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휴민트’는 해외에서 통했을까?

서울대가 가까우면 그 가치가 흐려진다

by 무비

봉천동 고개에서 서울대는 버스로 15분 걸린다.

산동네의 대명사로 불리던 이 동네에 살던 친구들은 서울대를 그냥 공부 좀 하면 들어가는 대학이라고 했다.

거리가 가까우면 익숙한 가치를 쉽게 보는 경향이 있다.


영화 휴민트가 그렇다.

한국에서는 실패했다는 흉흉한 소문에 기대를 책장 한켠에 꽂아 넣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 넷플릭스 비영어권 영화 3위다.

겸손과 국뽕을 제곱으로 인수분해 해도 편차가 너무 심하다.


스크린샷 2026-04-16 12.52.32.png


왜 해외에서는 다를까.

본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가장 큰 이유는 한국에서의 식상함이 다른 시선에서는 신선함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주변의 일본인들은 언제나 북한 소식에 호기심이 높아서 다소 장난기 섞인 허풍에도 진지하게 미간을 좁히며 끄덕인다.

우리가 공기 마시듯 매일 듣고 알아온 것들이 세계의 절반에게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다.


북한. 양국 스파이. 핵 대신 엮어 넣은 마약과 인신매매.

체스의 말을 장기알로 바꾼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신선하다.

게다가 후반부 헐리우드식 액션은 익숙하기까지 하다.



영화적 허용이라도 인내의 껍질을 몇 겹 벗겨내다 보면 결국 실망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기 마련이다.

예컨대, 신세경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평양대 성악과라고 하기엔 노래를 너무 못하고 너무 세련됐다.

평양대를 나오려면 출신 성분이 좋고 집안도 받쳐줘야 한다는 기초 상식이 없는 세계에서는 그냥 집이 망하고 연인에게 버림받은 비련의 여인으로 읽힌다.


이 둘의 연애도 미흡하다. 손길 두어 번으로 사랑을 표현했다면 너무 얇다. 감시로 통제된 상황을 감안해도 한때 연인 사이였던 사람들의 행동이라고 보기엔 빠르게 지나가는 화면에서 공감하기 어렵다.

요즘 한국인이 보기에는 너무 동떨어진 고구마식 표현이다.

하지만 정보 공감에 무지라는 필터를 씌우면 그냥 한국식 감정 표현은 이런가 보구나, 하고 넘어가게 된다.


이런 반복된 설정은 한국 관객에게는 개연성을 무너뜨린다.

반대로 해외 관객에게는 정보 부족이 오히려 몰입을 돕는다.


pimg_7369991603892210.jpg


북한을 다루는 인물의 설득력이라는 면에서 떠오른 영화가 있다.

영화 '박치기'에서 조선학교의 '사와지리 에리카'는 달랐다.

휴민트의 신세경과 비교하면 태생이 일본인인데도 정말 북한 처녀처럼 보였다. 게다가 사랑스러웠다.

자기들만 모여사는 조선인 공간에 미인이 있고 외부인으로 그녀에 대한 호기심은 그들의 박해받는 비참한 환경을 재조명하게 되는 중간역으로 충분 했었다.

이건 일본에 사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일지 모른다.



액션의 완성도는 높다. 영화적으로 조인성의 개연성도 좋고 박정민의 액션 연기도 좋다. 류승완답다.

다만 그게 문제다. 그가 보여준 모든 액션신이 우리에게는 반복처럼 느껴진다.

이것도 세계의 시선과 다른 점이다. 그들에게는 처음이니까.


스토리의 평면성은 아쉽다. 러시아 마피아는 그렇게 죽을 줄 알았다.

빌런은 더 잔혹해도 됐고, 악당 본거지도 너무 허술했다.

수화도 아닌 암호도 아닌 랭귀지로 서로간에 소통이 되서 미끼가 되어주는 장면은 정점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세계에서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에게는 이 배경 자체가 낯설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 실패를 잘 이해하고 세계의 시선도 넣는 류승완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하지만 해외에 사는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것.

외부인으로서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한정된 공간에서 삶을 꾸려간다는 감각과

어느 쪽 공작원이든 그들의 삶에 대한 갈망이 끝내 인도적일 수 없다는 것은 생각해 볼 주제였다.


주인공이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허무로 가져간 엔딩만이 살아남았다.

작가의 이전글더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