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캠핑

candidate

by 그리다

캠핑의 매력은 다양하다. 자연을 개척할 때 느끼는 성취감. 자연 속에 들어와서 만끽하는 행복. 도심을 떠나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여유까지. 하지만 그런 매력은 스스로에게 의지가 있고 자율성이 주어졌을 때만 느낄 수 있다. 내 인생에서의 첫 캠핑. 그것은 정말 끔찍하고 특별했다.


아침이면 창가에 두꺼운 서리가 맺힐 정도로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날. 나와 동기들은 어김없이 기상나팔 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시작했다. 여느 날처럼 전투복과 전투화를 신고 있는데, 갑자기 생활관 스피커로 "아, 아 오늘 훈련 복장은 완전군장입니다."라는 지시가 나왔다. 나는 오늘 행군 연습이라도 하는가 싶은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40kg에 가까운 군장을 어깨에 메고 막사를 나섰다.


흙바닥을 뛰고 구르는, 어찌 보면 평범한 훈련들. 서쪽 산등성이를 바라보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기에, 나는 이제 곧 학군교로 돌아가서 저녁을 먹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하늘이 점점 보랏빛을 뛰어가고 있는데도 교관님은 복귀를 하려고 하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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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전원 가져온 군장에서 A 텐트를 꺼낸다. 실시!



"잘 못 들었습니다?"


나와 동기들은 순간 잘못 들었나 하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교관님은 다시 한번 큰 소리로 A 텐트를 꺼내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는 각자 서로 간의 거리를 충분히 벌리고 가져온 텐트를 설치하라고 하셨다.


군장 안에서 가장 묵직하고 무거웠던 A 텐트. 군장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손을 뻗자, 거기서는 내 팔뚝만 한 길이의 두꺼운 쇠 지지대가 4개, 딱 봐도 바닥에 고정을 시켜야 할 것 같은 쇠고리 네 개, 그리고 내 몸보다 살짝 큰 국방색의 두툼한 천이 딸려 나왔다.


우선 텐트 지지대를 박기 위해, 야전삽(망치, 곡괭이, 톱 등 다양한 역할을 하는, 작은 군용 삽)을 꺼내었지만 땅이 얼어서 그런지 지지대는 조금도 땅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옆에서 들리는 '깡-깡-'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동기들도 나와 똑같이 지지대를 고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세우면 무너지고, 잡으면 쓰러지는 것을 반복하던 나의 텐트는 결국 요리책의 조리 예처럼 그럴듯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TV에서 보던 일반 텐트는 분명 내부에서 앉을 수 있을 만큼 천장이 높고, 좌우 폭도 적당히 넓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군용 텐트는 정말 좁았다.


입구는 기어서 들어가야 할 정도로 높이가 낮았고, 안에 누우면 좌우로 뒤척일 수 없을 만큼 폭도 좁았다. 사람 한 명이 들어가면 내부가 꽉 차게 되는 이것은, 말 그대로 소형 덮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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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설치가 완료됐으면, 배수로까지 파낸다. 실시!



나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교관님은 텐트 주변으로 배수로를 파라는 지시를 하셨다. 겨울에 무슨 비가 내리겠냐마는 나는 하는 수없이 다시 야전삽을 들어 둥글게 배수로를 팠다. 땅이 워낙 얼어있다 보니, 땅을 내려칠 때의 반발력으로 손이 야전삽에 찧기도 했는데, 그때의 통증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훈련장으로 배달된 저녁식사를 해치우고 주변을 내려다보니, 수십 명의 사람들이 텐트를 친 풍경은 꽤 경이로웠다. 나와 동기들은 그 풍경을 보며 우스갯소리로 "전쟁 나면 안 되겠다."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는 잠시 휴식시간을 보낸 후 침낭으로 들어갔다. 고된 일과를 보내서 그런지 한 뼘 앞에 있는 낮은 텐트 천장이 오히려 아늑하게 느껴졌다.


기상나팔소리가 들려서 번뜩 눈을 떠보니 코에서 무언가 서걱서걱 소리가 들렸다. 손을 가져다 대어 얼굴을 한번 훑으니, 코와 눈썹에 서린 하얀 서리들이 후드득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으나, 몸은 따뜻하다는 것을 느끼며, 새삼 군용 침낭의 위용을 깨달을 수 있었다.


텐트에서 나와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던 우리의 모습은 마치 번데기를 막 뚫고 나오고 있는 나비와 같았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씨익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바로 알 것 같았다.


이후 우리는 어제처럼 배달된 아침식사를 먹으며, 오전 일과를 시작했다. 얼음이 얼 정도로 추운 야외에서 자고 일어났기에, 나는 우리의 건강을 생각해서 조금의 아량을 베풀 줄 알았다. 하지만 교관님은 얄짤이 없었다. 나는 애써 만든 텐트를 정리하면서, 다시금 군장을 어깨에 멨다. 그러고는 행군을 하듯 쭉 이어선 대열 속에서 나지막이 외쳤다.



이게 캠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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