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라는 거짓말을 멈춰

by HONG


#취미인 줄 알았던 것들


먼지가 켜켜이 쌓인 방구석에서 또 다른 박스를 꺼내본다. 이건 또 무엇일까? 장난감일까, 책일까, 블루레이일까, 옷일까? 어떤 것이 들어있을지, 무엇을 사놓고 또 처박아 둔 건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무엇이 되었든 필시 내가 그동안 ‘취미’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위장하여 구입했던 물건들일 것이다.


#상처를 덮으려 했던 물건들


집에 쌓여있는 이 물건들 하나하나가 현재도 치료 중인 강박과 집착, 트라우마, 우울증을 그 당시에는 조금이나마 방어해 주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약간은 위로가 된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내 앞에 놓여있는 물건들이 하나하나 그때의 부정적 감정들의 크기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하면, 나 스스로에 대한 안타까움도 커진다.


돌이켜보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충동이었다. 그 당시에는 마치 세계를 지키기 위한 용사의 무기처럼, 거부할 수 없는 필수품처럼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질없는 위로였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것들은 분명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내 감정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어버렸다.


#택배가 가져다준 순간의 착각


새 카메라 렌즈를 뜯어보는 순간만큼은 내가 사진작가가 된 기분이었다. 읽지도 않을 책을 주문하면서는 지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언젠가는 입겠다며 산 옷들 앞에서는 새로운 나를 상상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면 그냥 공간만 차지하는 물건이 될 뿐이었다. 렌즈는 서랍 속으로, 책은 먼지만 쌓이고, 옷은 옷장 깊숙이 밀려났다.


구매 버튼을 누르는 그 순간의 확신이 우스워진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이것만 있으면 무언가 달라질 거라고 믿었던 나 자신이.


#소셜미디어 속 완벽한 삶의 환상


소셜미디어에서 보는 사람들의 집은 정말 멋있어 보였다. 책과 소품들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공간, 하나하나가 다 스토리가 있어 보이는 그런 곳들 말이다.


나도 그런 삶을 산다고 착각했다. 아니, 착각하고 싶었다.


실제로는 정리할 엄두도 나지 않는 물건들의 무덤이었는데. 큐레이션은 개뿔, 그냥 축적이었다. 의미 있는 컬렉션 같은 건 없고 그냥 쌓아둔 것들의 덩어리였을 뿐이다.


#집 밖이 무서워진 이유


결국 이 집에서 나가는 것이 무서워졌다. 밖에 나가면 또 무언가를 살 것 같고, 사지 않으면 허전할 것 같아서.


집 안은 물건으로 꽉 찼는데 정작 나는 더 외로워졌다. 물건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채로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친구들이 놀러 오겠다고 하면 어떻게든 핑계를 댔다. 이 꼴을 보이기 부끄러워서.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던 현실


그렇게 모은 것들이 상처를 아물게 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만 덧났다.


물건을 사는 것으로 보상받고자 했던 마음속 빈 공간은 여전히 텅 비어있고, 대신 집만 가득 찼다.


이제 안다. 그런 것으로는 절대 메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깨달음이 제일 아프다.


물건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후회뿐이다. 그때 그 돈으로 여행을 갔으면, 사람들을 만났으면, 아니면 그냥 통장에 차곡차곡 모아두었으면.


#그래도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


더 서글픈 것은 그때의 나와 지금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가 전혀 다르지만 똑같이 외롭고 아프다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물건으로 감정을 메우려 했던 그 허상을.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변화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오늘 하나씩 정리해보려 한다.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고, 정말 의미 있는 것들만 남겨두고. 물건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나를 채울 수 있는 길을 찾아보려 한다.


취미라는 거짓말은 이제 그만두고, 진짜 나와 마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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