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이희영<페인트>를 읽고
아이는 부모의 미숙함을, 부모는 아이의 독립을
선택에 의해 맺어진 관계, 더 무거운 책임감
세상에는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맺어지는 관계가 있다. 그건 바로 혈연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서로의 선택과 무관하게 맺어진다. (부모는 어떤 자식을 만날지는 결정할 수 없으나 만날지 여부는 결정할 수 있으니 선택권이 있다고 설명할 수도..) 여하튼 이렇게 선택과 무관한 관계에도 우리는 책임을 다해야 하며 그건 법으로도 인간의 도리로서도 요구된다. 이 관계가 깨졌을 때는 '그래도 부모인데..', '그래도 자식인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NC센터에서는 부모와 아이가 서로를 선택할 수 있다. 부모만이 선택권이 있는 현대와는 다르게 NC에서는 부모가 되고자 찾아오는 사람들을 아이가 면접을 보고 선택할 수 있다. NC센터를 찾아오는 부모 중 대부분이 혜택과 정부 지원금을 노리고 오는 것이기에 이들이 부모가 된다면 가지는 책임감에 대하여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제누와 같은 아이들은 확실히 자신의 선택에 대하여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부모를 만나서 살아갈 자신의 삶과 부모를 선택하지 않고 NC의 꼬리표를 달고 살아갈 자신의 삶에 대해서 명확히 인식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제누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보다는 친구라는 관계를 택하고, NC 출신으로서 NC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자하는 목표를 세우고 사회에 나아가고자 한다. 나도 NC라면 면접에 의해 내가 맺는 관계이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제누처럼 고민할 것 같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신규가 부장을 맡는 것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어."
책을 읽고 나서 예전 티비 프로에서 개그우먼 장도연님이 이야기한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일인데 덜컥 내가 부모라는 직함의 책임자가 되는 것이다. 얼마나 두려운 일일까.
부모가 될 준비란 무엇인가? 그것에 완성이 있기는 한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줄 용기가 생기거나 그에 대한 두려움보다 아이를 만나고 싶은 감정이 클 때 부모가 될 준비가 되었다고 하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페인트의 주인공 제누는 NC라는 곳에서 부모 면접을 계속 본다.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는 자들에 싫증을 느끼고 제누는 오히려 불안정한 모습 자체를 공유하는 예술가 부부에게 관심을 가진다.
내가 부모가 된다면 어떤 감정이 들까? 글쎄,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라 모르겠지만 사실 아마 두려움이 제일 클 것 같다. 결혼을 생각해볼 나이가 되면서 내가 만약 결혼을 늦게 하거나 하지 않는다면 그건 두려움과 겁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결혼도 이렇게 두려운데 아이를 가지는 건 얼마나 두려울까..
제누는 결국 예술가 부부를 부모로 선택하지 않는다. 제누는 책에서 NC 신분으로서 사회에 나가 부조리에 저항하고자 한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물론 이러한 이유도 있겠지만 내 생각엔 부모와 자식으로서 생기는 지위, 권리, 관계가 주는 구속과 책임에서 벗어나 그들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마치 친구처럼 말이다. 아이가 클수록 부모와 아이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된다고 한다. 그건 아마 친함을 넘어서 아이는 부모의 미숙함을 이해하고 부모는 아이의 독립을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