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정리

머릿속의 생각 끄집어 내기

by 강주미

1.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마치 욕구처럼 다가왔다. 글을 써야겠다. 지금 당장 새 파일을 열고 백지위에 내 생각과 감정을 마구 쏟아내고 싶어졌다. 몇 문장은 머릿속에서 이미 쓰고 있었다. 그리고 노트북을 열고, 새하얀 종이를 꺼내듯 빈 문서를 열었다. 그런데 왜 흰 바탕을 보고 손을 타자기 위치에 올려놓으면 방금 생각했던 문장들조차 어디론가 사라지는 걸까. 생각하기 위해서 머릿속을 뒤져봤지만, 없어졌다. 그래서 결국에는 아무거나 써내려가고 있다. 글을 쓰는 건 감정을 정리하는 것보다는 내 마음을 덜어내는 것이다. 감정도 생각도 넘쳐나기 시작하면 덜어내는 일을 꼭 해줘야한다. 때로는 상대방에게 털어놓으면서 덜어내기도 하고, 때로는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속에 집어 넣기도 한다. 때로는 음악에 던져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하늘 가까이, 바다 가까이 다가가 날려버리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못하면 감정은 쌓여서 다른 감정을 넣지 못하거나 결국 터져버린다. 또 생각은 쌓이게 되면 그 생각들이 지멋대로 마구마구 자라나서 다른 생각들을 헤치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이 다 비워지지는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덜어내서 여유 공간을 주면 마음이건 머리건 여유가 생긴다.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고, 너그러운 감정을 가지게 된다. 몸뚱이의 다이어트만 중요한게 아니라, 생각과 마음의 다이어트도 중요하다.


2.

병원에서 들었던 생각

빨리 시간이 가길 바랬다. 오늘이 없어지길 바랬다. 수술날이 없어지고, 내일이 와서 수술이 끝나있길 바랬다. 시간이 빨리 최대한 빨리 가길 간절히 바랬다. 그렇게 수술전날 병실에 누워서 시간을 초고속으로 돌려주길 바라고 있었다.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을 것이다. 순간 마음이 놀라서 잠에서 깼다. 차분한 목소리로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 “코드 블루, 코드 블루”.

내가 없어지길 바라는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너무 간절한 1초일 수 있다는 당연한 이야기가 아주 가까이서 느껴졌다. 같은 건물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는 이 시간이 지나가면 모든 게 없어졌을 수도 있는 일이다.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 심장이 멎어서 코드 블루가 떴다. 시간이라는 것은 언제나 소중하게 여겨줘야 한다는 당연한 깨달음을 다시 한번 깨우치고, 또 다시 생각이 흘렀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은 별로 마음에 안든다. 삶이라는 길을 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죽음의 길이 나오는 것은 정해진 길처럼 느껴진다. 삶에서는 죽음이 원 플러스 원 상품처럼 옆에 꼭 붙어 있다. 그런 상품이라면 모르고 삶을 선택할 일이 없겠지만, 우리는 알면서 선택된 삶을 살아간다. 삶이라는 상품이 너무 달콤해서 붙어 있던 죽음이라는 상품은 잊혀졌다. 죽음은 항상 옆에 아주 가까이 있다. 두렵거나 무서워하기보다는 후회하지 않는 오늘을 살아야한다. 내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죽음이 와도 후회하지 않도록.

사실 아주 후회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쉬운 정도는 남아 있다.

오로라를 보러 갈 걸.

아니다. 이것도 그렇게 아쉽지는 않다. 여행도 많이 했는데 뭐가 그렇게 후회가 남겠는가.

그래서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놓는다. 죽기전에 꼭 해야할 일이라기 보다는 아쉽지 않도록.


3.

떡볶이를 한창 먹을 때는 떡볶이가 매웠다. 한참후에 그러니까 떡볶이를 20년 이상 먹은 다음에 먹은 떡볶이는 달았다. 쏘주를 한창 마실 때는 쏘주가 썼다. 이것도 20년 마시고 나니, 쏘주는 달았다. 매운것도 쓴것도 시간이 흐르면 달아지나 보다. 무뎌지는게 아니라, 진짜로 변하는 것만 같다.

감정도 무뎌지는게 아니라, 변하는 것만 같다. 매울만큼 날 선 감정도, 쓸만큼 아픈 감정도 시간이 흐르면 변했으면 좋겠다. 무뎌져서 몽글해지는 게 아니라, 다른 감정으로 변했으면 좋겠다.


4.

산딸기를 따러 갔던 날이다. 넝쿨에 가시에 거미줄까지 방해를 하지만, 새빨간 딸기에 유혹을 당해 산딸기를 따고 있었다. 그곳에는 산딸기, 고사리, 쑥이 많아, 철지난 고사리를 빼고는 쑥도 땄다.

쑥, 냉이, 달래 이런 향이 나는 풀이 좋아졌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채소가 좋아지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자극적인 음식들이 더 이상 자극이 아닌 것이다. 자극적인 것들을 너무 많이 접한 나의 미각은 이제는 그런 자극적인 맛으로는 자극을 주지 못 하는 것이다. 오히려 풀향이 더 미각을 자극한다. 풀향에는 추억이 있기때문일까.


5.

모든 사람에게 착할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에게 좋을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을 필요는 없다.

한사람만 알아주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리고 또 한사람이 늘어가는 것.

모든 사람은 아니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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