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잼 도시? 꿀잼 도시!

second lieutenant

by 그리다

임관을 하고 나면 초급 장교들은 각자의 병과학교가 있는 지역으로 떠나게 되는데, 나는 병과가 '정훈공보'다 보니, 국방정신전력원이 있는 대전으로 향했다. 출발하기 전에 미리 받았던 집합지의 주소. 하지만 이곳은 군사지역이다 보니 당연하게도 네이버 거리뷰에 나타나지 않았는데, 그 때문에 나의 시작은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대전역에서 내려 환승을 하고 곧장 912번 버스에 오르니, 이곳이 왜 과거에 '한밭'으로 불렸는지를 알 것만 같았다. 김제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낮은 산과 평지가 사방으로 펼쳐져 있었고, 그런 풍요로움 덕분인지 대전만의 여유가 잔뜩 느껴졌다.


국군간호사관학교가 보이는 길을 지나, 군인이 지키고 있는 검문소를 통과하니, 드디어 내가 도착해야 하는 OBC(초급장교 병과 교육) 장소에 도착했다. 물론 거기서도 또 한 번 신분증을 확인했는데, 함께 온 사람이 없었다 보니 숙소를 향해 걸어가면서 무언가 휑한 느낌이 들었다.



anykeep-flower-6154837_1920.jpg


정신전력원에서 도착해서 마주한 나와 동기들은 처음에는 서로를 어색해했지만, 그 벽이 허물어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로에게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신기하게도 서로의 다른 점들 덕분이었는데, 전국팔도에서 온 사람들이다 보니 서로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갔던 게 컸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각자가 살아온 삶이나 고향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농담도 하면서 유쾌하게 시간을 보냈다. 한 달 즈음이 지난 후부터는 나도 여유가 생겨서 주말에는 가끔씩 밖을 돌아다녔는데, 걷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대전의 평지가 큰 행복으로 다가온 나머지, 매주 주말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수목원 탐방부터 해서 아무도 없는 시간대에 대전의 핫플레이스인 성심당에 들려보기도 하고, 때로는 자운대 부지를 걸으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때 종합군수학교 표지석에 적혀있던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자.'라는 말이 정말 상남자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도 선명하게 그 글자가 기억으로 남아있다.)




11150146_807322186049152_2922419605057816108_n.jpg
11174804_807322156049155_1663562408355940728_n.jpg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야구장)


어느 날은 대전 토박이였던 동기의 권유로 함께 야구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야구의 열기가 어느 곳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정말 뜨거웠다. 그런 분위기에 힘입어 나도 열심히 야구를 즐겼는데, 아쉽게도 내가 응원하던 팀은 점점 실점을 하더니, 후반에는 큰 점수차를 보이며 패전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되었다.

그러자 시무룩해하는 나를 보며 동기는 되려 한화 응원을 멈추고 나와 같이 원정팀의 응원가를 불러 주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대전 사람들이 참 친절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동기는 한화팬임에도 나를 배려해서 3루 쪽으로 응원석을 예매해 주었다.)


OBC 과정이 익숙해지니, 대전은 나에게 천국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느 방향으로 걷든 길은 한적했고, 바람은 따뜻했으며, 불어오는 바람에는 느긋함이 서려 있었다. 또 광역시이다 보니 장을 보러 가기도 용이했고, 교통의 요지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기차를 타고 인근 시. 도로 여행을 가기도 좋았다.


그렇게, 이 정도면 군생활 할만할지도 모르겠다는 착각에 빠져 있던 나는, 먹구름이 등뒤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생전 맛본 적 없는, 정말 지옥과 같은 시간이 나를 반길 거라는 것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부심이 차오르는 임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