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심이 차오르는 임관식

second lieutenant

by 그리다

군인 신분이 되면 해외로 나가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어진다는 주변 사람들의 조에 서둘러 해외여행을 다녀온 나는, 곧이어 있을 임관식을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며칠 뒤, 고이 모셔두었던 정복을 꺼내 입고 임관식이 열리는 계룡대를 향해 가는 길. 열차 내부에는 틈틈이 나와 같은 정복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도 오늘 함께 임관을 하는 동기였던 것인지, 목적지까지 거의 비슷하게 이동을 했다.


계룡시 터미널에 도착한 나는 다행히도 같은 학교에 다니던 동기가 제안을 해준 터라, 차를 타고 계룡대 안까지 이동을 했다. 입구에는 이미 몇십 미터 정도의 길이로 인파가 줄을 서 있었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 차를 안 탔으면 정말 오래 기다렸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의 신분확인을 거치고 드디어 입성한 계룡대. 그곳에는 사진으로만 봤던 팔각형의 거대한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연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웅성거렸다.


초임 장교만 해도 7,000명. 그들의 가족과 기타 행사를 진행하기 위한 인원들까지 합치면 거의 3만 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연병장 안팎을 채운 모습은 마치 거대한 축제장을 연상케 했다.


임관식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과 함께 찾아온 정적. 육. 해. 공군의 초임 장교들이 차렷자세로 연단을 바라보자 군악대가 귀빈의 입장을 알리는 입장곡을 연주했다.


[입장곡의 시작 부분에는, 계급에 따라서 반복되는 횟수가 다른, '빠라바라밤!' 하는 반복음이 나오는데, (보통은 2번, 군단장급인 3 스타는 세 번, 각군 참모총장급인 4 스타는 네 번 반복되는 형식.) 나는 여기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4번 연속 '빠라바라밤!' 하는 소리를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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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축사가 끝나고, 이후 이어지는 계급장 수여식. 이것은 부모님들이 자녀의 양 옆에 서서 그 어깨에 소위 계급장을 달아주시는 행사로, 여러 가지를 갈무리하는 의미 깊은 행사였다.


계급장이 어깨에 올려질 때마다 크게 들려오는 누군가의 관등성명. 그리고 그 외침들 사이로 울음을 참으려는 듯한 훌쩍거림도 나지막이 들렸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다들 그동안 고생이 참 많았겠구나.' 하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아쉽게도 부모님이 생업에 종사하시느라 임관식에 오지 못했는데, 나와 같은 초임 장교들은 영관 장교님들이 한 분씩 오셔서 계급장을 달아주셨다. (나에게 계급장을 달아주셨던 그분이 내 어깨를 툭 치시며 "축하한다."라는 말을 하신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계급장을 달자, 대학교의 졸업식처럼 다 함께 정모(모자)를 던지는 행사를 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나는 내 정모를 살짝 던졌기에 쉽게 회수를 했는데, 지나치게 높이 던졌던 동기들은 자신의 모자를 찾기 위해 한참 동안 헤매기도 했다.)


계급장 수여식이 끝나자 다음으로는 축포를 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굉음에 조심하라는 말에 뒤를 돌아보니 연병장을 둘러싸고 있는 둔덕에는 곡사포와 함께, 흰 장갑을 낀 장병들이 신호를 대기하고 있었다. 이후 구령을 외치며 잡고 있던 줄을 당기자 '펑!' 소리가 나며 순서대로 축포가 터졌고, 그 폭음은 건물에 반사되어 다시금 연병장을 가득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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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빈 여러분들께서는 연병장 뒤편을 바라봐 주십시오.


축포가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주요한 행사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연병장의 뒤쪽을 보라는 또 다른 안내에 초임장교들과 가족분들은 한참을 두리번거렸는데, 몇 초가 지나자 공기를 가르는 비행기 소리가 어딘가로부터 들려왔다.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에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대열을 이루고 있는 비행기들이 악보를 그리듯, 푸른 하늘을 가르며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비행기의 엔진소리도 묻힐 만큼 크게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 아슬아슬하고 멋진 비행을 보여준 파일럿들을 향해서 쉼 없이 박수를 쳤다. 몇 번을 더 하늘을 가르던 비행기의 모습이 사라지고 박수소리도 잠잠해질 때 즈음, 연명장에는 계단처럼 생긴 두 개의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무언가 사진을 찍기 위한 단상으로 보이는 구조물. 아니나 다를까 방송으로 "대통령님이 곧 입장하실 예정입니다."라는 안내가 나왔다. 처음에는 다들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재밍으로 핸드폰의 전파가 차단되고, 선글라스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진짜로 대통령이 오는구나.'라는 실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 나와 동기들은 각자 사진을 찍을 때의 위치를 지정해 주는 번호표를 부여받았다.


열화와 같은 함성 소리와 함께 입장하는 대통령님.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국방부장관과 육. 해. 공군 참모총장님들이 강단에 자리했다. 힘찬 경례 소리와 함께 대통령님의 축사가 시작되고, 다들 그 말에 경청을 하려는 것인지 연병장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당시에 대통령님의 축사가 꽤 길었었는데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고, 그저 '진짜 대통령이야?'라며 그 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본 기억만 난다.)


축사 이후 사진을 찍기 위해 강단에 열을 맞추어 올라서자 저 멀리서 대통령님과 함께 고위 장교분들이 천천히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나는 운이 좋게도 대통령님이 서시는 자리 바로 우측 뒤편에 위치했는데, 3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에 대통령이 있다는 게 너무나도 신기했고, 그 주변을 둘러싼 장군들을 보면서도 '평생 볼 별을 여기서 다 보네.'라며 속으로 감탄을 연발했다.

(사진을 찍기 전 "나는 대통령님이랑 사진 찍어도 뭐 딱히 감흥 같은 거 없을 것 같다."라는 투로 말하던 동기가 있었는데, 정작 그 동기가 사진을 찍을 때 가장 크게 환호성을 지르는 것을 보고는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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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관식이 모두 끝난 후에는 다시 한번 친구 아버지의 차를 타고 인근 기차역으로 이동했다. 대부분의 동기들은 계룡시 인근이나 근처 지역에서 외식을 하기도 했는데, 나는 너무도 많은 인파에 기가 빨렸어서 그런지, 머릿속에 오직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 밖에 나지 않았다.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한 나는 정복을 벗어 조심스레 옷걸이에 걸어두고는, 아까 보았던 임관사령장을 다시금 꺼내 들었다.


<육군 소위에 임함>


나는 크게 쓰여있는 글자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듯,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었다.



장교, 이제 시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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