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이제 작가가 될 거야.
엄마와의 관계가 점점 힘들어졌지만 명확한 이유는 딱히 없었다. 만나면 쏟아지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나면 진이 빠졌지만, 엄마들은 으레 이러겠거니, 딸이면 다들 이렇게 살겠거니 했다. 엄마를 생각하면 안쓰럽고, 동시에 버거웠다. 나도 엄마도 행복하고 싶은데. 엄마를 만나고 오면 항상 마음이 답답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 아이들은 쑥쑥 자랐다. 아이들이 생각을 하고 말을 하면서, 엄마인 내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는 게 느껴졌다. 그럴수록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말,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 걸로 끝나지 않고 아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고?
기도대로 다행히 딸은 낳지 않았다. 그러나 딸로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늘 긴장감에 살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우리 아이들만큼은 마음이 좀 편안한 아이로 자랐으면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인 내가 행복해져야 한다는데. 도대체 행복하다는 감정은 어떤 걸까, 그것조차 어려웠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뭘까? 궁금해서 책을 읽었다. 책에는 답이 있을 것이므로.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내리는 행복의 의미를 통해 나만의 정의를 찾고 싶었다.
근 10년 만에 책을 읽으려니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혼자는 힘들어 온라인 독서 모임을 찾았다.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며 떠오르는 질문들과 그에 따르는 생각을 적어보는 모임이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새벽 늦게까지 졸린 눈을 비비며 책을 읽었다.
그렇게 여러 책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보며 실체가 없던 행복이라는 것을 점차 그려나갔다. 행복이라는 건 별 게 아니었다. 특히 최인철 교수님의 <굿라이프>를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행복이란 기분 좋게 하는 모든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처음엔 '이딴 게 무슨 행복이야' 했다. 그동안 너무 거창한 것만 행복이라고 정의 내리면서 '나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것은 사실 일상 속에서 느끼는 수많은 찰나의 순간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여전히 우울했으나 때때로 행복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이 좀 채워지니 어릴 때 꿈이었던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점차 떠올랐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그 시간들이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무언가 되고 싶은 게 있다는 게, 그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아무리 살림을 열심히 하고 아이를 키워도 허전했고 하루의 시간이 텅 비었다는 느낌이 들던 차였다. 그만큼 나 자신을 잃어간다고 생각했던 걸까? 책을 읽고 글을 쓰면 하루가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책도 읽고 심리 상담과 코칭 상담도 시작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우울을 벗어나 나도 좀 활기찬 사람이 되고 싶었다. 코칭 수업을 받으며 나를 다듬어갔다. 꿈을 찾고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정말 신기하게도 길이 열렸다. 도서관에서 무료로 하는 에세이 강좌도 신청했다.
스스로도 많이 변화했다고 느꼈지만, 특히 사람들을 만날 때 변화를 더욱 크게 느꼈다. 대화 주제가 점차 꿈, 목표, 생산성으로 바뀌게 됐다. 예전에는 항상 아이에 대한 고민, 부모님에 대한 걱정, 남편과의 싸움이 주제였는데.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 나와 대화하는 게 너무 좋다, 재밌다, 너무 긍정적이고 생산성 있는 대화였다는 말을 듣게 됐다. 신기했다. 대화 주제가 바뀌니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바뀌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도 점차 즐거워졌다. 내가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모임을 주도해서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예전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다를 떠는 시간은 지겹고 불필요한 일이라는 인식이 좋은 대화를 나누면서 타인과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꿈을 찾았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해 나갈 건지에 대한 계획을 용기 내 처음 이야기했을 때 엄마는 무척 기뻐했다. 처음으로 엄마에게 지지받고 응원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 열심히 하고 싶어졌다.
아이들을 등원 차량에 태우자마자 나도 차에 시동을 걸어 집을 나섰다.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 빼고는 전부 배움과 성장으로 시간을 채워나갔다. 블로그도 시작해 이런 변화들에 대해 쓰기 시작하자 글을 읽어주는 많은 이웃들이 생겨났다. 남편도 나의 좋은 변화를 격려해 주며 응원해 줬다. 그렇게 꾸준히만 해나가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이 다 내 편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엄마로부터 일방적인 통보가 날아왔다. 아버지가 가게를 하신다고 하니 날더러 도와달라고. 직원을 구해주고 관리를 해달라고. 지금 하고 있는 일만으로도 벅차서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었다. 나는 못 해. 하기 싫어. 나 지금도 너무 바빠. 그러자 엄마는 한숨을 쉬며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너 아니면 누가 하니.라는 말로 못을 박았다. 내 상황을 잘 이해하고 지지해 준다고 생각했는데, 엄청난 배신감이 몰려왔다. 그럼에도 끝까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결국 에세이 수업 대신 부모님 가게로 향했다. 가게에서 일을 하는 중 엄마가 친구와 통화하는 내용을 들었다.
“우리 딸이 일 도와주고 있어. 진짜 딸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어.”
'엄마, 나는 오늘 나에게 정말 중요한 글쓰기 수업을 못 갔어요.'
그 말조차 목구멍에 걸려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용기 내 말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착한 딸로 남기 위해 나의 꿈 하루를 이렇게 포기하는구나.
그리고 깨달았다.
뭔가가 잘못됐음을.
나는 아직 부모에게서 벗어나질 못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