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난 것은 아닐지 모른다.

02 영화 '폭탄'

by 무비

넷플릭스에서 폭탄을 발견하고 리모컨을 누르는 데 3초도 걸리지 않았었다.

영화를 다 보고도 첫 문장을 쓰기까지는 하루가 걸렸다.


무엇을 봤는지를 쓰는 일 보다, 그것이 내 안에서 무엇을 흔들었는지를 먼저 알아야 했다.

이번에는 오승호 작가보다 한 사람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토 지로였다.'

괴물 배우라고 불리는 사토 지로(佐藤二朗).

이번 글도 영화 이야기지만 한 사람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 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의 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달 만에 떠난 자리 1995

사토 지로는 대학을 졸업하고 속칭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오래 머물지 않았다.

한 달 남짓한 시간 끝에 꿈을 좇아 배우의 길로 돌아섰다.

누군가에게는 무모한 선택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오랜 무명 시간과 조연

안정된 길을 스스로 내려놓고 불확실한 꿈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늘 그렇다.

게다가 그 선택은 단숨에 빛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긴 무명의 시간과 조연의 자리, 그리고 코믹한 역할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세월이 더 길었을 것이다.


퇴사까지 결심했던 그가 처음 품었던 배우의 꿈은 어쩌면 지금과 다른 얼굴이었을지도 모른다.

보다 진지하고 묵직한 역할을 꿈꾸었을 수도 있다.

코믹으로 살아남기.

그러나 현실은 종종 꿈의 모양을 바꾼다.

그는 웃음을 주는 배우로 오래 기억되었다.

대중에게 친숙한 얼굴이 되었고, 코믹한 연기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냈다.

그것이 처음의 꿈과 완전히 같지는 않았을지라도, 그는 떠나지 않았다.


배우라는 삶 자체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3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이 스즈키 안에서 폭발하다.

그 시간이 폭탄 속 '스즈키'라는 인물 안에서 한꺼번에 터졌다.

그의 연기는 단순히 악역을 잘 소화한 수준이 아니었다.

평소 우리가 알고 있던 익살스러운 얼굴은 자주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던 것은 서늘하고, 날카롭고, 인간의 밑바닥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진 인물이었다.

표정 하나, 침묵의 간격 하나, 시선이 머무는 길이 하나까지 모두 계산된 듯 자연스러웠다.

그 자연스러움이야말로 30년이 만든 밀도라고 느껴졌다.


하루아침에 완성될 수 없는 연기.

오랜 시간 사람의 감정을 읽고, 웃음과 불편함 사이를 오가며 축적한 배우의 시간이 이 역할 안에서 응축되어 있었다.

일본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다. 질투가 나서. 라는 수상 소감

실제로 그는 이 작품으로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남우조연상을 처음 수상했다.

코믹한 역할로 살아남아 온 세월이 결국 이 한 작품에서 진가를 드러낸 것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몰랐던 모습.

그의 시간은 스즈키라는 인물 안에서 완성되었다.


한 달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3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 자신의 진가를 세상에 증명했다.

물론 누구나 그런 기회를 얻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평생 기다려도 자신의 '스즈키'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걸까.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이미 지나간 시간은 실패로 남은 것은 아닐까.


사토 지로가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남아 있었다는 것.

빛나지 않는 날에도 계속 걸어왔다는 것.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뿐, 끝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늦었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어쩌면 가장 깊어지는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그가 그걸 증명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오래 남은 것은 배우의 얼굴이 아니라 사토 지로가 걸어온 시간이었다.

경계선에 서있는 나에게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에게도

아직 오지 않은 '스즈키'의 폭탄이 있을지 모른다.


그 폭발까지 30년이 걸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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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두 편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작가에 대한 글과 배우에 관한 글.

하나의 영화에서 두가지 글을 쓰게 되는 건 처음이라 보고 싶은 방향만 보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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