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didate
대학교 졸업 학점을 모두 채워갈 무렵 나는 임관을 위한 병과 선택을 준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뭐 대충 아무거나 선택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행정실에 올라갔는데, 내 눈앞에 지원 서류가 놓이는 순간, 나는 눈사람이 된 것처럼 그 자리에서 얼어버리게 되었다.
병과의 종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많았다. 큰 틀에서는 전투병과와 비전투 병과로 나눠지고, 거기서 세분화를 하면 전체 병과만 해도 스무 개가 넘었다. 내가 어떤 병과로 지원해야 할지 훑어보고 있으니, 훈육관님은 짧게 조언을 해주셨다.
어차피 보병은 쓰면 가니까, 그거 말고 다른 병과부터 써.
4순위까지 쓸 수 있었던 병과. (5순위 이상도 있었지만 거기서부터는 써내도 안 뽑힐 가능성이 높았기에 생략했다.) 병과들의 종류는 많았지만, 각각의 병과들은 아무렇게나 지원할 수 없었다. 마치 RPG게임을 하듯, 몇몇 병과들은 관련 학과를 졸업해야만 고를 수 있었기에, 나는 차근차근 설명을 읽어가며 지원할 병과를 골라나갔다.
그렇게, 확정 짓게 된 세 개의 병과. 나는 1순위에는 '부관', 2순위에는 '정훈', 3순위로는 '기갑' 병과를 써 내려갔다.
원래 나는 기갑 병과를 1순위로 쓰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왕 전투병과로 간다면, 더 크고 강한 무기를 다루어보자는 개인적인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갑 병과에는 제한사항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색각 이상자'는 지원이 제한된다는 것. 나는 선천적으로 적록색약을 가지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것으로 인해 병과 선택이 불가능해지자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기갑 병과를 3순위에 놓을 수밖에 없었다.
1순위로 썼던 부관 병과(현재는 인사행정병과)는 무언가 사람과 관련된 일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병과 마크가 양피지와 깃털펜, 칼이 있던 형태였는데, 그게 무언가 멋져 보여서 지원을 한 것도 있다.
2순위의 정훈은 '문헌정보학과'였던 내가 유일하게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병과여서 지원을 했다. 정훈 병과는 대외적인 일을 하거나 장병들을 대상으로 정신교육을 하는 병과였는데, 이 또한 나와 조금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을 하게 되었다.
2순위까지 써 내려가니, 훈육관님께서는 "비전투 병과 쪽은 경쟁률이 높아서 다 떨어질 거 각오하고 써라."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그 말에 잠시 멈칫했으나, '그래 뭐, 다 떨어지면 보병을 가야겠다.'라는 마음으로 결국 4순위에 보병 병과를 써넣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난 뒤, 병과가 발표되었다. 동기들은 모두 자신이 원하던 병과에 뽑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달려갔다. 나는 어차피 보병 병과가 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는데, 어째선지 내 이름 옆에는 보병이 아닌, 생소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000번 후보생 이 아무개 - [병과: 정훈공보]
'왜지?'
정훈 병과가 선택되었다는 것을 보고 나는 잠시 머리가 하얘졌다. 동기들이 나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지만, 내 얼굴에는 어색한 미소만이 감돌뿐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보병을 생각하며 그동안 많은 준비를 하고 있었고, 동기들끼리도 같이 보병 병과를 가자며 계속 이야기를 나누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훈'이라는 단어가 어찌 보면 좋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평소처럼 체력단련을 마치고, 자취방에 눕게 된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나의 병과가 무엇인지를 찾아보게 되었다. 여러 사진과 함께 올라와 있는 정훈 병과에 대한 정보. 한참 동안 핸드폰과 씨름을 하던 중, 나는 커다란 종을 기준으로 횃불과 칼, 붓이 교차되어 있는 병과마크를 보며 피식 웃음을 짓게 되었다. 그리고는 무심코 그 모양과 닮은 동물 하나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병과 마크가··· 거북이를 닮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