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식량이라 하면 보통 건빵을 떠올리지만 건빵과 더불어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전투식량들이 있다. 민간인인 경우에는 당연히 이것을 맛볼 기회가 없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군복을 입고 있던 시간 동안 모든 종류의 전투식량을 맛볼 수 있었다.
1형 전투식량은 레토르트 식품처럼 뜨거운 물에 데운 뒤 취식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오래된 전투식량답게 정말 특별한 군부대가 아니면 구경하기가 힘든데, 나는 이것을 장교후보생 때 먹게 되었다.
훈련이 끝난 후 예비용 전투식량이 박스채로 남았는데, 아무도 먹으려고 하지 않아서 처리하기가 골치 아팠다. (훈련이 끝났으니 다들 그리웠던 집밥이나 더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했다.) 이때 나는 전투식량의 맛이 궁금했던 터라 친구들 몫의 전투식량을 몇 개 받았는데, 그 덕분에 3가지의 식단을 모두 먹어보게 되었다.
[1형 전투식량 1 식단]
- 쇠고기 볶음밥, 조미밥, 김치, 양념꽁치, 볶음고추장.
모든 1형 전투식량이 그렇듯, 물에 데운 후 꺼내면 밥이 사각형의 얇은 떡처럼 나온다. 1 식단의 경우 밥이 가장 맛있는데, 쇠고기 볶음밥은 고기의 질감은 퍼석퍼석하지만 소고기 향이 어느 정도 남아있어서 거부감이 적다. 특히 붉은 젤리처럼 꾸덕하게 나오는 볶음고추장과 함께 먹으면 그 맛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조미밥의 경우 꺼냈을 때, 흰밥과 같은 무언가가 반들반들하게 빛난다. 맛은 약간 짠 편이었는데, 그 덕분에 다른 반찬들과도 잘 어울렸다. 김치의 경우 씹었을 때 물컹거리기는 하지만 확실히 김치맛이 나고, 양념꽁치는 약간의 비린내와 팩 안에서 오래 있었던 탓에 살짝 발효된 냄새가 났지만 먹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1형 전투식량 2 식단]
- 김치볶음밥, 흰밥, 고기완자, 양념두부, 멸치조림
2 식단의 경우는 가장 무난하고 맛있는 식단이라고 생각된다. 김치볶음밥과 흰밥은 약간 질긴 하지만 생각한 그대로의 맛이 나고, 멸치조림 또한 학교 급식에서 먹었던 것과 비슷한 짭조름함과 식감을 가지고 있다. 양념두부의 경우 씹었을 때, 약간 유부처럼 '푸석-'거리는 느낌이 있는데, 맛은 그냥 무난 무난했다. 그리고 가장 기대가 된 고기완자 반찬의 경우, 개수가 많이 있지는 않았지만 완자형태가 그대로 유지되어 있어서 씹는 맛도 좋고, 겉 부분이 소스에 절여져 있어 깊은 맛이 났다.
[1형 전투식량 3 식단]
- 햄볶음밥, 팥밥, 김치, 양념소시지, 콩조림.
3 식단은 극강의 밸런스를 가진 식단이라고 생각된다. 햄볶음밥은 단일로 먹었을 때 모든 밥 중에 가장 맛있었지만, 팥밥은 반대로 밥들 중에서 가장 맛이 없었다. 김치는 앞서 설명한 1형과 동일하고, 콩조림은 그릇에 부었을 때 검은 물과 함께 콩들이 주르륵 나왔는데, 비주얼 때문인지 씹는 내내 고민을 조금 하게 된다. 양념 소시지의 경우 맛은 있지만, 탱글한 식감보다는 오래된 분홍 소시지를 먹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입안에서 오래 머물렀다.
평가를 하자면, 개인적으로 매일 먹어도 괜찮겠다 싶은 식단은 2 식단이었고, 모든 식단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뒤, 함께 섞어서 볶아 먹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형 전투식량은 뜨거운 물에 불려먹는 동결건조식 형태로, 이것은 내가 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철야 훈련을 할 때 먹어보았다.
2형 전투식량은 따로 반찬이 없이 하나의 팩 안에 모든 식사가 들어가 있다. 그래서 매우 간편하면서도 단조로운 식량에 속한다. 전투식량의 크기는 시리얼 봉지와 얼추 유사하며, 그 비닐 안에는 '사락사락' 소리를 내는 건조된 밥들이 4분의 1 지점까지 들어있다. 이후 수프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그 안에 있는 밥들이 미친 듯이 팽창하기 시작하는데, 닫아두었던 지퍼를 10여분 뒤에 열면 거의 입구까지 차올라 있는 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에 먹었던 맛은 카레밥맛과 짜장밥 맛이었는데, 둘 다 취식 직전에 지퍼를 열면 배가 꼬르륵 소리를 낼 정도로 맛있는 냄새가 퍼져 나왔다. (내가 카레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다.) 맛은 식단에 적힌 그대로의 맛을 내며, 약간 물에 만 밥에 카레(짜장)를 뿌려먹는 맛이 났다.
다만 2형 전투식단은 밥을 먹다 보면 '밥이 왜... 안 줄어들지?" 하며 어느 순간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데, 실제로 완성된 밥의 양은 거의 성인 3명이 먹을 수 있는 것만큼 많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장병들이 열심히 밥을 떠먹다가 지쳐서 절반 이상의 밥을 남기는 경우가 많았다.
평가를 하자면, 가성비가 가장 좋은 전투식량이지만 뜨거운 물을 얻기 힘든 야전에서는 먹는 방법을 다양하게 고려해봐야 하는 식사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최신의 전투식량이자 즉각 취식형 식량이라 불리는, 3형 전투식량은 위에 나열된 두 가지의 전투식량과 비교하면 거의 파인다이닝급의 식사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이 전투식량을 사단급에 파견되었을 때 딱 한 번 먹어보았는데, 그 맛이 상당히 좋았었다.
[3형 전투식량 2 식단]
- 햄볶음밥, 아몬드케이크, 볶음김치, 양념소시지, 쇠고기콩가미, 초코볼 + (발열팩, 스푼, 종이도시락)
3형 전투식량은 큰 지퍼팩 안에, 주식과 부식, 발열팩, 그릇, 숟가락 등이 들어가 있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취식을 위해서는 발열팩 아래쪽, 별도의 공간에 주식을 끼워 넣고, 초코볼을 제외한 나머지 메뉴들을 지퍼백 안에 담아야 한다. 이후 발열팩의 손잡이를 당기면 열이 나는데, 그 상태로 지퍼백의 입구를 닫아놓으면 빵빵하게 부풀어올라 약 10분 정도 뒤, 취식준비가 완료된다.
3형 전투식량의 맛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무척이나 훌륭했다. 물론 식당에서 파는 온전한 밥과 반찬에 비유할 바는 못되지만, 간단한 준비만으로 이 정도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건 혁신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각의 메뉴들은 보통 종이 그릇에 한 번에 담아 먹는 경우가 많은데, 밥과 소시지는 1형과 비교해서 그 맛과 질감이 매우 업그레이드되어 있으며, 가장 사치스러운 맛을 내는 아몬드케이크는 그대로 먹어도 나쁘지 않지만, 우유와 함께 먹었을 때 그 맛이 배가 되었다. (보존을 위해 만들어진 빵이다 보니 약간의 퍽퍽함이 있다.)
기타 다른 메뉴들도 매일 먹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이 훌륭했고, 초코볼은 한 개씩 입에 넣을 때마다 행복을 충전해 준다.
글을 마무리하며, 전역을 하고 몇 년 뒤, 나는 이상하게 전투식량의 맛이 그리워져서 각 형태의 전투식량을 모두 사 먹어본 적이 있는데, 아쉽게도 실제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 이상한 말일테지만, 포장도 너무 예쁘게 되어있고, 무엇보다 사제 전투식량이 군대 전투식량보다 너무 맛있어서 추억을 갈무리하기에는 조금 아쉬움이 있었다. 따라서 훗날 기회가 된다면 각각의 전투 식량을 조리예 그대로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