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같음 상태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기억을 채집해야 한

로이스 로리의 소설 『기억전달자』

로이스 로리의 소설 『기억전달자』는 철저히 통제된 '늘 같음 상태(sameness)‘를 이상으로 생각하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조너스가 사는 마을은 완전한 행복에 이르기 위해 개인의 선택이 가져올 불확실성을 철저히 제거하여 늘 같은 상태(Sameness)가 유지되게 운영되는 곳이다. 피부색도 일체의 색깔 구분도 없는 곳.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평등의 세계지만 마을 원로회의에서 결정된 규칙대로 살아가야 한다. 저녁이 되면 하루 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숨김없이 나누며 자신의 삶을 순화시켜야 하며, 아침이 되면 지난밤의 꿈 이야기를 하며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교정받아야 한다. 배우자를 선택할 권리도 결정권도 없으며 당연히 마음대로 아기를 낳을 수도 없다. 아기는 오직 ‘산모’라는 직위를 부여받은 여인의 몸에서 얻어져야 한다. 사람들의 모든 행동은 끊임없이 감시당하며 세 번 이상 중대 잘못을 저지르면 ‘임무 해제’ 되어서 마을에서 사라져 버린다.

사람들은 생활 전반에 걸쳐 모든 것을 통제당하지만 어떤 모험도 불확실함도 위험도 없는 단조롭지만 편안한 삶에 만족한다. 기억전달자는 그 마을에서 원로위원회보다 더 영예로운 존재인데 ‘늘 같음 상태’(Sameness) 이전의 기억을 머릿속에 품고 있다가 ‘늘 같음 상태’가 깨지는 돌발상황이 오면 간직하고 있던 기억들로부터 얻은 지혜로 문제를 해결한다.


감정 또한 일정하게 통제되며 색깔도 존재하지 않는 무채색의 사회이다. 아무도 그 무엇도 선택할 수 없지만 모두가 그 결정에 만족스럽게 복종한다. 열두 살 직위 부여식 날, 기억 보유자로 선택된 조너스는 ‘기억 전달자’로부터 모든 기억을 하나씩 전달받게 된다, 계획, 통제된 사회에서 기억을 가지는 이는 원로위원회에서 선발한 ‘기억전달자’에 한정되고 전기 기억전달자가 차기 기억전달자에게 기억을 전수해준다.

차가운 눈의 기억, 웃는 사람의 기억, 고통 속에 울부짖는 이의 기억, 전쟁의 기억, 고통과 환희의 기억, 사랑, 가난, 추위, 더위, 즐거움, 분노, 죽음, 폭력, 배려 등의 기억을 전수받는 조너스는 일시에 몰려드는 기억의 감각에 견딜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든다. 전쟁의 기억을 물려받는 날은 전쟁이 전해오는 고통으로 몸을 가눌 수 조차없다.


통제 사회에서 모든 이들이 기억을 가지다 보면 혼란이 올 거라는 생각에서 기억은 오직 기억전달자만의 전유물이다. 기억은 그러나 실체가 아니다. 기억은 정신세계에서만 경험하는 일일 뿐이다. 기억전달자의 특권은 그 마을에서 유일하게 ‘책’을 볼 수 있다는 점과 마을을 감시하는 cctv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조너스는 차기 기억전달자라는 명예로움 보다... 인생의 끝. 인생에서의 퇴직, ‘임무 해제’로 모두에게 박수를 받고 무대 뒤로 사라진 이들이 사실은 정맥주사를 맞고 안락사를 당하는 것임을 알고 더더욱 혼란에 빠져든다. 우연히 마을 감시용 화면을 통해 보육자인 아버지가 신체 발육이 더딘 아기를 정맥주사로 안락사시키는 광경을 보게 된다. 신체 발육이 더디고 기르기 까다로운 성향의 어린 가브리엘 또한 안락사될 것이 분명하자 조너스는 가브리엘과 ‘늘 같음 상태’의 마을을 탈출한다. 감시망을 벗어나 조너스와 가브리엘은 기쁨, 노래, 사랑, 즐거움, 웃음. 그리고 다양한 색깔이 있는 다른 마을에 도착한다. 그곳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차기 기억전달자인 조너스가 사라진 그곳에서 기억들은 어떻게 될까... 모든 것을 통제하던 무채색의 사회는 기억전달자의 실종으로 어떤 운명을 겪게 될까. 결말에 대한 해석은 자유다.


조너스는 ‘선택’해서는 안 되는 사회에서 살다가 처음으로 ‘선택’을 했다. ‘늘 같음 상태’의 마을을 벗어나는 일이 그의 첫 선택이었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고, 이상적인 도시, 객관적인 모범답안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선택과 갈등이 필요하지 않다. 선택과 갈등의 문제는 불확실성의 세계에 살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들이다.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원로위원회가 정해준 모범답안대로 그 결정에 순응하기만 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산모이든 보육자든, 광부든, 교사든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다가 너무 늙으면 ‘임무 해제’ 통고를 받고 사라지면 그만인 것이다.

이런 사회는 과연 행복한 사회일까? 우리가 사는 사회는 너무도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하기에 불안하고 두렵고, 걱정되고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도 무겁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인류 발전은 바로 이런 모험과 불확실성, 선택과 갈등의 결과다. 이전 사회의 시행착오를 겪지 않게 인류는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했고 그것은 '진보'라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유전자 풀에서 우연히 나타난 돌연변이가 종의 다양성을 풍부하게 만들 듯이 우리가 겪은 수많은 갈등과 시행착오들이 문화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조너스가 사는 사회에서는 ‘기억’들이 온 마을에 퍼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사람들이 기억을 갖는다는 것은 곧 다양한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이고 기억을 허용하다 보면 개인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리되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을 갖는 것은 행복하다. 설령 그 기억이 궁핍과 가난과 공포의 기억이라 하더라도 기억은 우리 안에 남아 우리들의 삶을 풍성하게 해 준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남은 자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있어 늘 함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사라진다. 우리에게 무대 뒤의 세계란 무엇일까? 가끔 생각할 때가 있다.

사후 세계가 있으리라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무기물로 돌아가 어딘가로 흩어져버릴 것이라는 생각이 더 현실적이다. 살아있음의 세계에서 사라짐을 벌써 고민할 필요는 없다.

삶에서 사라짐은 직장을 그만두는 것과는 다르다. 인생에서 퇴직할 날(『기억전달자』라는 책에서는 ‘임무 해제’라고 표현)이 얼마 남아있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다만 살아갈 뿐,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사라지더라도 기억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과, 사라져 가면서도 누군가를 기억하면서 사라지는 일은 아름답다

기억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기억하는 한 살아있는 것이라고...

죽어버린 모든 것들도 기억 속에서는 살아있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일과 며칠 전 죽은 햄스터를 기억하는 일... 말라버린 식물의 최후를 기억하는 일.

기억은 늘 같을 수 없다. 기억은 ‘늘 같음 상태’(sameness)가 애초에 불가능하다.

기억도 늘 같음의 상태가 불가능하듯, 현실도 늘 같음의 현실이란 존재할 수 없다. 불확실성, 갈등과 모순, 선택의 두려움, 내일에 대한 걱정, 변화, 현실은 늘 같음이 아니고 기억 또한 늘 같음이 아니다. 통제될 수 없는 삶이다.


기억하는 한 기억 속의 모든 것들은 실재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어떤 것들을 보고, 어떤 것들을 느끼며... 현재를 살아가는가가 기억들을 만든다.

어느 순간 사라지는 날이 오더라도 그저 그렇게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나는 오늘 또 어떤 기억을 더 보태어야 할까. 늘 같음이 아닌 색다른 기억을 선택해야 한다.

타이핑 소리와 앵무새 소리, 산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기차소리..

누군가 베란다에 달아놓은 풍경소리... 식어버린 커피와 테이블에 뒤죽박죽 놓인 책들...

기억에 기억을 퇴적시킨다. 결국 삶은 기억의 퇴적물이기에 무의미하게 사라지지 않기 위해, 늘 같음 상태(sameness)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기억을 수집해야 하는 그런 가을 아침이다./ 끝

keyword
작가의 이전글창의 숨결과 시간의 울림을 기억하는 일