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발을 돌아보게 하는 글
'패완얼'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데 나는 복장에 어울리는 깔끔한 신발이 완성이라고도 생각한다.
이태리 속담에 '신고 있는 신발이 그 사람의 인격을 표현한다'라고 하고, 일본 속담에도 '그 사람의 상태를 보려면 신발을 보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을 알기 전부터 나는 신발에 그 사람의 성격 습관 마음가짐이 들어있다고 생각해 왔다. 신발에는 그간의 고생과 시간이 들어있고 그건 눈앞의 표정처럼 쉽게 바꿔지지 않는다.
나에게 좋은 패션은 보기 편하고 정갈해 보이는 느낌이다. 완성을 얼굴로 하지 않고 신발로 하는 것은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는 마음이 보여서이고 잘 모르는 상대일수록 외모보다는 내면까지 보고 싶은 개인적인 습관일 수도 있다. 패션에 신경 쓰는 사람을 만나면 가끔 양말까지 확인해보고 싶어진다. 걸을 때마다 코발트블루 바지단 아래 미소 짓듯 살짝 보이는 밝은 핑크 양말에서 더 관심이 생긴다.
양말색까지는 못 맞춰도 복장에 맞춘 신발을 신으려고 노력한다. 비 오는 날에도 묵묵하게 하루를 버텨주고 어떤 패션에도 무던하게 보이는 그렇게 골라 살아남은 게 6켤레다.
우리 집 신발장은 아담하지만 세 식구가 보관하기에는 작은 사이즈는 아니다. 아래쪽으로 검은 엄근진 구두와 발랄한 흰색 운동화는 내 자리이고 그 바로 위칸부터 신기한 무게를 지탱하는 아내의 힐부터 로우퍼, 비소식만 기다리는 검정 장화까지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의 공간은 축구화가 빼곡히 들어가 있다. 스파이크가 있는 것 없는 것. 논스파이크의 실내용 실외용. 이 심플한 네 종류가 아이의 성장 속도에 맞춰 쾌속으로 늘어난다.
15센티대를 넘던 신발 사이즈가 네 달에 한 번 정도 교체를 했었다면 20센티를 넘어서부터는 늘어나는 크기에 더 가속이 붙었다. 10대 아이가 매일 성장을 하는 이상 당연한 것인데도 멀쩡한 축구화가 계속 늘어나니 처치에 곤란하다. 아직 멀쩡해만 보이는 작은 사이즈 신발들은 윤기도 상처도 다 추억이 남아있어 그걸 볼 때마다 '작다고 날 버릴 거야?'라고 힐끔 거리는 것 같다.
아이가 평일 레슨까지 포함하면 축구화는 매일 사용하기 때문에 보통 신는 신발보다 사용 빈도가 높다.
맞는 사이즈의 신들은 멀쩡한 데다 각자 역할도 있어 신발장을 열 때마다 '오늘, 나예요?' 라며 오렌지와 블루가 말똥말똥한 구두코로 앞 다투어 인사를 한다. 그때마다 신발장 문을 닫으며 작은 아이들을 어딘가로 보내주고 싶어진다. 아마도 그 친구들의 다음 시합 출연은 다른 주인공과 함께겠지. 아이가 헤어질 결심만 하면 된다.
왼발잡이인 우리 아이는 오른발이 1센티 정도 항상 커서 작은 왼발에 맞춰서 사면 다른 쪽이 아프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축구신발은 0.5센티 별로 고만고만한 크기가 계속 늘어나고, 밸런스를 맞춰줄 백엔샵 깔창도 쌍둥이 짝을 잃은 채 한쪽씩 늘어난다.
그런 아이들 신을 보면 있는 그대로의 천진난만한 민낯이 눈에 들어온다. 구멍이 날 정도로 거칠게 신거나, 새 신을 신어도 며칠 지나면 닮는 부위가 항상 같거나, 풀린 끈이 춤을 추면서 끝만 더러워지거나, 막 뛰쳐나왔는데요?라고 말해주는 구겨진 뒷굽, 신고 벗음이 많을수록 생기는 뒷굽 천은 어디로 갔나요? 까지.
매주 보니 신발이 해진 곳이나 구겨진 상태에 따라 아이들의 성격도 차츰 보일 때가 있다.
좌우로 벌어지고 끈도 느슨하다. 지난주 흙이 그대로 말라있다. 코치가 불러도 못 들은 척, 다리에 걸려 넘어져도 금방 일어나 쑥스럽게 웃는다. 모여있는 신발 중에서도 바로 알아볼 수 있게 신발은 가장 험한데 가장 잘 웃는다. 천하태평 스타일은 신발도 머리 삐침도 자유분망이다.
완벽쟁이 스타일은 두 번 묶은 매듭이 원래 그런 신발 모델인양 시합 중에 주저앉아 끈 묶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양말을 한껏 당겨 무릎 위로 올라와 있어도 접착제를 붙였는지 내려가지 않는다. 도발을 해와도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 상대 앞에서 빠르고 꼼꼼한데 신발이 합체되어 뛰어다닌다.
신발코가 많이 닳아 그 부분만 디자인이 다른가 했지만 그라운드에서 신발을 직직 긁고 다니는 재미를 즐기는 스타일도 있다. 설렁설렁 걷는데 흙먼지와 함께 다닌다. 헐렁한 바지와 긴 양말도 흙먼지를 두려워하지 않아 빨래거리 걱정이 든다. 이 부류는 자기만의 스타일이 강하고 세계관이 그냥 독특하다. 그것도 꽤.
거의 대부분 깔끔쟁이들은 멀끔한 정장 입은 것처럼 지그재그 신발끈도 방향이 한결같고 하얗다. 시합하다 물 마시러 들어올 때마다 던져둔 개인 물통이 혼자 서있다. 윗 유니폼을 바지에 찔러 넣어 입는데 몸싸움에 살짝 삐져나와도 잠시 한눈팔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깔끔쟁이 아이가 축구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순간 신발이 내 차지가 된다. 나는 물티슈로 겉을 닦고 신발안의 먼지와 작은 모래를 현관 앞에서 탁탁 털어낸다. 습관을 들이기 위해 일부러 눈앞에서 보란 듯이 매번 하는데 이미 지친 아이는 그럴 여력도 없으며, 그게 당연한 내 몫이라고 생각하는지 내쪽으로 쑥 내민다.
아니, 나도 같이 운동장에서 서있다 왔는데. 신발 시중까지 들어야 하냐는 자괴감과 습관의 본보기를 보여야 하는 중간에서 매번 눈이 흔들린다. 동시에 이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쪼잔한 나를 닮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누워있는 물병을 세워놓고, 던져버린 신발과 뒤집힌 양말을 돌려놓으며 이런 건 습관이지 유전이 아니다. 깔끔쟁이라서 나중에 혼자 정리하게 될 거야. 혼자 중얼거렸다.
어느 날 현관에 한쪽만 삐딱하게 옆으로 누워있는 아내의 신발을 봤다.
남들 신발은 보면서 엄마 쪽 신발은 왜 몰랐을까.
아주, 매우 천하태평 스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