔다.
한 시간 즈음을 달렸을까? 갑자기 병과 교관님들께서 한 식당에 들러서 식사를 하자고 하셨다. 메뉴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갈비탕. 나는 뚝배기에 담긴 뽀얀 국물과 커다란 고깃 덩어리를 보며 속으로 '고된 훈련이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맛있는 것을 사 주시지? 어쩌면 훈련이 쉬운 거 아니야?'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그것이 내가 웃으면서 먹을 수 있는 마지막 식사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식당을 나와 다시 이동하기를 삼십 분 즈음. 무언가 휑한 논밭들이 창밖으로 몇 번 지나가다가 드디어 어딘가에서 멈춰 섰는데, 그 풍경을 보는 순간 나의 숨이 턱 하고 막히고 말았다.
'와... 씨... 큰일 났다.'
전쟁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굳건한 담벼락과 군데군데 녹슨 철조망. 그리고 연이어 나오는, 생전 처음 보는 부대 마크. 나는 '제0 공수특수전여단'이라고 적힌 문구를 보는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는 훈련 교관님과 조교님들이 안내를 해주셨는데, 사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연병장에 덩그러니 설치된 20인용 텐트 안에서 생활을 해야 했다는 것과 침대는 좁다란 나무패널 위에 군용 매트리스를 깔아서 생활해야 했다는 점. 그리고 연병장 안에 숙소가 있다 보니, 매일 아침이 되면 초록색 담요 위에 누런 흙먼지가 잔뜩 내려앉아, 그것을 털어내야 했다는 점만 기억이 난다.
훈련은 당연하게도 지옥과 같았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누리고 있던 편리함은 온데간데없고, 핸드폰부터 PX 방문, 심지어 흡연자들의 흡연까지 통제가 되었다. 그렇게 첫날의 교육과정 OT를 듣고 나서부터는 나와 동기들의 하루가 고된 훈련으로 채워졌다.
PT(Physical Training)를 몇 시간 가까이할 때는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여기저기에서 곡소리가 울렸는데, 구토를 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PT 8번을 할 때는 쓰러지는 사람이 속출해서 3분에 한 번씩 앰뷸런스가 연병장을 오고 갔다. (동기 중에 한 명은 실제로 훈련을 받다가 기절을 해서 열외가 되기도 했다.)
물론 PT는 그냥 내가 느낄 고통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었다. 어떤 날은 완전 군장을 메고 급속 산악행군을 실시했는데, 행군길은 그냥 사람이 갈 수 없는 길을 헤쳐나가는 수준이었고, 그마저도 휴식 없이 빠르게 주파해야 했기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또 어떤 날은 팀을 짜고 직접 밥을 해 먹어야 하는 날이 있었는데, 이것은 아기자기한 캠핑 따위가 아닌, 살기 위한 발악과도 같았다.
식사를 하기 위해서 삽이 잘 들어가지도 않는 딱딱한 땅을 파내고, 구해온 돌과 나뭇가지로 화덕을 만들어 불을 피운 다음, 반합에다가 생쌀과 수통에 있는 물을 부어 밥을 지었는데, 식사 시간도 제한되어 있어서 완성되지 않은 생쌀을 그냥 으적으적 씹어 삼켰다. (물론 반찬도 하나 없었다. 그런데도 너무 배가 고프니, 나와 동기들은 얼굴에 검댕을 묻혀가면서 그걸 맛있다고 먹었던 기억이 난다.)
매일 같이 토하고, 근육통 때문에 골골대고, 생채기가 나는 나날들을 2주간 겪고 나니 그제야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나면 연병장 저 끝에서 특전사 팀원분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입가심으로 턱걸이 100개를 하는 모습을 보며, '와.. 저 사람들은 진짜 인간 병기가 맞다.'라는 생각을 했다.
이후부터 나는 이름 그대로의 공수훈련을 받았다. 기본 강하훈련의 하나인 패스트로프와 레펠을 익혔고, 공중침투를 할 때에 필요한 행동 요령이라든지, 비행기 엔진 소리 때문에 옆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을 고려하여 여러 수신호들도 함께 익혔다.
강하훈련 때는 정말 신기했던 것이, 줄다리기를 할 때 쓰는 굵은 줄 하나만으로 10m에 가까운 높이를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는데, 배워보니 생각보다는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 손과 두 발로 로프를 잡고 타워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왔는데, 특전사 조교분들은 그 줄을 '무려' 한 손으로 잡고 거꾸로 내려오는 모습을 보며 경악을 했다.)
그리고 그런 나날들이 반복되던 어느 날. 드디어 익히 보아왔던 막타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일만! 이만! 삼만! 산개 검사!!, 기능 고장! 하나! 둘! 셋! 산개 검사!!
타워에 오르기 전부터, 강하시에 왜 이런 동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은 이미 귀가 닳도록 들어왔었다. 낙하산이 펴지는 시간은 4초 정도인데, 스스로 천천히 "일만!, 이만!"을 외치면서 시간을 재야 하고, 낙하산이 잘 펴졌는지 산개 검사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는 것. 만약 낙하산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신속하게 보조 낙하산을 펼치며 다시 한번 산개 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 등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 연습해 왔던 것을 써보고 싶은 마음에 막타워 훈련을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철제 계단으로 된 막타워 끝에 오르자 조교님들은 행동 요령을 잘 익혔는지를 확인한 후 나에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외치게 했다. 그 후 나는 강하 신호와 함께 힘차게 "강하!"를 외치며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번지점프를 해본 적이 없는 나는, 내 몸이 이렇게까지 빠르게 추락한다는 것을 몰랐다. 엄청 높은 높이었는데도 땅바닥이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부딪히겠다는 아찔한 생각이 들 무렵, 로프가 나의 몸을 지탱하면서 나는 두둥실 떠올랐다.
나는 그 느낌에 안도감을 느낄 새도 없었다. 지금껏 내가 해온 것을 실천해야 했기에, 나는 습관처럼 바로 "일만! 이만! 삼만! 산개 검사!!"를 외쳤다. 그리고 기능 고장일 때의 구호까지 외치며, '철퍼덕' 착지를 완료했다.
나는 나름대로 잘 착지했다고 생각했지만, 도착지점에서 기다리던 조교님은 가차 없었다.
"엉덩이부터 해서 하체 옆면 전체로 착지하셔야 합니다. 지금처럼 하시면 다리 다 부러집니다."
나는 몸이 하강하는 속도를 체감해 보았기에, 그 말이 기분 나쁘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걱정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는 조금 더 부드럽고, 정확하게 착지를 하기 위해서 몇 번을 더 연습을 했다. (공수훈련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착지 방법이 미끄러지듯이 쓱 떨어진 이후에 몸 전체로 충격을 받아내며 반바퀴를 구르는 것이라 힘을 빼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훈련을 마치고, 드디어 주말 외출 허가가 떨어진 시점. 나는 그동안 훈련을 가르쳐 주신 특전 교관님과 조교님들께 감사를 하면서, 한층 더 강인해진 나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근 한 달 만에 밖을 나가볼 수 있게 된 기회에 감사하며, 어디를 가장 먼저 가볼까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 행복은 하루도 채 가지 못하고 좌절되었다. 현재 외부에 질병이 유행하여 군인들의 외출이 다시 통제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눈물을 삼켰다. 그리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지막이 외쳤다.
빌어먹을 메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