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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그립 Dec 12. 2023

장난감가게에서의 구원

9살 아이인 내가 정말 갖고 싶었던 것은...

어릴 적 남동생은 지독한 떼쟁이였다. 장을 보러 가서도 빈손으로 돌아오는 법이 없었다. 

본인이 원하는 장난감이 눈에 띄면 사줄 때까지 엄마를 조르고 그걸로 안 통하면 뒤로 눕기 일쑤였다.

엄마가 협박을 하며

"놔두고 간다!" 해도 통하는 법이 없었다.



고작 9살 내 눈에도 엄마가 무척 힘들어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인형이며 게임기를 사고 싶었지만 엄마의 찡그린 얼굴 앞에서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나까지 엄마를 힘들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을 거다.



하여튼 덕분에 동생은 장난감이 어마 무시하게 많았다. 집에 1평 정도 되는 작은 창고가 있었는데 그 방은 동생 전용 장난감 방이 되었다. 키즈카페의 편백나무로 가득 쌓인 플레이룸만큼 레고가 쌓여있었다. 때마다 유행하는 만화에 등장하는 로봇이며 조종기로 움직이는 자동차들. 커다란 리빙박스 수십 개에 그득 담기고도 바닥에는 늘 장난감이 잔뜩이었다.



이따금씩  동생의 레고 숲에 누워 팔과 다리로 휘젓는 놀이를 하곤 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장난감 속에 내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장난감을 사달란 말을 하지 않았고, 엄마도 굳이 물어보지 않았으므로.

'나는 장난감이 하나도 없네. 나도 한 번 동생처럼 떼써 볼까.'

그러면 자연스레 엄마의 화난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 앞에서는 장난감에 대한 생각도 수그러들었다. 그렇게 나는 장난감이 필요 없는 아이가 되었다. 






그 폐해는 내가 스무 살이 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고 대학을 다니며 자취를 시작해 나만의 작은 공간이 생겼다. 지금의 남편이 남자친구였을 때 종종 함께 장을 보곤 했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면 장난감 가게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아기자기한 소꿉놀이라던가, 요술봉, 누르면 소리가 '어서 오세요~'하고 소리가 나는 마트 계산대. 화려하고 더 이상 나에게 쓸모없는 것들.


 넋을 놓고 하는 구경에 1시간은 기본이었다. 그러면 남자친구는 그런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계속해서 기다려줬다. 장난감을 집어 들고 남자친구를 바라보면 빙그레 웃어줬다. 그러면 나는 다시 집어 든 장난감을 내려놓았다.


한 번은 큰맘 먹고 분홍색 플라스틱 고양이가 여기저기 붙어있는 소꿉놀이세트를 산 적이 있다. 그걸 사들고 집에 가서 뜯어볼 생각에 무척 설레했던 기억이 난다. 냉장고에 바로 넣어야 하는 식품들은 바닥에 그대로 둔 채로 소꿉놀이 세트를 먼저 뜯었다. 스물세 살의 여자가 가지고 놀기에는 턱없이 작고 재미가 없었다.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들이 서러웠다.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러나 마트에서 장난감을 고르는 시간은 빼놓지 않았다. 남자친구를 쳐다보고 웃어주는 그 시간이 좋았으므로. 처음에는 한 시간이던 것이 40분, 30분 점차 짧아져갔다.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었다.

내가 장난감을 집어 드는 용기,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는 용기,

고심 끝에 집어 든 장난감을 들고 엄마를 쳐다보면 허락의 의미로 웃어주는 미소 같은 것들.


그때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사실은 아이라면 당연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 15년이 걸렸다. 나는 항상 걱정 끼치지 않는 착한 딸이고 싶었던 것이 작은 가슴에는 깊은 상처로 남았다는 것을. 


그때 남편이 무슨 생각으로 나를 기다려줬을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확실한 것은 한 번도 짜증을 낸 적도, 빨리 가자고 한 적도 없었다. 어떤 의도였든 간에 그 행동이 나에겐 작은 구원이었다.


지금도 한 번씩 마트에 가면 남편이 장난스레 말한다.

"장난감 코너 안 가봐도 돼?"

그러면 남편에게 웃으며 말한다.

"이제는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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