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부샤부

모두가 만족한 날

by 무비

'에이, 하루 종일 비예보야. 뭐 하지?'


아이가 개교기념일이라 평일인데 학교에 안 갔다. 갑작스러운 비예보가 있기 전에는 아웃도어로 밖에서 무언가 하려고 아내는 휴가를 내고 나도 미팅을 미뤄 온전히 하루를 비웠다. 비는 고만고만한데 창문이 떨릴 정도로 바람이 거세다. 빗방울이 창문을 탁탁 때리고 방안도 습도가 높아 공기가 묵직하게 차분해지니 쉽게 움직이기 싫어진다.


일단 나가자. 어디던 나가서 뭐든 하자. 점심을 밖에서 먹기로 하고 검색을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 버스로 15분 거리에 야키니쿠, 일본정식, 게요리, 그리고 샤부샤부 전문점이 있었다. 실올까지 풀려가는 낡은 지갑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같은 값에 양껏 먹고 싶어서 뷔페 형식의 샤부샤부로 고고 했다.


우리 모두 처음 가는 곳이고 가격만으로도 큰 기대가 없다. 그냥 뭔가 마음 편한함만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정류장 바닥에 물이 고였다. 둘은 우산, 나는 재킷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찰랑한 보도를 피해 보폭이 달라졌다. 입구에서 번호표를 뽑자마자 43번 테이블로 가란다. 테이블에 있는 태블릿으로 인원과 주문을 마치고 나니 직원이 냄비를 가져오고 그 뒤로 고양이 생김새 로봇이 주문한 고기를 가져다준다. 다른 자리의 손님들처럼 젓가락으로 엷게 펴서 나온 고기를 한 점씩 넣는게 아닌 한국식으로 두 국물에 세 접시씩 나눠서 몽땅 집어넣었다.


주문 한 건 두 가지 국물. 다시마 국물과 매운 된장 국물이다. 다시마 국물은 전에도 먹어보아서 매운 된장 국물 모험에 대한 보험이다. 우리는 처음에는 고기만 먼저 넣고 나중에 야채와 두부 등 식재료를 삶아내고 고기를 10~20초 정도 익혀서 식초간장에 찍어 먹는 게 기본 룰이다. 아내와 아이는 식초간장인데 나는 가게에 놓인 여러 가지 양념과 파 다진 것까지 전부 넣어서 만들었다. 소스에 찍어 고기와 야채를 함께 먹는다. 처음엔 일본에 흔치 않은 냄비 음식이 특이해서 국물에 고기가 스친 것뿐 아니냐며 아내에게 딴지를 걸었었다.


얇게 저민 고기를 보글 끓어오르는 국물에 넣으면 금방 익어 옆에 접시에 덜어 놓았다. 셋의 젓가락이 움직이니 순식간에 고기는 없어져서 넣고 꺼내기 바쁘다. 뒷자리에서 '이게 맞나? 캬르르~' 한국어가 들린다. 아이가 슬쩍 보니 같은 학교 여고생들이다. 그 친구들도 개교기념일 모임으로 온 모양이다. 한국 사람이 꽤 보인다. 모두 같은 방식으로 고기를 한 번에 넣고 데워서 먹는다. 아이가 디저트 가지러 가서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지욱이를 만나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샤부샤부는 설거지하던 종업원이 손걸레를 치덕치덕 빨던 모습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치덕치덕으로 표현하는데 일본어는 チャブチャブ(챠브챠브)로 표현한다.


마지막 우동으로 입가심을 한다.


가게를 나와서 전자 양판점을 들리고 이세탕 백화점에 들러 작은 아버지께 드릴 작은 과자 선물을 사고 돌아오는 버스 정류장에서 아이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돌아가는 같은 반 친구 다섯을 또 만났다.


우산을 접으며 올라탄 돌아오는 버스 안으로 스포트라이트처럼 밝은 햇살이 낮게 들어왔다. 사각으로 정해진 공간이 순간 밝아졌다. 15분 만에 비가 개이면서 빗살의 낱개가 사선으로 흩날리는 게 차창 밖으로 지나간다. 하루가 밝아진다.

다음 정거장에 내리는 정지 버튼을 누르려고 팔을 뻗던 아이가 소리쳤다.


'어, 무지개다!'


차 안이 갑자기 소란해졌다. 모두 시선이 밝은 쪽 창밖으로 향했다. 누군가 사진을 찍는 소리가 들리자 모두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아이는 오늘 가장 재미있었던 게 샤부샤부에서 친구랑 솜사탕 만들기와 양판점에서 무료 게임을 한 것, 백화점에서 판매 점원이 재미있게 말을 했던 것이라 했다.

아내는 샤부샤부 가게가 깔끔했고 쿠폰을 사용해서 500엔 저렴하게 먹었다고 나한테 자랑했다.


나는 양껏 먹고 아내와 아이와 함께 쌍 무지개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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