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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군단에서의 체력단련은 날마다 먹는 세끼의 식사처럼, 매일매일 수행해야 하는 당연한 일과 중의 하나였다. 나와 동기들은 매일 스산한 새벽에 집을 벗어나 7시까지 학교로 집합을 했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상관없이 대학교 캠퍼스를 지칠 때까지 내달렸다.
처음 입단을 했을 때는 모두가 비슷해 보였던 체력. 하지만 점차 학군단 생활에 적응을 해나가면서 사람은 각기 다른 장점을 타고난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우리는 팔 굽혀 펴기와 윗몸일으키기, 3km 달리기를 매일 같이 연습했는데, 동기들마다 타고난 체격에 따라서 각기 잘하는 종목이 점차 뚜렷하게 나눠졌다.
나는 하체가 튼튼하여 윗몸일으키기는 곧잘 했지만 팔 굽혀 펴기와 3km 달리기가 약세였다. 하지만 그 종목이 약하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아량을 베풀어주는 학군단 아니었기에, 나는 끊임없이 이것들을 잘하도록 노력해야만 했다.
동기들 중에 가장 잘 뛰는 (훗날 3km를 밥 먹듯이 10분대로 돌파하곤 하는, AKA '적토마') 동기에게 달리기를 잘하는 방법을 물어봤지만 그 노하우를 나에게 적용시키기란 역부족이었고, 나날이 개선되지 않는 달리기 실력에 나는 조금씩 지쳐갔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체력을 증진한다는 이유로 훈육관님께서 평소에 뛰던 3km 코스를 5km로 바꾼다고 하신 것이었다. 의견을 내어볼 새도 없이 갑자기 늘어나게 된 고통의 시간. 나와 동기들은 그날부터 매일 아침 5km를 달리기 시작했는데, 3km도 벅찼었던 나는 늘어난 5km 달리기가 정말 지옥처럼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힘든 내색을 하면 "왜 대열에서 뒤처지냐?"라는 선배님들의 호통이 들려왔고 그것이 무서워서 끝내 참고 완주를 하고 나면 머리가 핑돌고 속이 메스꺼워, 매일 같이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구토를 하는 것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끔찍한 달리기가 몇 달간 계속되자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두려워졌다. 뛴다는 행위가 정말 신물 나도록 싫다는 마음이 생겨서 그런지 '더 이상 뛰고 싶지 않다.'는 불평과 '뛰지 않으면 장교가 될 수 없다.'라는 사명감 사이에서 매일 줄다리기를 반복하곤 했다. 그리고 모든 체력단련이 끝나면 언제나처럼 '오늘도 살아남았다.'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생활관 평상에 널브러지기 일쑤였다.
시간이 흘러 하계 훈련 일정이 코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 근엄한 표정을 짓고 계시던 훈육관님이 하계 훈련을 대비해서 3km 체력측정을 당일날 할 것이라고 예고를 하셨다. 나는 여전히 달리기가 싫었지만 그래도 매일 하던 5km 달리기가 아니라 그보다 적은 3km만 달리면 된다는 사실에 나름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3km 코스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힘차게 첫발을 내디뎠다.
어라? 왜 안 힘들지?
1km 정도를 달리자 서서히 가빠지는 호흡. 그러나 이상하게 몸에서는 오히려 힘이 솟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5km 달리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동안 갈고닦은 마음이 내 몸을 가뿐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5km를 달릴 때에 1km 지점부터 지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얼마 못 가서 몸이 퍼지곤 했다. 그래서 나는 2km를 넘어갈 때까지 '아직 힘들다 느껴서는 안 돼.'라며 스스로를 다그치곤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마음가짐을 3km 달리기에 적용하니, 막상 걱정되던 달리기가 너무나도 쉽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어느새 끝나버린 3km 달리기. 결승선을 통과한 이후였음에도 나의 마음은 무언가 구름 위를 걷듯 가벼웠다. 아직 충분히 더 뛸 수 있을 만큼 체력은 거뜬했고, 호흡은 이내 돌아와서 나를 미소 짓게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3km 체력 측정 기록은 과거보다 훨씬 나아지게 되었다.
임시 체력측정이 끝난 이후 동기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리고 생활관으로 올라가면서 서로의 기록을 자축했다. 나 또한 그들처럼 변화된 내 모습을 신기해했다. 그리고 동시에 번뜩,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3km 달리기가 쉬워지려면, 5km를 달리면 되는구나.
어찌 보면 앞으로 내가 맞닥뜨릴 인생의 어려움도 이렇게 극복하면 되겠구나.
그날 이후 나는 3km 달리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무언가 힘들다고 느끼는 일이 있을 때마다 똑같은 일을 더 열심히 하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라는 사람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노력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