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didate
군대를 다녀온 사람에게는 PTSD가 오는 여러 가지 말들이 있지만, 누구든지 들었을 때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PRI. 이것의 실제 명칭은 'Preliminary Rifle Instruction'으로 소총 예비 훈련이라고도 하는데, 그 악명 때문인지 '피(P)'나고, '알(R)'배기고, '이(I)'가 갈리는 훈련으로 더 유명하다.
나는 이 훈련을 첫 사격을 하기 직전에 맛보았다. 이전까지 주야장천 제식훈련만 하다가 비로소 실질적인 사격 훈련을 한다는 말에 처음에는 무언가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그 기대가 절규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PRI 훈련이 사람을 미친 듯이 굴리는 훈련이었기 때문이다.
전체! 엎드려 쏴!
훈련의 내용은 이러하다. 도넛처럼 생긴 넓은 공간에 훈련생들이 가운데를 보고 둥글게 선다. 훈련장의 정 가운데에는 원통형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 구조물의 겉에는 각각 세 개의 표적이 작게 그려져 있다. 교관이 한가운데서 구령을 외치면, 그에 맞는 동작으로 표적을 조준한 뒤 쏘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다시 처음의 자세로 돌아와 이것을 끝없이 반복한다.
처음에는 나도 무언가 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슨 버피테스트를 하듯이, 무거운 총을 든 상태로 계속 앉았다, 섰다, 엎드렸다를 반복하다 보니, 땀은 땀대로 나고, 숨도 턱끝까지 차오르게 되었다. 게다가 바닥에는 틈틈이 돌부리나 자갈들이 끼어있어서, 사격 자세를 잡을 때마다 전투복을 뚫고 들어오는 돌멩이의 날카로움에 여기저기 피가 나기도 했다.
총구 끝이 흔들린다! 다시 준비!
중요한 것은 사격 연습이 잘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조교가 총구에 흰 바둑돌을 올려준다는 것인데, 방아쇠를 당길 때 바둑돌이 밑으로 떨어지면 다시 PRI를 실시해야만 했다. 반복되는 훈련으로 숨도 거칠고, 다리는 후들거리는 상황이다 보니 바둑돌을 떨어트리지 않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온몸에 힘을 바짝 주고 하면, 바둑돌이 마법처럼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서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여하튼 최소 30분 동안. 앞선 조의 사격훈련이 미뤄지면 그 시간까지 더해 추가로 PRI 훈련을 했다. 그래서인지 사격 순번이 느린 조의 동기들은 사격장으로 올라갈 때 거의 넝마가 되어있었는데, 그 모습이 퍽 안타까우면서도 웃음이 났다.
12번 이하로 표적을 맞춘 후보생은 다시 내려가서 PRI 훈련을 실시한다.
안타깝지만 PRI 훈련은 사격을 실시했다고 해서 끝나지 않았다. 20번 사격 중 12번 이하로 표적을 맞춘 사람들은 별도의 스티커를 가슴에 달고 PRI 훈련장으로 다시 내려왔다. 그리고는 사격을 재실시할 때까지 계속 PRI 훈련을 했다.
다행히 나는 PRI를 두 번 하지 않았다. 내가 PRI를 하고 있을 때, 앞서 사격을 한 동기 몇 명이 터덜터덜 걸어 내려와 우리 옆에 서는 것을 보았는데, 이 모습을 보며 각오를 다졌던 것이 큰 힘이 된 것 같다. 여하튼 PRI를 다시 하기 싫다는 마음 때문인지, 실제 사격장에서는 더 집중이 되기도 했고, PRI 훈련에서보다 실제 사격을 하는 게 더 쉽다는 깨달음도 얻게 되었다.
집에 안 갈 거야? 맞추고 집에 가야지.
'동기는 하나'라는 구호에 의해서 나와 동기들은 마지막 후보생의 사격이 끝날 때까지 옆을 지켜주었다. 다만 재사격을 7~8번 이상 하던 동기도 있었던 탓에, 교관님도 지친 나머지 "이제 좀 맞추자. 그게 어려워?"라며 하소연을 했다.
생활관으로 돌아온 이후에, 나와 동기들은 각자 연고나 반창고를 붙이며 생채기가 난 곳들을 치유했다. 그리고 서로 PRI를 하면서 겪은 경험담을 나누었다. 어떤 동기는 무릎에 진짜 큰 돌이 부딪혔다고도 했고, 또 어떤 동기는 30분 훈련을 하니 손이 벌벌 떨렸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나 또한 그 이야기를 들으며 사격보다 PRI가 더 끔찍했다는 회고를 했다.
그리고 우리는 잠시 뒤,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곤히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날 있을 훈련과 각자의 불침번 순서를 확인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