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카레라이스

딱밤을 부르는 식탐

by 무비

'어떻게 나눠서 먹어야 해?'


카레라이스 줄 때면 항상 루를 좀 더 넣어줘도 매번 밥이 절반이상 남는 아이가 식탁 끝에서 숟가락을 세우고 물어왔다. 이걸, 이렇게, 중간에서 서로 만나서 섞어야지 밥 따로 카레 따로 먹으면 카레만 더 빨리 없어지지 않을까? 몇 번을 말해도 아이는 늘 같은 접시를 만든다.

실험실 페트리 접시처럼 밥은 하얗게 남고 노란 카레는 먼저 증발한다. 내 의도는 가볍게 패스하고 눈으로 카레와 접시에 남은 밥을 번갈아 보며 무언으로 루를 재촉한다. 입 주변에 묻은 카레 자욱이 확신범 같아서 딱밤을 쥐어박고 싶다.


한참 일본식 퓨전 카레라이스 맛에 빠진 적이 있다.

와세다 역 근처에 '야미츠키(맛집) 카레'라고 불리는 가게가 있었는데 일본에서는 파쿠치라 불리고, 한국에서는 고수라 불리는 야채 잎을 올려서 준다. 화상 회의에 혼자만 점심이 늦어진 날 가까운 곳, 빠르게 라는 생각으로 가게에 들어섰다.


카운터 테이블에 앉아서 메뉴를 정하자 '파쿠치(고수) 넣을까요?'라고 카운터 넘어 주방에서 물어왔다.


이어폰 끼고 아이폰에 시선을 떼지 못해서 잘 못 알아 들었다. 살짝 고개 들어 질문을 확인했지만 이미 주방 뒤편 화덕으로 몸이 돌아가 있다. 주방에서 보던 안 보던 고개를 끄덕여서 의사를 표현한 거 같다.

잠시 후 둥근 타원형의 흰 그릇에 김이 모락 한 노란 카레가 동그란 밥 접시와 함께 나왔다. 가운데 살짝 보이는 토마토가 둘로 나눠진 걸 합치면 온전히 한 개다. 그 주위로 시금치와 약간의 닭고기가 숟가락에 걸린다. 소복한 밥접시에 조심스레 두 수저 옮겨 담았다.


처음 한입 입에 넣고 나니 생각보다 맛있다. 그런데 중간부터 분명 내가 모르는 맛이 난다. 그리고 그 맛은 불길하다. 내가 알고 있는 미각에서 이 맛과 가장 가까운 맛은 살짝 상한 것을 먹었을 때와 같다고 혓바닥 센서가 경고를 보냈다.

종업원을 불러 주방에 되돌리는 실랑이를 통해 상한 것이 아닌 것과 고수 첫 경험인 것을 커밍 아웃하는 순간이었다. 고스란히 돌아온 카레에서 고수를 골라내며 먹다 보니 적어 보이던 카레 루가 신기하게도 밥과 똑같이 종료되었다.


카레에 통 토마토라니, 그리고 고수라니.

고수 카레 맛에 중독되어 일주일은 매일, 그 뒤로도 주에 한 번은 꼭 들렀다. 매번 루의 양이 적당했다.

단체 식당에서 배식이 중요하 듯 특히 카레는 밥과 루의 배분을 잘해야 한다. 루가 많이 남으면 밥이 조금 아쉽고, 밥이 더 남으면 뭔가 손해 본 느낌이 든다.


일본 카레는 메이지 시대 영국에서 건너온 양식요리에서 발전되었다고 하는데 요약하면, 인도에서 영국 갔다가 또 일본까지 온 거고 그게 한국까지 간 것이다. 같은 향신료가 나라를 건너며 환경에 맞춰 맛과 풍미가 바뀌었다. 인도 카레도 가끔 먹으러 가지만 간장 종지에 담겨 나온 듯한 카레는 양도 적어 남은 난을 군것질거리처럼 먹게 된다.


오뚜기에서 나온 카레 루에 큼직히 썰은 당근과 감자를 쑹쑹 넣고 큰 냄비에 끓여서 식당 배급하 듯 5남매가 나란히 서서 밥그릇을 양손으로 받쳤다. 둥글고 큰 국자로 한 스푼씩 밥그릇에 떠주실 때 '우와~' 하며 모두가 입과 눈을 동그랗고 크게 치켜떴다. 흘리지 않도록 조심 들고 밥상에 둘러앉으면 누구랄 것 없이 침을 참는다. 아버지의 숟가락이 움직이길 기다렸다. 다 먹어갈 무렵 덜렁 밥만 남은 내 그릇에 한 스푼 카레를 말없이 덜어주신 어머니가 웃고 계신다. 많이 먹어.


다른 사람 몫을 더 먹어 형제들에게 딱밤 맞을 걱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디서 온 건지는 관심이 없고 눈앞에 늘어난 카레만 쳐다본다. 맛있으니까.

내가 더 먹은 걸까, 애초부터 모자랐던 걸까?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적당량을 알고 있다.


퇴근길에 라인으로 오늘 저녁은 카레라고 했다. 어떤 카레일까 상상이 간다. 아내는 쑹쑹 썰은 감자와 양파, 돼지고기를 넣고 바몬드카레 루를 넣는다. 가장 먹기 편하고 만들기도 편한 한국집 카레처럼 모락모락 한 흰밥 위에 국자로 떠주는 되직한 카레다.


오늘도 아이는 먼저 밥을 절반 남길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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