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관이 유일하게 친절했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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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훈련 때마다 호랑이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교관님들. 하지만 그런 교관님들도 딱 한 순간,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온화하고 친절했던 순간이 있다. 그때는 바로 '수류탄 투척 실습'을 하게 되었을 때다.


실제 수류탄을 투척하기 2주 전부터 나와 동기들은 수류탄에 익숙해지기 위한 훈련을 했다. 처음에는 이론으로 수류탄을 배우고, 그다음으로는 멍텅구리 수류탄이라고 하여 고무로 된 수류탄 모형을 손에 들고, 들판에 서서 한 시간 내내 던졌다.


이후 일주일 정도가 남은 시점에서는 시가전(도심에서 하는 전투) 훈련과 분대전투가 있어서 인지 푸른색 연습용 수류탄을 지급받아서 연습을 했다. (연습용 수류탄은 무게와 작동 원리가 실제 수류탄과 비슷하다.)


투척 자세를 잡고, '안전 클립제거', '안전핀 제거', '수류탄 투척' 세 가지 순서로 수류탄을 던지게 되는데, 무언가 행동을 할 때마다 옆에서는 교관님의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던질 때 자세가 그게 맞냐 인마!"

"안전클립을 제거할 때부터 양손으로 꽉 잡고 하란 말이야!"

"'안전핀 제거'라고 하루 종일 알려줬는데, '안전핀 뽑고'라고 외치는 새끼는 누구야?"

"지금 무슨 야구공 던지냐!? 어? 그 따위로 하면 수류탄이 코 앞에 떨어지는데 네 동기 다 죽일 거야!?"


나는 그런 교관님들의 매서운 호령 때문인지 기계적으로 수류탄 던지는 방법을 체득했다. 그리고는 직접 던져보면서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이빨로 안전핀을 뽑는다던가 멋들어진 포즈로 수류탄을 던지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익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다가온 수류탄 투척 훈련날. 아침부터 생활관 복도에는 적막이 흘렀다. 군화의 터벅터벅 소리가 몇 번 들린 이후에 내가 있던 생활관에도 조교가 들어왔는데, 그 손에는 빈칸이 프린트된 종이 뭉치가 들려있었다. 이유인즉슨 당일 있을 수류탄 훈련에 참가할 것인지 여부를 묻고자 한다는 것인데, 수전증이나 다한증과 같은 병이 있는 후보생, 그리고 심리적으로 수류탄을 던지는 것이 두려운 후보생은 자유롭게 훈련에서 제외해 준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는 머리가 쭈뼛쭈뼛 섰다. 그동안은 교관님들이 무서울 뿐, 수류탄이 무섭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이제야 무언가 위험한 훈련을 하러 간다는 생각에 실감이 났다. 물론 나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라는 생각에 당연히 훈련에 참가했고, 참가하지 않는 동기들을 등 뒤에 남겨둔 채 뚜벅뚜벅 훈련장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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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하지 말고, 연습한 대로 하면 돼."



훈련장으로 이동하자 콘크리트로 된 투척호와 흙을 높게 쌓은 둔덕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는 한눈에 봐도 깊어 보이는 저수지가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다시금 동기들과 함께 안전수칙을 큰소리로 외친 후, 투척호로 들어갔다.


임금님의 칙서를 들고 오듯, 둥근 목재함을 조심스럽게 들고 오는 조교. 그리고 그 옆으로 나란히,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오는 교관님. 나는 새삼 '이 사람이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어?'라며 놀랐지만, 곧장 둥근 목재함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자, 수류탄 인계받은 후에 천천히 절차대로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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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긋나긋한 교관님의 말이 끝나자 조교는 뚜껑을 열어 톱밥 안에 쌓인 녹색 수류탄을 꺼냈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들어 내 손으로 옮겨 주었다.


드디어 손에 쥐어본 실제 수류탄. 크기는 연습용 수류탄과 엇비슷했지만 무게는 생각보다 묵직한 느낌이었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긴장되고 적막한 분위기 때문인지 나도 무언가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지만, 침착하게 심호흡을 했다.


'스읍! 후~'


나는 연습한 대로 천천히 안전핀을 뽑고 저수지를 향해 힘차게 수류탄을 던졌다. 수류탄은 내 손을 떠난 직후 실제 전쟁 영화에서처럼 안전손잡이가 분리되며 '챙그랑-'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즉시 고개를 숙여 투척호 안으로 몸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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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 2초, 3초, 4초...'




마음속으로 4초 정도를 세자 쾅! 하는 소음이 났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물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고, 엄청난 진동이 느껴졌다. 수류탄의 진동은 얼마나 컸던지, 내 두발이 잠시 동안 공중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잘했다."


웅크리고 있던 내 어깨를 툭툭 치며 교관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감사합니다!"라며 큰소리로 대답을 했다. 이후 교관님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신 후에 다음 후보생을 향해서 걸어가셨다. 나는 잘 끝났다는 안도감에 젖어 다리에 힘이 풀렸고, 손끝에는 아직 생생하게 수류탄의 진동이 남아있는 듯했다.


한 시간 뒤, 나와 동기들은 모두 무사히 수류탄 투척 훈련을 수료할 수 있었다. 생활관에 돌아가서는 다들 무용담처럼 수류탄을 던질 때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밤이 새도록 복도에는 당시에 유행하던 FPS게임의 대사가 울려 퍼졌다.



Fire in the 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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