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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자 Nov 02. 2019

수다가 필요해

좋은 수다

오랜만에 친구들이 가게로 찾아왔다. 나는 잠시 가게를 맡기고 가게 근처 커피숍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그 수다는 다시 가게로 돌아와 몇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오랜만에 만났기에 되려 할 말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안 본 사이에 궁금했던 얘기나 현재 얘기들, 자잘한 사는 얘기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허물없는 친구들과 각자 삶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소통의 중요한 부분이다. 거짓을 말할 필요도 없고 숨길 필요도 없는 수다는 진정성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모든 수다가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는 수다를 통해 삶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면 즐거워하고 서로 공감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생긴다.     

예컨대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되면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인정해주면 그만이지만 나와는 삶의 방식이나 생각의 다름을 인정해주기란 쉬우면서도 동시에 쉽지 않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는 쉽게 내뱉는 수다로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가벼운 수다가 무거운 거리감을 초래하는 순간이 때로는 생기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의미 없는 수다는 없다. 남을 험담하고 이간질하고 거짓을 말하는 수다도 결국 말하는 사람의 생각이 담긴 자기 반영이다. 한번 뱉은 나쁜 말이 독이 든 화살이 되어 상대방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쉽게 나쁜 말을 하지 못할 텐데도 말이다.

그렇기에 수다도 훈련이 필요하다. 수다 속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훈련을 하고 경청을 하면서 내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어느 정도 걸러내야 좋은 수다가 되지 않을까? 내 안의 찌꺼기를 마구 토해낸답시고 남에게 그 구정물을 튄다면 그 흔적은 분명히 남을 테니 말이다. 물론 그런 찌꺼기까지도 받아주는 절친이 있다면 몰라도... 또한 많은 말을 했다면 그만큼 남의 말도 잘 들어줘야 한다. 때로는 말이 많은 사람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 더 간절할 때가 있는 법이니.

한동안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일상적인 수다의 중요성을 잊고 산 적이 있었다. 수다가 의미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주제를 넘나드는 가벼운 수다는 내 삶의 활력소가 된다는 사실을 인생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오늘의 친구들과의 수다처럼 말이다. 수다가 오늘의 삶을 풍성하게 해 주었다면 오늘 친구들과의 수다는 분명히 좋은 수다였을 것이다.

좋은 수다는 뒤끝이 없는 청량감이 있어야 한다. 또한 좋은 수다는 기억에 남지는 않아도 순간의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힘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는 오늘 어떤 수다를 했는지 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괜스레 마음이 풍요롭고 시원하다. 수다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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