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카트만두쿠마리....
힌두교의 고대 여신 탈레주(Taleju)의 화신이라고 여겨지는 네팔의 신앙의 대상. '쿠마리 데비(Kumary Devi)'라고도 한다. '쿠마리'라는 말은 처녀를 뜻하는 산스크리트 '카우마리아(kaumarya)'에서 파생된 말로, '결혼하지 않은 어린 여자 아이'를 의미한다. 쿠마리가 살아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사람을 '라즈 쿠마리(Raj Kumary)'라고 한다. 힌두교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쿠마리는 네팔에서는 초교파적 신앙의 대상으로 추앙받고 있다.
네팔에서 쿠마리에 대한 신앙이 시작된 것은 1757년부터이다. 라즈 쿠마리는 명문가의 여자 아이를 대상으로 선택된다. 왕과 종교 지도자들이 참석한 위원회에서 4~7세의 소녀들을 후보로 선발한다. 후보가 되는 소녀들은 가는 목, 소를 닮은 속눈썹, 사슴 같은 허벅지, 사자 같은 가슴, 오리 같은 목소리, 까만 머리카락, 작은 손과 발 등 32가지에 걸친 외모의 심사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이밖에 예언의 능력, 평온하며 두려움이 없는 마음가짐 등도 심사의 기준이다.
최종적인 선발 과정의 하이라이트는 네팔에서 가장 큰 축제인 다사인(Dasain) 축제에서 이루어진다. 다사인 축제는 인간을 괴롭히는 악마를 탈레주 여신이 물리친 것을 찬양하는 가을 축제이다. 축제의 8일째 되는 밤에는 염소와 들소 54마리가 고대 악마를 상징하는 제물로 목이 잘린다. 피를 탈레주 사원의 안마당에 뿌리고, 제물로 바쳐진 동물들의 잘린 머리 그림자가 촛불에 비치며, 무서운 가면을 쓴 남자들이 춤을 추는 가운데 쿠마리 후보의 마지막 심사가 진행된다. 쿠마리 후보는 제물의 머리들이 놓여 있는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 두려움을 느끼는 후보는 탈락되고 마지막 시험은 여러 물건들 중 전임 쿠마리가 쓰던 소지품을 가려내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선정된 쿠마리는 공식적으로 여신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사원에서 생활해야 하고 평소에는 외부 출입을 할 수 없다. 빨간 옷을 입고, 이마에는 힌두교에 나오는 불의 신 아그니(Agni)와 같은 불의 눈을 그린다. 발이 땅에 닿지 않도록 가마를 타고 다니며, 사람들은 쿠마리의 발을 만지며 어려움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쿠마리는 매년 7번 있는 축제 때에는 외출이 가능하다. 쿠마리는 몸에 상처가 나서 피를 흘리거나 초경이 시작되면 저주를 받아 부정을 탔다는 이유로 쿠마리를 그만두어야 한다. 전임 쿠마리가 공석이 되면 다시 쿠마리의 선정 과정이 시작된다. 네팔의 쿠마리 제도는 오랜 기간 힌두교도와 불교도 모두의 숭배를 받으며 종교 화합을 이끌어 왔다.
후보가 되는 소녀들이 선정 기준이 소의 속눈썹, 사자 가슴, 사슴 허벅지, 오리 목소리를 닮아야 하고 까만 머리카락과 작은 손과 발... 그들이 지향하는 외모의 기준이 현대적 사고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염소와 들소 54마리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잘린 머리, 무서운 가면을 쓴 남자들의 춤.. 피 묻은 동물의 머리와 하룻밤을 보내는 것. 어린 여자 아이들의 두려움, 담력 테스트처럼 보인다.
쿠마리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울거나 비명을 질러서는 안 된다.
쿠마리로 선정되는 것은 가문의 영광일까?
성스러움, 순수함의 화신으로 초경을 시작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를 선택하여 숭배하는 것이 여전히 현대사회에 전통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카트만두의 쿠마리는 율법상 공식 행사 참석 외에는 늘 사원 안에 머무르며 나이에 맞지 않는 생활 규범을 강요받고 사회성이 발달하는 나이에 극히 제한된 사람들하고만 교류해야 한다.
쿠마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표정을 강요받는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감정을 드러내면 상대에게 불운이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쿠마리는 신성한 존재이기에 땅을 밟으면 안 된다는 믿음 때문에 늘 누군가에게 업혀 있거나 가마를 타고 있다. 사회성을 배워야 할 시기에 감정을 최대한 감추고 무표정을 습득하게 하거나 일상적인 기회들을 박탈당한다는 것이 아동 학대라는 주장도 있지만 쿠마리는 그 나라의 종교의식 중 하나이니 현대적 시각에서 어떤 평가를 내리는 것도 모호하다.
어디까지가 전통이고 어디까지가 학대일까? 전통이라는 것은 시대 변화에 따라 어느 정도 변하게 마련이지만 변화 속에서도 전통을 유지하려는 힘겨운 노력처럼 보인다.
‘걸어서도 웃어서도 안 되는 소녀’라는 카트만두 쿠마리에 대한 기사를 보며 한국 아이들의 현실이 겹쳐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물론 이 땅의 아이들은 걸을 수도 웃을 수도 있다. 자유로우며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공중 부양하듯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거룩(?)한 숭배의 대상이 되는 쿠마리의 모습이 오늘날 아이들의 모습에 자꾸만 겹쳐지는 것은 과거의 아이들과 다르게 키울 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실 때문이다.
아이들이 종교가 된 세상, 종교가 아니라면 아이들이 로또처럼 인식되기에 부모들은 아이들의 미래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그래 시간 없으니 어서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특별히 한계를 두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도 마음껏.... 그리하다 보니 아이들은 자기표현도 확실하다.
그런데 왜 모든 것이 억압된 쿠마리가 그들의 모습에 연상되는 것일까?
해맑은 아이들의 표정이 없다. 무표정이다.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가는 그들의 일상은 학교와 학원으로의 셔틀이다. 무엇이든 할 자유는 부모의 경제적 수준에 따라 달라지고 아이들의 문화 수준도 부모의 문화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신성하고 거룩한 쿠마리를 만드는 것. 우리는 은연중 숭배의 대상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아닐까?
흙의 아이들이 아닌 돈의 아이들을 키우는 것. 물신주의 아이들을 만드는 것.
수업에 오는 아이들에게 최대 관심사를 물으면 대부분 ‘돈’이다.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들에게 ‘돈’이 모든 것의 척도라니........ “돈이 있으면 다 할 수 있잖아요???”
그들의 말에 할 말이 없다. 원하는 것도 ‘돈’이고 되고 싶은 것도 ‘돈 많은 백수’라니...
물론 진지한 고민 없이 그냥 하는 말이겠지만 그것이 솔직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가상세계에 빠져드는 아이들. 현실에서 아이들은 부모들의 신성한 쿠마리가 되어있다.
학교와 학원은 쿠마리 사원과 무엇이 다른가.
모든 것을 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그들이 아는 자유란 물질적 방종이 아닐까.
그리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물의 잘라진 머리, 무서운 가면을 쓴 남자들의 춤으로 담력 테스트를 하듯 게임 속 전사들과 밤새 일전을 벌이며 담력을 키우는 아이들... 두려움과 연민의 감정을 잃어버린 아이들.
최근 소녀상에 놓인 국화로 할머니를 때리며 담배셔틀을 시킨 고등학생 기사를 보고 분노가 솟구쳤다.
이어지는 폭행, 자리를 피하는 할머니를 쫓아가 수레를 발로 찬다. 도로 한복판에 할머니의 물건들이 쏟아진다. 지나가는 어느 누구도 돕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할머니를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문제의 고등학생과 엮이고 싶지 않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동영상을 찍는 여학생의 웃음소리가 괴기스럽다.
“아... 배 아파 죽겠네 웃긴다.”
무엇이 그리 배가 아플 정도로 웃기다는 말인지... 담배셔틀 안 한다고 때리는 남학생이나 동영상 찍으며 웃긴다는 여학생이나.... 우리가 우리 사회가 괴물을 키운 것일까...
하루 종일 가슴이 답답했다.
쿠마리... 기사를 보며... 땅을 밟으면 오염될지 모르니 어른들이 업거나 가마를 태워 이동하기에 땅을 밟아본 적이 없어 근육 퇴행이 온다는 쿠마리 여신.. 무엇이든 아이들을 우선순위로.... 모두가 그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들은 아이들을 쿠마리 대하듯 키운다.
불우한 가정환경이 문제 청소년들을 양산하던 때는 이미 지났다. 도리어 경제적으로 부유한데도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이번엔 휴가 안 가니?"
코로나 시대이니 휴가를 안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인사치레로 묻는 말에
중학생 친구가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그런 걸 뭐하러 가요. 촌스럽게... 호텔로나 가면 모를까, 귀찮고 피곤하기만 해요."
산과 강과 바다는 이미 오래전에 촌스러운 곳이 되어버린 지 모른다.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표정 없는 쿠마리... 전직 쿠마리의 홀가분한 미소가 대조된다.
전직 쿠마리였던 소녀 마티나 사커야가 쿠마리 행렬을 바라보며 화사하게 웃고 있다
무표정한 쿠마리를 보고 거리의 사람들은 환호한다....
우리가 그들의 문화에 학대니 야만이니 하는 말을 감히 꺼낼 수 있을까?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무색했던... 소녀상의 새하얀 국화로 할머니를 때리던 소년의 섬뜩함 앞에서..
그것을 영상으로 찍으며 까르르 웃던 소녀의 괴기스러운 모습에서
우리가 감히 네팔의 쿠마리를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문득 올려다본 하늘. 파란 가을 하늘이다......... 구름들이 느리게 이동하고 있다.
쿠마리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 판다.... /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