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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성휘 Apr 01. 2024

매년 만우절에 진심을 고백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괜찮다는 거짓말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나와의 다짐

거짓말을 해도 용납(적당한 선까지는)할 수 있는 만우절이 왔다. 그날을 핑계 삼아 좋아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내서 고백하던 수줍음 많은 소녀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오늘 만우절이야!’라고 누군가 말해주어야만 그날임을 아는 어른이 되었다. 이따금 조카가 속이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할 때면 어릴 적 남들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을 시작했던 그날이 떠오르곤 한다.     


나의 거짓말의 첫 시작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그때 당시 같이 다니던 그룹 내에서 은따(은근히 왕따)였다. 눈치를 밥 말아 먹었던 유년 시절, 아이들이 나를 싫어하는 줄도 몰랐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들과 함께 하교할 때였다. 매번 나를 앞장 세워 걷게 한 다음 그들끼리 친밀하게 팔짱을 낀 채 내 뒤통수를 보며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속닥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면 입을 꾹 다물고는 뜬금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내가 뒤를 3번 정도 돌아보며 그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그때 그룹에 리더인 A 양이 나를 불러 세웠다. ‘우리가 문방구를 가야 해서 그러는데 너 혼자 가도 괜찮지?’라는 질문에 어리둥절해하며 그들을 쳐다봤다.      


나를 떼어내고 싶어 안달이 난 그들의 표정, 다정한 척 말했지만 꺼지라는 뜻을 내포한 질문에 차마 ‘나도 같이 가고 싶어’라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거짓말을 해야 함을 깨달았다. 무슨 말을 해야 우습게 보이지 않을까. 찰나의 시간에 생각해 낸 단어는 바로 그 말이었다. ‘응 괜찮아. 내일 보자!’라고 거짓말을 하며 혼자 가도 개의치 않다는 듯 구김 없이 웃으며 그들에게 대답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한 태도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그들이었다.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한 뒤 집을 향해 뛰어갔다. 쏟아지는 눈물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일은 기필코 괜찮지 않다고 말하리라 다짐했지만, 그들이 따돌릴 때마다 괜찮다고 말했다. 담임선생님이 반에서 겉도는 것 같은데 괜찮은지 물었을 때도 해맑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고 선생님도 속았다. 나를 걱정하던 엄마도 언니한테도 괜찮다고 말했다. 고작 세글자로 모든 이들을 완벽하게 속였다. 그리고 나도 속기 시작했다. 괜찮다고 말하는 그 순간만큼은 정말 힘들고 서럽고 아픈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한 착각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나를 위한 말이면서도 그들을 완벽하게 속인 그 말이 마치 전지전능하고 완전무결함 그 자체로 느껴졌고 어느덧 괜찮다는 말을 앞세워 능숙하게 감정을 숨기는 프로 거짓말 꾼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어른이 되면 할말 못할말 다 하고 살 줄 알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거짓말을 기꺼이 해야 하는 순간들이 더 많았다.   

  

괜찮다고 말할 때마다 진심과 진실은 멀어졌다. 이런 나의 태도에 지쳐 떠난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거짓말로 뒤덮인 나와 직면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판을 지어야 했지만 만능이 된 괜찮다는 무기를 쥐고 있는 모습에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기 급급했다. 그런 나의 내면을 꿰뚫어 본 글쓰기 모임 멤버인 봄님의 한마디에 위로받으면서 동시에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칼을 들고 내가 나랑 결판을 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도망가지 말고 있는 힘껏 싸워보세요. 겨우 올라간 계단에서 내려갈 생각하지 말고.”     


이따금 나의 가면 뒤로 숨겨진 진심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있었다. 괜찮다는 거짓말 뒤에 상처투성이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나는 매우 끔찍하게 여겼다. 부끄러웠고 수치스러워했다. 나약하며 연약한 강하지 않은 나는 필요가 없는데 버릴 수는 없어서 숨기기 적당한 곳을 찾다가 이곳에 내가 나를 가둔 것을 들킨 것 같아 무서웠다.      


그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짓말을 이용해 진실을 덮기 위해 안간힘을 쓸 뿐이었다. 나의 삶에 나라는 존재를 있는 힘껏 부정하고 또 다시 상처받은 나를 바라볼 때면 미칠듯한 허기가 온몸을 덮쳤다. 그게 공허함이라는 것을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어떤 아픔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쓰면서 거짓된 나와 싸워보려는 의지를 다지고 계신 거잖아요.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응원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들은 그날만큼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다. 그리고 용기가 났다. 내가 나와 싸울 용기가. 거짓말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는 모습을 누군가가 알아주고 응원하겠다는 그 말만으로도 세상이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모든 이들이 거짓말을 하기 바쁜 만우절, 나는 유일하게 진심을 말하는 사람이 되어보기로 했다. 오늘은 괜찮지 않게 살아도 된다는 위로의 말을 가슴에 품고.     


괜찮다는 거짓말로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했던 세월이 너무 후회된다고.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고. 고군분투하며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을 했던 그 시간이 힘들었고 괴로웠다고. 거짓말을 할수록 내가 텅 비어가고 있었다고. 언제나 타인의 시선에 휘둘렸고 그들의 세상이 소속되고 싶어서 나보다는 다른 이들의 감정을 면밀히 살피고 살아온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고.     


내년 만우절에 거짓말 말고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기를.

힘들다고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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