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써보는 글

성공한 고흐

by 영점오

아이들을 재워놓고 그냥 잠들기 아쉬워 이런저런 글을 뒤적이다가 갑자기 글을 또 쓰고 싶어져서 몸을 일으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막상 하얀 화면을 보니 머릿속이 아득하여 커피라도 마실까 했는데 또 좀 전에 자려고 양치를 했던 것이 생각나 그냥 안 써지면 잠이나 자야겠다고 마음 먹다가 또 막상 자려고 하니 뭔가 아쉬워서 다시 자판 위에 손을 올려 본다.


무언가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정작 쓸 내용은 없다면 그것은 쓰고 싶다는 감정이 가짜일까 아니면 쓸 내용이 떠오르길 기다리라는 신호일까? 무엇이 진실인지는 몰라도 '글이 안 써지는데 원두도 떨어졌을 때'의 상황보다 더 심각한 상황-커피를 마실 수 있지만 마시지 않는-에서 억지로 글을 써보는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이러한 실험이 성공한다면 나중에 글쓰기 관련 노하우랍시고 '극한 상황에서 억지로 글을 쓰는 7가지 유익'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글에는 분명 무언가 있어서 읽고 나면 독자로 하여금 마음이 움직이게 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공감하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을 상상할 수 있도록 잘 인도해야 하는데 그러기에 나의 글은 좀 더 가볍거나 아니면 조금 더 무겁거나 그도 아니면 그냥 조금 이상해서 도무지 균형을 찾기가 힘들다. 한쪽으로 기울어도 그것이 나라면야 인정하고 만족하면 그만 일텐데 무슨 욕심이 나서 또 대중성을 원하고 있는지 참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배고픈 고흐가 되기보다 배부른 피카소가 되고 싶은데 사실 나는 피카소보다는 고흐의 작품이 좋다.

아! 어째서 신은 나를 속물적 예술형 인간으로 만들어 이토록 괴롭게 하는가!


얼마 전에 '하우스 오브 구찌'라는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 중간에 파올로와 작은 아버지의 대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파올로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무능력하다고 무시를 당하지만 자기 스스로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아버지에게 찾아가 자신의 스케치를 보여주며 좋은 평가를 기대하는데 정작 작은 아버지는 평범함의 극치를 보았다며 천재는 스스로의 재능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지만 삼류는 자신의 것을 인정받기 위해서 떠벌리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조카에게 던진다. 순간 그 삼류가 나일까 싶어 생각에 잠겼다. 세상이 인정하는 작품의 기준이 권위 있는 전문가의 평가와 대중적인 평가에서 모두 충족이 되는 것이라면 분명 지금의 나는 삼류이다.


억지로 글을 쓰다 삼류라는 현실을 자각하고나니 커피가 아니라 소주라도 마셔야 할 기분이지만 성숙한 어른이란 무엇이든 책임지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라 배웠다.


고흐가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의 초창기에는 상당 부분 자신의 그림에 대하여 긍정적이며 희망이 가득차 있었다. 갈수록 실력이 나아지고 있으니 동생이 보내주는 물감과 돈에 대하여 보답할 날이 올 것을 확신하며 형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세상은 철저히 고흐를 외면하였고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가능성과 확신을 누구보다 가졌던 본인이 스스로 흔들려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가 농부가 성실히 밭을 가는 순수한 노동에 비해서도 너무도 보잘것 없는 일처럼 여겨질 때가 있어 괴로워했다.


운명은 고흐가 성공하는 것이 싫었던 것일까? 아니면 화가로서의 진정한 성공-영혼이 그림에 새겨지는-을 위하여 고통이란 재료를 부여한 것일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천재성을 부여받고 가난하게 살다가 죽는 삶과 세상에서 성공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아무도 없는 삶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나는 성공한 고흐가 되고 싶다.


솔직히 말해보자, 그대도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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